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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을 넘어서 청년에세이 1
신승엽 지음 / 소명출판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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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을 넘어서>는 민족문학의 현단계를 냉철히 비판 검토한 후 그것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도모하고자 했던 저자의 역작이다. 특히 이 책에서 백미를 이루는 부문은 한 평론가가 지적했듯이 임화의 '이식문화론'에 대한 기존의 설명을 뛰어넘는 명쾌한 해석이다. 임화의 문학사론에 대한 속류적 해석들을 비판하며, 임화의 문학사론이 '내재적 발전론/이식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뛰어넘는 '이식과 창조의 변증법'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존의 학설에 대한 방법론적 반성을 촉구하며, 나가서 새로운 문학의 모색을 도모하는 방법론적 암시를 보여준다.

민족문학에 대한 저자의 태도는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민족문학은 새로운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낡은 개념 또는 청산되어야 할 개념으로 보고 있다. 90년대 소설을 비평한 '벗어날 수 없는 일탈, 머무를 수 없는 정주'라는 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선 90년대의 소설은 80년대적 현실의 소멸과 붕괴가 초래한 환멸에서부터 시작하지 않는가. 80년대의 격동적인 현실이 90년대의 지리한 일상에 자리를 내어 주는 과정은, 곧바로 80년대적 현실을 버팅겨온 '민족'이라든가 '계급' 등을 둘러싼 기존 거대 담론들이 더 이상 그 자체만으로는 변화된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고, 그에 따라 기존 거대 담론들에 입각한 정체성의 준거들 또한 해체되어갔다.(347면)

저자는 문학에서 새로운 민중문학의 가능성을 작가의 삶이 영위되고 있는 '지방'에 주목하며 '지방성'에서 찾고자 한다. '80년대적인 거대 담론에 의해 '오염'되었던 과거의 민중문학을 갱신하여 새로운 민중문학의 창조를 이루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별 민중이 처한 억압적 현실에 대한 새로운 성찰에서 출발하여야 하는바'(373면), 방향성 없는 일탈만으로는 진정한 새로움에 나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민족문학-모더니즘 논쟁에서 저자가 보여준 태도에서 잘 나타나 있듯이 저자의 문학관은 거대 담론에 의한 피상적 현실 인식이 아닌, 개별 민중이 처한 삶의 성찰에 의한 새로운 민중문학의 건설이다. 또 그가 말한 '방향성'이라는 말도 결국 현실 삶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의미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의 민족문학의 경우 그런 것마저 애써 부인해왔을까? 그렇지 않다. 시 부문에서 고은·신경림 시인의 작품과 소설에서 최인석·현기영·공선옥의 작품이 여전히 좋은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를 입증한다.

저자는 앞서 '내재적발전론/이식론'의 이분법적 사고의 획일성과 오류를 지적하면서 정작 '거대 담론/개별 민중의 삶'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의 오류를 자신이 범하고 있다. 시대적 흐름에 적절하게 대처하고자 했던 그의 의중은 신선한 것이지만 민족문학론을 내파하기엔 그 산물이 너무나 미흡하다. 저자는 그것을 개인적 작업의 결과보다는 외부적 조건에 의해 민족문학이 우리 문단의 중심 화두로서의 지위를 잃어간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민족문학이 외부조건에 의해 명맥이 좌우될 정도로 견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제 민족문학도 새로운 시대와 환경에 걸맞는 자구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개별 민중이 처한 삶의 성찰과 핍집한 형상화도 될 수 있겠고) 그것은 글쓰는 자의 몫이 될 뿐만 아니라 새롭게 읽고자 하는 독자도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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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절에 가면
신현림 외 지음 / 프레스21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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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숲이 제법 무성한 오솔길을 걷다가 <시인들이 절에 가면>을 펼쳐들고 읽어보았다. 지난해 수도산 자락 수도암에서 하룻밤 묵은 기억이 숲향처럼 은은하게 피어올랐다.

예상했던 만큼 여러 시인들이 들려주는 얘기는 시인의 맑고 순수한 감정과 산사의 경험이 어우러져 맑고 시원한 옹달샘물을 떠 마시듯 가슴 속 깊이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원래 산의 삶이란 세속에 있는 자들에게 피안의 세계처럼 삶이 고달프고 육신이 지칠 때 한번쯤 가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그곳의 삶 또한 또다른 정진의 세계가 아니던가. 우리가 이 책의 내용을 한담 정도로 생각한다면 시인들의 사색의 깊은 세계를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여러 시인이 기록한 글인 까닭에 전체적 내용의 통일성이 결여된 느낌이 든다. 어떤 글은 답사기적 내용으로 채워졌고, 또다른 글은 너무 관념적 내용으로 딱딱한 느낌을 준다. 편안한 마음으로 내용을 음미하며 자기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내용의 글이 더 좋은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보다 넓은 안목에서 생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지혜와 자세를 시인들에게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찰나 같은 산사의 경험은 시인들에게나 독자들에게나 거듭나기 위한 영겁의 시간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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