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강은교 詩話集
강은교 / 문학동네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강은교님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비단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독자에게도 메마른 우리네 감성에 불씨를 지펴 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길러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저자가 시에 대해 얘기하는 방식으로 어떤 주제에 대해 직접 언급하기보다는 마음문을 여는 의미로 '詩話 앞에'라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거기에 사용되는 적절한 문답법은 읽는이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게 하면서 주제에 대한 자연스런 접근을 유도하고 있다는 게 좋았다. '예술을 일으키는 근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아마도 그것은 '전율'이 아닐까요?'(9면)

이는 시가 독자와 시인 간의 교감을 꿈꾸듯 저자와 독자와의 상호교감을 통해 문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데 이 책의 매력이 있다. 그런데 더욱 값진 것은 시에 대한 해석을 은유로써 설명하되 너무 추상적인 것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적절한 시를 인용하여 예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 곳곳에 묻어나는 감성의 울림은 때때로 철학적 사변을 수반하기도 한다.

'예술은 탈주하려는 것이다. 나는 한마디 더 보탠다. 탈주하지 않으면서 탈주하려는 것, 끊임없이 기표를 살해하면서 기의를 얻으려는 것, 아, 언어, 언어, 기호......'(18면) 이렇듯 이 책은 그냥 감상적인 내용을 넘어 독자로 하여금 사유하는 힘을 길러주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카루스나 피그말리온 같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내용이나 장자의 우화를 곁들여 설명함으로써 고전에 대한 지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고전을 통해 현재를 생각케하는 '온고지신' 정신을 북돋아 주고 있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우리네 감성을 자연스럽게 울리며 작은 것을 통해, 생활 주변 이야기를 통해, 사유적인 이야기를 통해 그 질문에 접근해가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섬세한 글쓰기가 단연 돋보이는 책이었다.

다만, 시에서도 '시적긴장감'이 중요하듯이 이책에서 글쓰기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게 흠이다. 다소 만연체 같은 내용이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에도는 감을 줄 때가 있다.
'사유는 존재의 힘이다. 가능성이다. 삶의 해석이다. 그 속에서 그대는 진정한, 그러나 숨어 있는 메세지를 가져올 수 있다.'(91면)\ 하지만 시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그건 어쩜 필연적인 상황일런지도 모른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나름대로 선보였지만 만족할 만한 답이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강은교님이 '詩話'라는 통로를 통해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독자와 교감을 시도해보려고 했다는 것은 문학담론 측면에서 실로 값진 결과라고 보여진다. 이제 막 시를 쓰려고 맘 먹은 사람들이나 시를 쓰다가 잠시 시가 버거워 보이는 이에게, 그리고 문학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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