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창비시선 204
장석남 지음 / 창비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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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오월, 북한강 물 자락에 곱게 드리워진 수입리 잣나무 숲길처럼 눈이 푸르도록 시린 한 떼의 언어가 내 마음속에 길게 성호를 그린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새벽 강가에 그물을 가득 싣고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일 것이다.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에서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고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일까?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위의 흉터'는 부드럽게 너울지고 강가를 오가는 뱃소리 '연필 깎는 소리처럼 떠서' 짙푸른 강물 속에 눈발처럼 꽂힐 것이다. 하루종일 강가에 나가 물수제비를 뜨며 '이 세상의 모든 뒷모습들'을 사랑해야 되는 것일까?

장석남의 시는 '못자리에 들어가는 그 못물의 소리를/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 가운데다/ 앉혀보는 것'처럼 우리들 곤한 감성에 언어의 실루엣을 입힌다. 그 실루엣은 '내가 보았던 구름의 자국'같이 '눈감았다 떠도' 그리운 버드나무 마른 시냇가, 수묵의 정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삶은 저렇듯 명료한 것도 아니니' '너에게 하는 말처럼' 또 '蕭瑟히 희미해지는 걸음'처럼 '대숲으로 들어가고' '대숲을 걸어나온 길 하나는/ 둥실둥실 흰 옷고름처럼' 마음을 질러 흘러가는 것.

'가장 낮은 자가 가장 깊이 삶을 건너는/ 가장 가벼운 자가 가장 높이 이승을 건너는// 어느 깨달음이' '밧줄 당겼다 놓았다 하는/ 영혼/ 혹은,/ 갈증'처럼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우리 손안에 밧줄로 감긴다. 그것은 잔잔한 강가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우리들 감성에 울렁이는 또 다른 실루엣일 것이다. '둥글게 흰 풀잎'처럼, '투명 위에 앉은 여름산'처럼, '이목구비 뚜렷한 여름산 메아리'처럼 '먼 훗날 살 집을' 귀담아들어보는 감성의 실루엣일 것이다.

하지만 또 누가 알겠는가? 그러한 실루엣이 못물소리처럼 소슬히 희미해지는 메아리가 아니라, 갈라진 짙푸른 물위의 흉터처럼 우리들 가슴에 영원토록 남기에는 아직도 건너야할 강들이 많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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