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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도에 침묵하실 때
제럴드 L. 싯처 지음, 마영례 옮김 / 성서유니온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좀더 기다리라는 것일까? 기도를 드리지만 아무런 감흥이 없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내 믿음의 인내는 시험 당하고 있다.” 3년 전 노트에 기록했던 묵상 내용 중 일부이다. 책을 읽으며 3년 전 힘겹게 씨름했던 기도 기간이 생각났다. 아니,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사역의 전환기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며 기도했던 그 당시에 나는 피가 마르는 것 같은 인내를 겪어야 했다. 그 당시 묵상 노트에 기록했던 내용들은 하루하루 나와의 싸움이었다. 기도를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더 인내하며 기도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는가? 왜 나는 이토록 믿음 없이 갈팡질팡할까?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때 이 책을 만났더라면 좀더 좋았을 것을……
제럴드 싯처는 그의 책 『하나님이 기도에 침묵하실 때』를 통해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고통 하는 기도자의 영적 순례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종교, 철학 교수로 사역하는 그이지만, 저자는 신학자의 메마른 기도 담론이나 부흥사의 기도 응답 5단계 식의 기도론을 거부한다. 대신 고통스럽지만 진실한 광야 기도의 길로 인도한다. 그의 말이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이 책의 주제가 단지 흥미롭거나 저자의 탁월한 이야기 솜씨 때문만은 아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전 실존이 저울질 당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겪으며 본인 스스로가 찾고자 원했던 그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닥친 교통 사고로 그의 아내, 어머니, 그리고 막내 딸을 잃었으니 왜 그렇지 않겠는가?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다. 모진 고통 속에 담금질 당한 그가 깊은 고민을 통과하여 내놓은 대답들은 그래서 신뢰가 간다. 또 얄궂게도 위로가 된다.
이 책에는 기도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던져보았을 법한 좋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속 시원하다. “우리의 모든 기도가 다 응답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108),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려면 완벽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가? (154), 우리 기도에 응답해 주시도록 하나님을 밀어붙이는 일을 그만 두어야 할 때는 언제인가? (168)” 이런 식이다. 제자는 좋은 질문 없이는 만들어지는 법이 없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교실을 개방했던 공자도 “배우려는 자가 조급해하지 않으면 알려주지 않고,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가르치지 않는다. 한 모서리를 들어주되 나머지 세 모서리를 알아채지 못하면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논어)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럴드 싯처는 응답되지 않는 기도라는 주제에 대한 철저한 제자도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게다가 이 책은 기도에 대한 균형감도 갖고 있다. 고통의 동굴을 통과하는 사람은 균형감각을 잃기 십상이다. 그래서 고통을 이겨냈을지라도 남겨진 흉한 상처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저자는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때’라는 기도의 한 부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퍼즐의 한 조각만을 논하지 않고, 전체 그림 속에서 ‘응답되지 않는 기도’라는 퍼즐 조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우리가 놓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기도는 단지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을 넘어서 더 큰 장으로 우리를 부른다는 것(8장), 그래서 결국 기도는 우리를 바꾸어 갈수 밖에 없다는 것(9장), 그리고 더 넓은 관점으로 기도 응답이란 탐험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10장). 역사와 성경을 아우르는 저자의 신학적 통찰은 그래서 자칫 신파가 될 수도 있는 책의 주제를 치우치지 않는 시각으로 이끌어간다.
이 책이 갖는 최고의 장점은 기도할 수 있게 하는 “용기”이다. 하나님께서 비록 우리가 원하는 때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응답하시지 않는다 해도 ‘끈덕진 기도’는 결국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다듬어 갈 것이며, 진정 우리가 원해야 할 것을 이루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아시기에 다만 신뢰하며 기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더군다나 응답되지 않는 기도는 더 이상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그러했고, 오늘 우리 모두가 그러하다.
책을 빠져 나와 바라본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응답되지 않은 기도’에 대해 더욱 끈덕지게 기도해야 할 탄약과 동지를 얻었다. 저자의 말처럼 결국 기도는 응답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