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에게 배우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37
맹문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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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여는 순간 '크리스마스 캐롤'이 심상에 깊이 각인 된다. 최승호의 시를 연상케 하는 사물에 대한 시의 화자의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분석력은 시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비추는 시의 화자의 시선에 포착된 삶의 부조리, 이 땅에 죄인을 구하러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캐롤과 '엊그제 뺑소니차에 치여 죽은/옆방 정씨의 발소리'가 대비되면서 정씨의 죽음은 크리스마스 캐롤에 묻혀 세인의 주목을 받지도 못한 채 사라지는데, 어쩌면 그것이 우리 삶일는지 모른다. 시의 화자는 이러한 부조리를 낳게 한 자본주의 제도와 논리를 부정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자본주의 생리에 빠져들기도 한다.

노동자들의 파업소식을 들으면서도 ' 두부 한 모 살 것을 걱정'하고 '세탁소에 갈 일'과 '신문 광고와 짜장면 맛을 추억'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순을 타개할 '길은 어디에도 없는데/쉬지 않고 길을 내'는 물고기들에게 배운다. 하지만 그건 말처럼 간단하지는 않다. 시의 화자는 가끔 '쇠뿔에 받힐까 겁이나'기도 하며 '순종을 내팽개치고 도망가고 싶'은 맘도 생긴다. '그러나 용기가 없'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독백으로도 입증된다. '그가 실어주는 통근버스만 탈 수 있다면/친구를 배신해도 괜찮고/노선을 바꾸어도 당당하'다는 말에서 부조리한 삶을 사는 인간의 고뇌에 대해 깊이 공감했다.

오늘날 우린 자본주의 체계의 부작용에 대해 성토하면서도 발은 자본주의 체계에 뿌리 내리고 서 있는 것이다. 이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시의 화자는 '정글의 법칙을 배워나갔'던 것이고, 그리하여 '배가 고플 때는 어떤 길로 양식을 찾아가야 하는지/양식을 옮길 때는/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체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길을 잃지 않'은 것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비록 정글의 법칙을 배워 행복한 것 같지만 결국 시의 화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눈물뿐이다. 이게 자본의 체계와 논리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 터이다.

시의 화자는 노동귀족인 되어 노동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하는 사람들을 목격하고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어디에 가시느냐고 물었다/시인은 노동대책회의가 있어서 간다면서/호텔의 커피숍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뿌리'). 이렇듯 맹문재의 시는 우리의 양심을 찌르는 날카로운 가시를 지니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자신의 길을 잃지 않'는 미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에 시의 화자는 자신을 서민의 자식 즉 '별들이 남긴 한 새끼'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클럽 회원증을 찢지 못하는'('利子 클럽') 자기 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그게 인생의 '연극성'인데 또 어쩌랴?

맹문재의 시는 시와 시의 화자의 삶이 일치하는 매력이 있다. 첫 시집 '먼 길을 움직인다'에서 두 번째 시집 '물고기에게 배운다'에 이르기까지 '삶의 빛'과 '시의 빛'이 일치하기에 그의 시가 더욱 빛나고 위대해 보이는 것이다. 자본주의 물살에 거슬러 그 부조리에 부딪히는 일없이 물고기처럼 이 생을 한 번 헤쳐가 보리라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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