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 명왕성 킬러 마이크 브라운의 태양계 초유의 행성 퇴출기
마이크 브라운 지음, 지웅배 옮김 / 롤러코스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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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관찰하고 새로운 천체를 찾는 천문학자의 과업은 19세기에 거의 끝이 납니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의 심채경을 비롯하여 현재의 천문학자 대부분은 별을 찾기보다는 관측 데이터를 정리하고 분석하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천문학자라고 하면 별을 찾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별을 찾는 마이크 브라운은 천문학자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 태양계 행성의 순서를 외우기 위해 되뇌던 주문이 있습니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 과학 시간이면 친구들과 함께 주문을 외웠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의 주문은 조금 짧아졌습니다. 수금지화목토천해. 짧아진 주문은 어색했고 1년이 11월까지라고 강요받는 것 같았습니다. 이 책은 우리의 주문이 망가져 버린 이유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합니다.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의 중심은 과학 개념이 아니라 마이크 브라운 자신입니다. 새로운 행성을 찾겠다는 열망을 가진 주인공. 첫 도전이 실패로 끝난 뒤의 좌절. 여러 시도 끝에 얻어낸 성과들. 기성 규율과의 대립. 세상의 변화. 여기에 주인공의 업적을 가로채는 악당(?)까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의 형태로 과학을 설명하며 관련 지식이 부족한 저도 페이지를 쉽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꾸밈없는 날 것 그대로의 삶이 이토록 흥미진진할 수 있다는 즐거움과 더불어서 말이죠. 과학 지식에 대한 두려움이 있던 분들도 부담 없이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마이크 브라운이 명왕성을 죽이는과정은 끈질깁니다. 명왕성이 행성으로 남겨질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왜소행성이라는 새로운 분류 개념도 거부하죠. 명왕성을 행성에서 제외하려는 모습은 정말 살아있는 무언가를 죽이는 모습 같습니다. 누군가를 물웅덩이에 얼굴을 거칠게 밀어 넣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온몸은 몸부림을 치고 자신의 얼굴을 누르고 있는 그 손을 부여잡으며 살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하지만 그 손은 흔들리지 않고 손에 잡힌 그것을 계속해서 주욱 밀어낼 뿐입니다. 자신 앞에 있는 존재는 명백히 죽어가고 있지만, 일말의 가능성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그 손을 멈추지 않습니다.


마이크 브라운은 한 천체를 발견했고 제나라는 그가 발견한 에리스는 명왕성과 비슷한 천체였습니다. 발견 당시에는 명왕성보다 더 크다고 알려졌죠. 문제는, 관측 기술이 발달하며 이들과 비슷한 천체들이 수없이 발견될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에리스가 행성이 된다면 이후 발견되는 천체들도 행성으로 편입해야 할 것이고, 100년간 9개뿐이었던 태양계 행성이 순식간에 수백 개로 늘어날 것입니다.


마이크 브라운은 행성을 발견한 사람이 된다는 것에 흥분했지만 이내 에리스는 행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에리스가 행성이 아니라면, 명왕성도 행성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다른 행성들보다 크기도 작았고 공전 궤도의 축도 달라 원래 애매한행성이었던 명왕성은 그렇게 에리스의 등장으로 행성에서 퇴출됩니다. 에리스가 등장하며 그냥 그렇게 되었던 것뿐이었습니다. 학문에 대한 소신과 질서를 위해 열 번째 행성의 발견자이자, 유일하게 살아있는 행성 발견자라는 명예를 포기한 마이크 브라운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


원제를 잘 옮겼다고 생각합니다. 원제는 <How I Killed Pluto and Why It Had It Coming>으로, “내가 어떻게 명왕성을 죽였고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는가라는 뜻입니다. 이름이 너무 길어 독자들의 기억에 남기 어렵기에 제목을 줄이는 과정은 필연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줄인 것이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입니다.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는가는 부연 설명이었기에 중심 제목인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만 남겼고 How어쩌다로 번역한 것도 마치 무언가 얼렁뚱땅 일어난 일인 듯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표지가 조금 밋밋해 보입니다. 명왕성과 명왕성을 품는 듯한 손 모양은 조금 어색합니다. 명왕성의 외형은 달이나 토성처럼 특징이 강하지도 않기에 독자들의 기억에 강렬히 남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합성 등을 통한 마이크 브라운의 머그샷이나 수배지, 혹은 명왕성을 의인화한 이미지를 만들어 사건 현장처럼 꾸미는 방식이었다면 독자들의 흥미를 조금은 더 끌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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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100쇄 기념 스페셜 에디션)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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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국내에 출간된 지 20년이 흐른 책이지만 여전히 그 내용은 생생하며 주인공 산티아고의 고뇌는 지금의 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마음은 책이 출간되었을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아마 꽤 먼 미래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고민을 하고 있겠죠.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며 현재에 만족할 것인지. 혹은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나아간다면 내 앞의 수많은 길 중에서 올바른 길은 어디인지. 인간은 결국 이 모든 고민을 온전히 떨쳐낼 수 없다는 사실에 잠시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슬기롭게 넘기는 법을 익히는 것도 중요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금술사는 우리의 불안을 조금은 덜 수 있는 길을 안내해줍니다.


양치기 산티아고는 보물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납니다. 대신 그는 그동안 가져왔던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키우던 양들을 팔아야 했고, 수년간 살아온 동네를 떠나야 했으며, 한 여자를 볼 때마다 느꼈던 설렘도 포기해야 했죠. 그리고 표지(標識)를 따라 보물을 찾으러 떠납니다. 그럼에도 길이 보이지 않을 때면 주변에서 마크툽이란 말을 건네주죠. 마크툽은 이미 씌어있는 말이다’, 혹은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다라는 뜻입니다. 미래를 개척하려 안간힘을 쓰는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 아닐까요? 누구나 때로는 운명을 개척하거나 극복하는 것에서 오는 희열보다, 운명은 정해져 있으니 걱정 없이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는 편안함이 더 필요한 날이 있으니까요.


납은 세상이 더 이상 납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납의 역할을 다 하고, 마침내 금으로 변하는 거야. 연금술사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거야. 우리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할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함께 나아진다는 걸 그들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지.”(247p)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이란 자아의 신화를 실현하여 삶을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과정은 납을 금으로 바꾸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쉽지 않겠죠. 하지만 인내와 도전을 이어간다면 우리는 우리 삶을 금으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연금술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산티아고를 주인공으로 설정했지만, 동시에 현재에 안주하는 이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산티아고에게 자아의 신화를 실현하는 방식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재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자아의 신화를 실현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꿈이란 성취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를 지탱해주는 기둥입니다. 산티아고도 이내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101p)는 것을 깨닫습니다. 보물의 형태와 이를 바라보는 방식은 모두 다르니까요.


+)


아직 읽지 못한 유명한 책을 찾아서 읽어보자는 생각을 한 이후 가장 먼저 떠오른 책입니다. 100쇄 기념 에디션 소식을 듣고 바로 주문을 했습니다. 종교 경전이 떠오르는 듯한 고급스러운 표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보물을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난 뒤부터 온 세상이 던져주는 표지(標識)를 따라 나아갑니다. 자신이 어떤 순간에 어떤 길을 따라가야 하는지를 알 수 없지만, 그때마다 산티아고는 이 표지를 따라 나아갑니다.


책을 읽는 내내 그 표지들을 비롯해 마크툽이라는 말들 모두 신의 말씀 같았습니다. 방황할 때마다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제게 던져주는 말씀이었죠. 그 말씀을 담은 이 책은 저에게 경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신의 존재를 믿지는 않지만 내가 방황할 때 걷는 걸음을 다시 바로잡아주는 존재가 있음이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연금술사의 기본판이나 리커버 판을 이미 소장하신 분들에게도 꼭 이번 100쇄 기념 에디션을 사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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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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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가 별을 보지 않는다니, 모든 일과 생각이 별에서 시작해 별에서 끝날 것만 같은 그들이 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지 않는 걸까요. 제목에 홀린 듯 이끌려 주문 버튼을 눌렀습니다.

 

책을 끝까지 읽고 그 이유를 알고 나니 강윤정 편집자의 문학책 만드는 법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온갖 아름다운 환상을 들춰낸 뒤 조금은 허름하고, 조금은 때가 탄 현실을 마주했을 때의 그 기분이요. 천문학자는 그리 낭만적이기만 한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하늘을 보기는커녕 달빛도 잘 들지 않는 연구실에 앉아 별 대신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도록 쳐다봅니다. 그들의 손은 망원경을 조작하는 시간보다 자판을 눌러 분석한 자료를 정리하고 코딩하는 시간이 더 많죠.

 

천문학자인 심채경은 천문학자 자체가 희귀한 대한민국 천문학계에서도 분명 유의미하고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해내지만, 삶의 대부분은 일반적인 대학원생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이 다루고 있는 자료가 우주와 별에 관한 것이라는 것만이 이들을 천문학자라고 부를 수 있게 해주는 몇 안 되는 구분점입니다.

 

갑자기 다른 이야기지만, 누군가 인문학을 왜 공부해야 하냐고 물으면 설명하실 수 있나요? 한동안 인문학 열풍이 불었었지만 정작 그것이 왜 필요한지 아는 사람은 거의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건 저도 마찬가지였죠. 그러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뒤늦게 한글을 배우고 시를 쓰기 시작한 할머니를 인터뷰한 에피소드를 다룬 꼭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시를 쓰고 뭐가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이제 들국화 냄새도 맡아보고 돌멩이도 들춰보게 됐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들국화라는 존재를 모르지도 않았고, 돌을 처음 본 것도 아니셨죠. 이전에도 분명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시를 배우며 이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금 바라보시게 되셨죠. 인문학을 통해 우리는 무언가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고 그 시선에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심채경에게 천문학은 인문학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세상 온갖 것에서 시의 소재를 찾거나 혹은 자연스레 보이는 것처럼 심채경은 세상 온갖 것에서 우주를 보고 있었습니다. 어린 왕자를 읽을 때면 소행성의 자전을 떠올렸고, 딸이 유치원에서 배워온 노래를 들을 때면 우주로 떠난 관측선 보이저호를 떠올렸죠. 별을 직접 보지 않았을 뿐, 항상 주변의 무언가를 통해 우주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텍스트 너머로 본 심채경이란 사람의 삶에서, 천문학은 마치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은 문의 윗부분에 쌓인 먼지처럼 그녀 주변의 모든 것에서 한 움큼씩 묻어나옵니다. 저는 이것이 에세이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세이는 인문사회과학 도서처럼 방대한 지식을 담고 있는 장르도 아니고, 문학처럼 흥미로운 전개나 아름다운 문장이 중심인 장르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그리고 거기에서 무엇이 묻어나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경험하며 내 시선을 더욱 두텁고 단단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겠죠.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가 다른 분들의 시선도 풍성하게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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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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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하세요?”라는 말이 마치 인사말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미 많은 사람이 주식에 뛰어들고 있다는 거겠죠. 그리고 주식만큼이나 가상화폐 투자도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투자를 통한 사회발전이란 고결한 가치보다는 현실에서 일말의 행복을 얻기 위해 벌인 처절한 싸움을 하는 중이겠죠. 『달까지 가자』 속 다해와 은상, 지송은 자신들을 B03(비공채 3인방)이라고 부릅니다. 공채 출신이 아니기에 회사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연봉은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미래를 걱정합니다. 그렇기에 B03은 가상화폐의 말도 안되는 수익률이란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죠. 이 셋은 적금을 깨고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필사적으로 가상화폐를 사들입니다. 가상화폐 가격이 오르기도 하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떨어지기도 합니다. 코인 가격이 떨어질 때면 이 셋은 다시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오를 것이란 근거는 없습니다.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믿음이죠. 그렇지 못한다면 이들에게 남은 건 더욱 암울한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이들의 모습은 지금 당장 우리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생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다해와 지송이 처음에는 가상화폐 투자를 하는 은상을 비판했던 것처럼, 현실 속 사람들은 가상화폐 투자는 한탕주의라며 투자자들을 비판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정말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드는 청년들은 노동의 신성함을 무시하고 한탕만을 노리면서 오직 돈만을 좇는 몰상식한 사람일까요. 우리는 직장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지만 급여나 복지, 혹은 사회적 시선이라는 보상은 그에 준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다해처럼 내 잘못도 아닌 일로 상사에게 납작 엎드리며 그들의 말을 한 귀로 흘리는 생존기술을 익혀야 하죠. 그렇다면 적어도 가상화폐에서만이라도, 잠시나마 일확천금을 바라는 게 그렇게 욕심인 건가요.




저도 머지않아 B03처럼 취업을 할 것이고, 그 안에서 고통받는 일을 겪을 수도 있겠죠. 이미 그런 생활을 하는 주변 사람들을 봐왔기에 그런 불안은 더 큽니다. 하지만 ‘돈 많은 백수’라는 선택지가 제게는 없습니다. 등장인물 세 명의 투자가 성공하길 간절하게 바란 것도 그들에게 저와 친구들의 모습이 투영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그토록 주인공을 응원했을 겁니다. 주인공이 산 가상화폐의 가격이 오르면 제 가슴이 벅찼고, 떨어질 때면 마치 제 돈을 잃은 듯 머리가 멍해지며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제가 주인공을 이토록 응원했던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반전 없이 행복한 결말을 내어 준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가벼운 문체와 단순한 결말로 구성되어있지만 읽는 내내 스스로가 투영되어 집중해서 읽었던, 마지막 장을 넘긴 뒤 “음, 괜찮은 한 권이었어”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

한정판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만 일반본을 샀습니다. 분홍색 바탕의 한정판은 분홍색 바탕에 발랄한 일러스트로 주인공들이 추구하는 행복, 희망의 이미지가 몽글몽글하게 떠오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달까지 가자』에서 주인공들이 느끼는 희망은 어두운 삶 속에서 잡힐 듯 말 듯 하면서도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무엇에 가까워 보였고, 사무실 책상 너머로 보이는 어두컴컴한 밤하늘 위에 홀로 떠 있는 달을 담은 일반본 표지에 이미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한정판 표지가 별로였던 건 절대 아니었어요. 일반본만큼이나 한정판의 표지도 너무 예뻤고 한정판이라는 희소성과 더불어, 함께 오는 양장 노트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도 어마어마했죠. 그래도 『달까지 가자』 출간 전부터 문학 플랫폼에서 진행되는 연재를 챙겨보며 나름대로 해석한 소설의 의미에 찰떡인 일반본의 표지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돈만 많았으면 둘 다 샀을 텐데 말이죠. 만일 제가 B03과 같은 시기에 이더리움을 사고 인내하며 제 희망도 함께 달까지 갔다면 한정판과 일반본 모두 샀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무의미한 아쉬움이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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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다니는 어원 사전 - 모든 영어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마크 포사이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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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북튜버 겨울서점님의 소개 영상으로 이 책을 읽겠노라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소개해준 책을 읽는 걸 무슨 다짐까지 하느냐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겨울서점 님의 영상을 보면 다들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실지도 모릅니다. 겨울서점 님 영상에서 이 책의 서문을 읽어 주시는데요, 작가는 비스킷의 어원을 물어보는 친구에게 비스킷과 관련된 수많은 어원과 사건을 설명해줍니다. 친구가 그만하면 됐다고 도망가는 와중에도 그는 친구를 쫓아가며 자신의 지식을 폭발시키죠. 작가가 스스로 자신에게 어원을 묻는 걸 실수라고 표현했는지 십분 이해가 됩니다. 이토록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을 보는 건 즐거우면서도 동기부여가 되고, 그 사람의 글을 더 읽고 싶어지는 건 당연합니다.

 

책 전문에서 내내 보이는 작가의 위트는 이 책을 읽으려고 했던 다짐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줍니다. 먼저 말했듯 자신의 설명을 듣지 않으려는 친구를 쫓아가며 설명하는 모습이나, 창간호 때부터 꽤 오랫동안 한 신문의 지면에 특정 키워드가 빼곡했다는 설명에는 그런 기사가 몇 건이나 되는지 제가 세어보다가 포기했습니다”(207p)라는 각주를 다는 등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작가는 수많은 어원을 알고 있겠지만 이 책에 담은 어원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흥미를 자극합니다. 히틀러가 나치라는 이름을 싫어했든가, 블루투스는 과거 어떤 인물의 치아가 푸른색이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등, 이게 정말 사실인가 싶어 읽는 도중 검색 사이트를 수도 없이 열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나면 그 기원이 놀라우면서도, 이걸 알고 있는 작가나 언어학자들이 대단해 보이기 시작하죠.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가는 능력 또한 감탄스럽습니다. 슬라브족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흑인들의 ‘Hey, man’이라는 인사로 끝맺어지고, 다시 영화 터미네이터로 이어집니다. 읽는 내내 이야기가 어디로 튀어나갈지 알 수 없죠. 하지만 그 과정은 분명 논리적이고, 나름의 이유가 있으며, 흥미롭습니다. 가장 마지막 챕터에서는 사슴을 뜻하는 ‘buck’에서 시작했다가 가장 첫 챕터를 열었던 단어 ‘book’으로 다시 이어지며 말줄임표와 함께 그의 설명은 다시 무한히 이어집니다.

 

제목과 표지가 조금 아쉽긴 합니다. 책의 원제는 <THE ETYMOLOGICON>으로, 번역하면 <어원사전>이죠. 딱딱하지만 내용 자체에 충실한 제목입니다. 한국에서는 <걸어 다니는 어원사전>으로 출간됩니다. ‘걸어 다니는이라는 수식어는 조금 엉뚱했습니다. 책과 걸어 다니는이라는 표현은 호응이 잘 되지 않아 보이거든요. 내용이 아니라 작가를 지칭하는 제목이라면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제목은 책을 지칭할 것이라 여기기도 하고, 내용도 인물에 대한 것이 아니었기에 직관성이 조금은 낮지 않았나 싶습니다. 흥미를 유발하는 제목도 아니었고요. 그러면서도 표지는 사전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디자인입니다. 알파벳이 걸어 다니는 표지인데, 인문도서보다는 어원 중심의 영단어장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단점을 말했지만, 앞서 적은 책의 장점들은 단점을 덮어버리기 충분합니다. 흥미로운 내용과 위트있는 표현, 그리고 그 모든 걸 잘 살려준 번역까지.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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