읽는 설교 갈라디아서 읽는 설교 시리즈
화종부 지음 / 죠이선교회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의(正意)만 잘 내려도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많은 갈등과 왜곡이 같은 단어를 다르게 정의하거나 오해하여 생긴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조국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도 복음과 그 본질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 진단하고, 조국 교회를 향한 사회적 지탄을 교회다운 교회, 복음과 내용에 충실한 기독교로 전환하라는 뜻으로 읽는다고 밝힌다(12). 이에 대한 저자의 처방이 갈라디아서다. 율법과 행위로 회귀하려는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바른 복음 선언을 오늘 현대 교회가 제대로 들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로 왜곡된 교회의 문제를 풀어보려는 저자의 생각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설교의 현장성을 중시한다는 저자는, 가급적 설교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여 읽는 설교라는 독특한 제목과 함께 거의 500 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볼륨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인지, 설교를 읽는 내내 강대상 앞으로 불려가 오롯이 앉아 있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짧지 않은 매 설교마다 예화를 배제하고 본문의 의미를 충실히 강해해 나가는 방식은 설교에 대한 저자의 곡진한 열심을 반영한다.

갈라디아서 설교를 통해 저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은혜로 주어진 십자가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에게서 일말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세속적 종교성으로부터 철저히 돌이키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한국교회가 선행이나 성화를 덜 강조해서 성도들의 삶에 행실이 모자란다는 진단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은혜를 통한 구원에 충실해야 참된 행실을 하게 된다고 진단한다(139). 인간의 상태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복음이기에 은혜이며, 바른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인 사람은 결국 자유와 사랑이라는 중요한 특징을 나타내기 마련이다(336). 저자는 이렇게 복음의 원래 넓이와 깊이를 복기하여 풍성한 은혜의 샘으로 돌아오라고 초대한다.

한편, 은혜로 주어지는 복음의 연장선으로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복과 상급에 대한 설명은 다소 혼선이 있어 보인다. 저자는 흔히 생각하는 상급이나 복은 행함으로 받는다는 생각에 제동을 걸고(134, 186), 가난과 질병 속에서도 누리는 부요와 풍요를 강조한다(199-202). 이는 아마도 한국교회의 기복신앙을 겨냥한 표현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러면서도 저자는 세속적인 복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 것이 되었다는 주장까지도 하여(237, 457, 470) 다소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 생각 같아서는 복음과 복에 대해 하나의 설교를 할애하여 논쟁해주길 기대했지만, 산발적인 선언에 그칠 뿐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아 다소 아쉽다. 저자의 주장처럼, 복음에 대한 바른 믿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며(484), 복과 상급에 대한 한국교회의 태도는 믿음의 정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복음에 대한 본질적인 추적은 교회됨의 시금석이기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읽는 설교, 갈라디아서』는 교회가 다시 귀담아 들어야 할 복된 소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