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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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때였다. 어떤 이유로 둘째 아들과 야심한 밤길을 운전하고 있었다. 순간 고요한 도로 한쪽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고라니 한 마리가 눈을 밝히며 우리의 존재는 아랑곳 않고 무심한 표정으로 유유히 도로를 가로질렀다. 순간 운전을 멈춘 나와 아들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고라니가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아들과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돌아오는 내내 떠들어 댔다. 고라니 한 마리 마주했을 뿐인 데도 이 정도일만큼, 나는 도시인이다.


그런 나에 비하면 에마 미첼은 자연의 고수이다. 동식물과 광물, 지질학을 연구하는 박물학자이자 디자이너이고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그녀는 우리 주변에서 널려 있는 다양한 동식물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 다니면서 그동안 내 입에서 한 번도 발음된 적이 없는 다양한 동식물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녀가 산책을 하거나 일부러 찾아가 수집한 꽃과 나뭇가지들, 새의 깃털들은 총천연색 사진이나 감탄을 자아내는 정밀묘사로 다시금 빛을 발한다. 이렇게 화려한 책은 실로 오랜만이다.


그렇지만 이 책, 읽기에 너무 불편하다. 너무 낯선 동식물의 이름들과 그것을 묘사하는 표현들은 글과 그림만으로 온전히 담기지 않는다. 예를 들면, “무지개 빛이 도는 암청색과 검은색 날개, 그리고 레이스 스카프 같은 화려한 머리 깃털더욱 큰 매력은 복화술처럼 들리는 구슬픈 금속성의 울음소리,” 이것은 저자가 댕기물떼새를 묘사한 표현들이다. ‘레이스 스카프 같은 화려한 머리 깃털은 어떻게 생긴 걸까? ‘복화술처럼 들리는 구슬픈 금속성 울음소리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아무리 되뇌어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한둘이 아니다.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책이다.


결국 나는 구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우선 책에 등장하는 여러 지명들, 저자가 산책한 곳, 혹은 방문한 곳들의 지명이 나오면 구글 지도로 찾아보았다. 다행히 지명이나 동식물의 이름 옆에는 친절하게 영문 표기를 해 놓았다. 출판사의 꼼꼼함을 칭찬한다. 영국 이곳저곳, 주로 자연보호구역이나 호숫가, 해안가 그리고 도로 위의 어느 지점들이다. “이런 곳을 다녔구나!” 자연보호구역은 생각보다 지역이 넓었다. 지도 옆에는 다양한 지역 사진들을 함께 볼 수 있고 360도 동영상도 볼 수 있다. 뜻밖의 정보에 반갑다. 저자와 더욱 친밀해진 느낌이다. 사진이나 일러스트로 소개 되지 않은 동식물도 검색해보았다. 댕기물떼새의 레이스 스카프 같은 화려한 머리 깃털은 역시나 화려했다. 독특한 모양인지라, 다음에 그 녀석을 만난다면, 나도 자신 있게 댕기물떼새라고 불러줄 수 있을 것 같다. 유튜브의 도움으로 그 녀석의 울음소리도 들어보았다. 댕기물떼새는 실제로 입을 적게 벌리고 울었다. 확실히 복화술하듯이란 표현이 맞다. 이렇게 읽으니, 책을 읽는 속도는 안단테가 된다. 독서가 아니라 산책을 한 셈이다.


내친김에 그녀의 SNS도 궁금해졌다. 인스타그램에 올려진 그녀의 수집품들은 더욱 놀라웠다. 이런 인스타그램이라니! 그녀가 올린 사진들과 그녀의 털북숭이 친구 애니의 동영상을 한참 들여다보며 즐겼다. 기왕에 방문한 거, 나를 소개하고 그녀의 책을 읽다가 찾아왔다는 것과 그녀를 지치게 하는 고질병, 우울증을 격려하는 글도 남겼다. 분명 그녀도 반가웠으리라.


<야생의 위로>는 산책하는 책이다. 그녀의 열 두 달은 매번 옷을 갈아 입는다. 그녀는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녀의 도움으로 무당벌레가 겨울잠을 모여서 자는지 처음 알았다. 말라버린 풀도 무엇인가를 전달한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배웠다. 문득 수없이 지나다녔던 북한산 둘레길과 우이천, 중랑천, 그리고 한강 변의 자전거 길을 떠올려본다. 잠시도 귀 기울이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쳤을 변화들에게 미안하다. 조금만 속도를 늦추고 들여다봤더라면, 멋진 신세계를 발견하지 않았을까? 책의 안내를 따라가며 내 속에 죽어 있던 관심 세포들이 살아나고 나의 이목구비가 확장되는 느낌이다. ‘산책은 이렇게 하는 거야하고 가르치는 그녀 덕분에, 더욱 깊어 가는 가을 날씨로 인해, 마음은 저절로 들뜬다.


저자는 만성 우울증 환자이다. 심각해질 때면 자살충동에 어쩔 줄 몰라 하다 가도, 작은 꽃과 식물들, 새소리, 우연히 마주한 동물들로 인해 위로를 받고 다시금 힘을 얻는 그녀를 마음으로 응원하게 된다. 계속해서 우울증과 싸워야 하겠지만, 그녀에게는 자연이라는 친구가 버팀목이 되어주니 잘 극복할 수 있으리라. 확실히 자연은 치유력이 있다. 꼭 만성 질환 때문이 아니더라도, 밖으로 나서야겠다는 동기부여가 생긴다. 살을 빼야 한다는 의무감은 내려놓고 가볍게 자주 걸어야겠다. 관심의 주파수를 넓혀서 내 주변의 작은 것들을 들여다 봐야겠다. 도시인도 자연이 주는 선물이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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