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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16년 여름의 패전 - 1941년, 일본은 어떻게 무모한 전쟁에 뛰어들었나?
이노세 나오키 지음, 박연정 엮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쇼와16년 여름의 패전]
1941년, 일본은 어떻게 무모한 전쟁에 뛰어들었나?...
일본의 전쟁결정 과정을 섬뜩하게 복원한 르포수작이라는 띠지에 적힌 말이 적절히 와닿는다.
1941년 ..뒤에 여름의 패전이란 말이 붙어서 보통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해인가 싶기도 하겟지만.
일본이 무조건항복을 선언한것은 1944년 11월경.
1941년은 진주만 공습이 있었던 해로서. 일본이 전쟁을 개시한 해이다.
이는 일본은 전쟁 시작전 부터 패배를 알고 있었으나 이미 전쟁을 시작해버린 시점에서 패배는결정 나있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요약하고 있는 제목일것이다.
일본의 2차세계대전에 관련한 내용은 보통 진주만 습격, 미드웨이해전등. 전쟁의 중심 총탄이 비발치는 곳을 중점적으로 접했었다.
영화[진주만] 이 그러햇다.
하지만 [쇼와16년 여름의 패전]은 총력전연구소를 중심으로 그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총력전연구소.
이름만 들어도 군국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명칭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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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4월1일, 일본 전국에서 '가장우수하고 가장총명한' 인재 서른다섯명이 극비 소집되어
총력전연구소가 만들어 졋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현재 국가 정세를 반영하여 미국과 전쟁을 했을 때,
그 예상 경과와 결과를 연구할 것! 바로 총력전 시뮬레이션이다.
-------------------------------------본문중에서--------------
1983년에 나온 [쇼와16년 여름의 패전]이 왜 2011년 지금에야 이르러서 번역되어 나온걸까.
이는 이책이 보고있는 시점때문이다.
총력전연구소. 이것이야 말로 일본의 군국주의와 함께하던 관료주의를 보여주며
지금도 이 관료주의가 내려오고 있기에. 아마 지금에도 불구하고 출판된것이라 보인다.
일본의 관료주의...
굳이 일본이 경제나 정치에 대해서 몰라도 만화책이나 소설책만 봐도 대놓고 비꼬아 질만큼 썩어 버린 집단.
일본의 관료들
엘리트주의가 팽배 하며 같은 관료끼리도 내각이 다르면 , 관할부서가 다르면 대리바고 이기적인 면모를 보이며
일본사회를 침체로 이끄는 이들.
최근 관동대지진에서 구급물자를 쌓아 놓고도 분배를 못하는 모습에서 나타난 관료주의의 폐해.
이것은 현대에서 생겨 난것이 아닌. 2차세계대전 그 이전부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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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쇼와전쟁사의 증언>에 남아있는 회상기록을 통해 그간의 사정을 다음과 같이 반추하고 있다.
1939년 고급과의 일원이 됨과 동시에 총력전연구소 설립을 실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선 해군성 국무국을 설득해서 간신히 납득시켰다. 육해군항공합동론이 거론된 이후였기 때문에
별다른 의도가 없음을이해시키는데도 상당한 애를 먹었다. 참모본부의 이해와 동의를 얻었고,
이후에는 기획원, 재무성도 이해시킴으로써 간신히 내각업무로 발족하게 되었다.
총력전연구소라는 명칭은 설립요간안에 가칭으로 사용한 문구가 그대로 정식 채택된 것이다.
국방대학이라는 문구를 쓰면 문부성 소관이 되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충고 떄문이었다.
해군 측에서는 선례에 따라 소장직에 육해군이 상호 취임하는 제도를 조속히 실시해줄 것을 제의했다.
육군에서 독점할 생각은 추호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반복해서 설명했다.
------------------------------------------본문 64P에서------------
'해군대신' 시무라는 이제 논의는 지긋지긋 하다는 투로 나직이 내뱉었다.
"이길 리 없을 텐데..."
시무라는 개전 반대론자로서 처음부터 연구생 사이에서 특별 취급을 받았다.
입소 이후에는 항상 "시시해""다 쓸모없지"를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시무라는 확고한 개전 반대론자로서 부임한지 얼마 안된 호리바 가즈오 연구소원과 서로 언성을 높인 적도 있었다.
호리바가 "일본의 혼이야 말로 미국에는 없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최대의 자원이다" 라고 강의했을때도
시무라는 "이의있습니다"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반론을 펼쳤다.
"일본에는 일본의 혼이 있지만 미국에도 양키의 혼이 있습니다.
어느 한쪽만 편을 들면서 다른 쪽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입닥쳐!"
호리바 중령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본문148P에서--
이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통칭 근성론. 국가적일에 제대로된 투자나 조사도 없이 모든지 죽을힘을 다해서 하면 된다 식의 근성론.
우리나라에도 아직까지 팽배 해 있고 아마 내가 모르는 여러 곳곳에서는 이 근성론의 폐해가 있을지도 모른다.
투자는 없지만 운동경기는 이기길 바라는 사람들.
일본과 축구에서 지면 분해하기는 하지만 왜 졋는지를 생각안하고 더 열심히 하면 이길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
물론 사회가 바뀌어 가면서 이러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 중장년층은 이런생각을 하리라 조금스레 추측해본다.
총력전연구소 연구생이 모의내각을 조직하고 미국과의 전쟁에서
일본이 반드시 패배하리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은 1941년 8월의 일이었다.
----본문186P에서--
본문이 내용이 길어 더이상 첨부는 안하겟지만 총력전 연구소가 마지막까지 몰랏다고 말하는 것은 석유의 비축량이였다.
그리고 석유가 전쟁의 행방을 가로질렀다.
2차세계대전은 자원의 전쟁. 즉 석유의 전쟁이였다.
신흥국인 독일이 먹을 식민지가 없어서 소련과 손을 잡고 벌린 전쟁. 거기에 일본도 합세 하였고 이는 세계전쟁이 되었다.
독일과 소련이 갈라서게 된 이유도 독일의 석유 수급량이 적어서 소련까지 넘보게 된것.
일본은 특히 석유를 전쟁의 핑계로 쓰기도 했다.
대충만들어낸 엉터리 표를 자료로 제시하며 전쟁을 촉구햇으며 육군과 해군 공군 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면서 틀린자료를 주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석유 운용을 보엿고 이는 결국 ABCD포위망에 의한 종말을 맞게 된다.
반드시 진다는 결론을 가지고 그를 알고서 이긴다는 생각을 하고 전쟁을 시작한 관료주의.
아마 이 관료주의 창은 언젠가 우리를 향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대한민국 국회가 이 관료들이 될지도 모른다.
이를 경시하지 않고 아시아의 정세를 읽어 낼수 있는 안목을 갖추기 위한 기본지식을 쌓기에 좋아 읽어 봄직한 도서이다.
게다가 이쪽에 대한 특별한 지식 없이도 술술 읽어 나갈수 있게 해설이나 번역 문장이 꽤 잘되어 있다는 점도 추가점수를 줄만하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