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두 얼굴
폴 존슨 지음, 윤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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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두 얼굴.



루소, 톨스토이, 헤밍웨이, 사르트르, 버트러드 런셀 등 이름만 대어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당대의 지식인들의 총 망라해두고, 그들의 이중성을 파헤치겠다고 하는 인문학 서적이다. 검은색과 회색으로 이루어진 표지는 멋드러지고 의미심장한 구석도 있다. 분명 깊이 있고 재미도 얼마간 있겠지만 조금 지루한 구석도 있겠지(미리 말하면 지루하지 않다. 전혀. 끝내주게 웃기고 재밌다!)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펼쳐든 건 목차 안에 ‘톨스토이’가 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가 위대한 작가인 것을 뒤로하고, 소문난 개새끼였다는 건 책 좀 읽었다 하는 사람이면 모를 수 없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그때문일까. 그의 사생활을 먼저 접한 후, 선입견을 가지고 읽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톨스토이의 책을 읽을 땐 다른 러시아 문학 작가들의 책을 읽을 때와는 달리 100퍼센트의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위선적인 사생활, 부인 착취의 이야기를 듣고나서는 그 느낌적 느낌이 확신으로 바뀌었고 이 바닥 최고 톨스토이 헤이터가 되었으니 이 책은 지루하든 말든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이었다.


그렇게, 단 한 꼭지에 대한 관심, 한 사람에 대한 불타는 애증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발췌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선 첫 장은 읽고 넘어갈까 하고 펼친 곳에는 톨스토이만큼이나 우리가 잘 아는 위선자, (에밀을 쓴 사람이 제 자식은 다 고아원에 버렸다는 이야기 역시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것이니까.)루소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그래, 루소도 까려면 정말 깔 것이 많지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폴존슨이라는 이 작가, 정말 조곤조곤 잘 깐다. 


그의 까대기는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루소: “내 숙명은 어느 누구도 감히 묘사하지 못한다오.” 

..그렇지만 사실 그는 자신의 숙명을 자주 묘사했다. 


루소: “나도 가끔씩 화가 치밀기는 하지만 교활한 짓을 하거나 누구에게 원한을 품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는 자주 원한을 품었고 상대방을 몰아 붙일 때에는 교활한 짓도 자주 했다. 



시종일관 이런식이다. 이보다 더 점잖게, 혹은 더 신랄하게 지식인들의 이중성에 대한 폴 존슨의 까대기는 이어진다. 


이렇게 시작하니, 처음 계획한 대로의 발췌독을 할 수는 없다. 천천히 차례대로 읽어나간 후 나온 톨스토이의 대목에서는 그가 루소의 열혈 추종자였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그의 못난 점을 차근 차근 나열하면서도, 위대한 작가로서의 면모에 대해서도 공평할 정도로 상세히 설명한다. 


그의 뛰어난 관찰력과 통찰력, 저 멀리 높은 곳에서 굽어보고 묘사하는 듯, 그래서 우리를 그 광경 안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그의 초연하고 위대한 필력을 말이다. 물론 그 사이 사이 그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인간이었는가를 꼬집어주고, 종국에는 <안나 카레리나>의 그 유명한 첫 문장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은 각기 나름대로의 이유로 불행하다.” 경험상 이 문장은 양쪽 부분 모두 논쟁의 여지가 많다. 오히려 이 문장의 반대가 진실에 가깝다. 불행한 가정에는 분명하고 반복적인 패턴이 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술꾼이거나 노름꾼이다. 아니면 아내가 무능하거나 바람을 핀다. 불행한 가정에 찍힌 낙인은 따분하리만치 반복되는 친숙한 것들이다. 반면, 행복한 가정에는 온갖 종류가 있다. 톨스토이는 이 주제를 심각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대단한 통찰력이다. 저자 폴존슨은 말한다. 누군가의 삶을 가져다두고 오밀 조밀 뜯어다보면 그 누구에게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영역이 있을 것이고 이것은 지식인들에 대한 다소 잔악한 방식의 대우처럼도 느껴진다고.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고도, 위대한 지식인들의 추악한 민낯은 다소 충격적일 때가 많다. 이 과정을 바라보며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이 뭐냐고?


살아서 팔딱팔딱 뛰어대는 것 같은 다층적인 인간 유형의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

우리 주변에서 실시간으로 지식인의 두 얼굴을 보여주는 인물들과 비교해보는 즐거움?

세상에 이렇게 잔인하고도 얌전하게 사람들 까댈 수 있나 싶은 폴 존슨의 조용한 문장들을 바라보는 기쁨?


어느 쪽이든, 책장에 꽂아두고 읽어볼만한 멋진 책이다.

굉장히 진지한 책을 읽는 척 하면서 몰래 깔깔대고 웃을 수도 있고.

이것 역시 독자의 두 얼굴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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