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신경림 지음 / 우리교육 / 199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무엇보다도 시인의 삶이 가슴 깊이 뭉클하게 와 닿는다. 시를 통해 한 시인을 만나는 것이 공식적인 대면이라면 이 책은 한 인간으로서 이 땅에 살다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신경림 시인 특유의 가락으로 우리보다 먼저 살다간 시인들의 이야기를 구수하게 담아낸 그의 글솜씨가 돋보인다. 우선 발로 일궈 놓은 살아있는 글이 눈에 띄어 좋았다. 시인과 관계된 사람들을 만나고 구하기 힘든 자료까지 모아 시인의 삶을 재현해 보이며 작품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믿음과 신뢰를 사기에 충분했다.

'유치환 시인의 시가 한결같이 치열하고 준엄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더 많은 시들은 앞에 든 '그리움'처럼 따슷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워 독자들을 편하게 해주며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바로 이 점이 유치환 시가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진정 마음 외로운 날은 여기나 와서 기다리자 나 아닌 숱한 얼굴들이 드나는 유리문 밖으로 연보랏빛 갯바람이 할일 없이 지나가고 노상 파아란 하늘만이 열려 있는데

-'우체국에서' 전문 (301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인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보다 새로운 면을 소개하는 글에서 '시인을 찾아서'를 읽는 묘미가 훨씬 더 느껴진다. 또한 이 책은 특별한 장(章) 구분 없이 시인별로 하나씩 읽어나갈 수 있도록 편집되어서 좋다. 게다가 적절한 사진배치가 인상적이다. 대개 사진은 크기에 비해 한 면을 다 차지하고 있는데, 시에서 느껴지는 여백처럼 읽는 이로 하여금 확 트이는 시원한 감을 주며, 말로 다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을 담고 있는 듯하여 읽는 이의 가슴에 묘한 여운을 안겨다 준다. 금상첨화 격으로 각 시인의 이름 아래 적절히 표제를 붙인 주젯말과 인용시는 그 시인에 대해 다 읽지 않아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길라잡이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으며, 시인의 사진은 함축적으로 그의 삶과 시가 어떠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흑백사진이 주는 톤은 이 책의 간결미와 여백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의 백미는 신경림 시인의 꼼꼼한 시 읽기에 있다. 인용시에 대해 주석을 달 듯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원전에 충실하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세간의 평에 대해 독자들이 고정관념처럼 생각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경계하며 시 읽는 태도를 일깨운다는 점이 바로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밀물에/슬리고//썰물에/뜨는//하염없는/갯벌/살더라,/살더라//사알짝 흙에 덮혀//목이 메는 白江 下流/노을 밴 黃山메기/에꾸눈이 메기는 살더라,살더라. -'黃山메기' 전문
황산메기에 소주를 먹으며 우리는 다시금 박용래의 시세계를 화제에 올린다. 향토미를 시적 발상의 원천으로 삼고 그것을 제한된 언어 속에 담는다든가 섬세한 감각으로 토속정서를 형상화한다 등이 대체로 그의 시에 대해서 내려지는 평가들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것이 그의 시들이다. 우선 자칫 투박할 수 있는 사물들을 꿰어 옥처럼 빛나게 하는 그의 탁발한 미적 감각이 간 과되어서는 안 되리라(104면).'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꼭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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