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1
최명희 지음 / 한길사 / 199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혼불』이 처음 나오던 해, 한 일간지에 지금은 작고하신 최명희 선생의 글이 실린 적이 있는데 한땀한땀 수놓듯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만년필로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17년만에 결실을 맺게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설은 우리 전통 관념과 문화의 면모를 형상화하고 있는 문화 전승의 전범(典範)적 기능을 하고 있다. 효원이 청사 초롱을 밝히는 대목에서 '신행'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신행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혼불』서사의 본질은 사건의 추이(推移)를 전하는 데 있지 않고,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내는 데 있다'고 문학평론가 장일구가 말했듯이 언어의 조탁에 의한 묘사의 탁월함은 이 소설의 백미이다. 특히 배경의 묘사에서 돋보이는 '언어의 조탁이 시의 수준을 이미 능가하고 있는데, 그 조탁한 언어를 소설 서사에 이질감 없이 운용하는 것이 『혼불』의 수월성이다.' 바로『혼불』에는 상징어, 비유어, 색채어, 의성어, 의태어 등이 적절히 구사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혼불』은 우리 풍속사의 전범과 계승이라는 일차적인 복선만 깔고 있지는 않다. 그 가운데 춘복이의 '변동천하’이야기가 끼어들게 된다. 이 이야기는 『혼불』의 주요 사건 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인데, 천민인 춘복이가 양반댁 작은아씨인 강실이를 차지하려는 야망과 음모가 전개되는 부분이다.

『혼불』은 우리네 삶에 밀착해 있는 이야기를 구현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는 전통의 관념과 문화의 면모를 치밀하면서도 폭넓게 형상화하고 있다. 문화 전승의 전범(典範)이 되는 담론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여기 구현된 전통 문화의 면모는 정확하고 다채롭다. 그리고 전통의 문제를 역사나 현실의 문제와 결부시켜 해석하려는 의식 또한 『혼불』의 빛나는 성과 중 하나이다.

90년대 이후 우리 문학은 전통문화에 대한 계승이나 역사적 문제보다는 개인의 신변잡기나 일상생활의 권태 혹은 내면적 세계에 집착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우리에게 남기었다. 이런 경향을 고려해볼 때, 『혼불』은 전통과 역사에 관련된 주제 의식을 전제하고서도 수준 있는 미적 통찰로써 구현되어 있어 큰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비록 작가는 우리 곁을 떠나고 없지만 우리 시대에 『혼불』이 삶의 정신적 지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또 그런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뿌듯하다. 소설 『혼불』은 작가의 고향 전주와 남원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그는 이 작품에서 전라도 토속어의 판소리 흥이며 기운을‘이야기’에 실어 절묘하게 연행(連行)해 보임으로써 한국 문화와 정신을 예술적 혼으로 탁월하게 승화시키고 있다. 『혼불』은 소설의 울타리, 그 이상을 뛰어넘어 우리 민족이 결코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기록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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