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지인에게서 이 책을 읽어 보란 얘기를 들었다.전에 전경린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는 터라, 기대하는 바가 컸다. 이 작품이 비록 불륜을 소재로 한 것이지만 사랑의 본질을 묻는 소설적 진실을 담고 있음엔 틀림없다는 게 지인의 말이었다.

우선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이 통속적이란 말은 이 작품이 갖는 근대성 자체에 대한 심오한 질문 때문이다. 개인의 욕망과 사회 구조 간의 매커니즘에서 가부장적이고 전근대적인 질서가 투영되어 있는데, 우체국장과 미흔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서 일부일처제를 고수하는 전근대성을 읽을 수 있다. 뿐만아니라, 미흔이 외도하게 되는 연유를 효정의 부정에서 찾고 있다.

남편의 외도로 충격을 받은 미흔이 시골에 내려와 생활하는 도중 '규'라는 남자를 만나 '구름모자 벗기기 게임'을 하다가 육체적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소설의 발단부터가 작위적인 요소가 많아 리얼리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성애소설'이라면 '실낙원'(와타나베 준이치로)처럼 주인공에 대한 탁월한 심리 묘사가 수반되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한 게 이 작품의 한계이다. 여기서 '생명의 요청으로서의 '몸'의 부름에 응하는 한 인간의 삶은, 그 삶이 실제로 뿌리박고 있는 현실과 역사의 공간에서 풀려'(윤지관)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통속적으로 전락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한 인간의 자기파멸적인 정열의 탐닉과 그것으로 야기되는 삶의 불화가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적당히 사랑하다 시간이 경과되면 다시 원래의 가정생활로 돌아오는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는 모습이 아니라 치유할 수 없는 개인과 가정의 상처를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점이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보듯이 주인공을 죽음에 몰아넣지 않는 극적인 반전은 그런 사랑의 결과로 인해 기존의 인습에 대해 온몸으로 거부하는 문제제기적 주인공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비록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지탄 받는 사랑이지만 거기서 낭만적 자아가 찾고 갈구하는 사랑의 참모습은 인습을 뛰어넘어 몸으로 감지되는 열정의 흔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둘째, 이러한 사랑의 열정이 파괴를 통한 생성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의 우화적인 배경의 설정에서 보듯이 역사의 흔적은 말끔히 지워져 열정의 사건은 일정한 시공간에서 언제나 되풀이 되고 반복되는 이야기로 나타난다.
또한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모색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하고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염소를 모는 여자>에서 이 작품에 이르기까지 전경린 소설의 한계는 '삶'의 문제가 지극히 개인적 체험으로 환원된 나머지 사회적 싦과의 연관에서 뿜어져나오는 생동감이 없다는 게 평론가들의 지적이다. 이는 전경린의 폐쇄적 세계상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는데, 앞으로 작품에선 삶의 뿌리로서 사회와 역사적 국면에서 좀더 구체적인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만약 그렇지 않다면 일부 평론가들이 말하는 '본격문학 외양을 두룬 함양미달의 낯뜨거운 연애담'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존 우리 사회에서 규범적이고 윤리적이라고 했던 것들에 대한 도전으로서 작가는 삶의 평온함에 깃든 불온한 것들의 정당한 자리매김을 시도하는 실험적이고 전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좀더 치열한 문제의식과 삶의 리얼리티를 확보함으로써 독자를 사로잡는 좋은 작품을 보여주리라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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