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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일지 열린책들 세계문학 285
다니엘 디포 지음, 서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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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은 끊임없이 창궐한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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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리커버 특별판)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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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키르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신입니다. 동시에 서양 문학에서 등장한 최초의 마녀죠. ‘마녀’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정체 모를 것들이 담긴 솥을 휘젓는 할머니? 온갖 마법을 다루는 여성 캐릭터? <키르케>에서 말하는 마녀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작가 매들린 밀러는 사회가 여자에게 허용한 힘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여성. 그들을 ‘마녀’라고 부릅니다.

주인공 키르케는 조금은 흐릿한 신입니다. 목소리가 인간과 같고 외모에는 신의 위용이 담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변 신들은 그녀에게 상처를 줍니다. 시간이 지나 약초와 주문을 다루는 그녀의 능력이 발휘되지만, 아버지 헬리오스는 그녀의 능력이 제우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까 두려워 키르케를 아이아이에 섬으로 영구히 추방시키죠. 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혀 오지만 키르케는 자신의 운명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지 않습니다. 

신들의 계획을 듣고 자포자기하며 운명에 순응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신들을 막아냅니다. 아들 텔레고노스를 지키기 위해 신들이 섬에 접근할 수 없도록 주문을 걸고,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가 트리곤의 시험을 통과하여 그의 꼬리를 빌려와 무기로 사용합니다. 괴물이 되어 사람을 해치던 스킬라를 죽여 자신이 저질렀던 일을 스스로 매듭짓기도 하죠. 인간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아테나나 유희 거리로 여기는 헤르메스와 달리 인간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오히려 인간들의 운명을 이끌어주기도 합니다.

키르케가 스스로 정한 운명 중에서도 단연 가장 강렬했던 선택은 신의 위치를 포기한 것입니다. 신은 죽지 않습니다. 하지만 키르케에게는 죽지 못 한다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사랑했던 인간들이 죽어 과거의 역사가 되어도 키르케는 그들이 없는 현재를 살아가야 합니다. 신은 죽지 않아 저승에 갈 수도 없으니 정말 만날 방법이 없었죠. 허무함과 슬픔이 쌓이며 시들어 갑니다. 키르케는 이런 영원이란 굴레에 갇혀 힘자랑만 하는 신들을 가리켜 “그 무엇보다 죽은 존재라고 생각”(500p)합니다.

그렇게 키르케는 마지막에는 인간이 되기 위해 수액이 담긴 사발을 마시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죠. 스스로 신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찾아 나섭니다. 키르케는 불로불사의 능력을 잃겠지만 더욱 생기 넘치는 존재로 살아갈 것입니다. 어쩌면 키르케를 마녀로 만들어준 진짜 능력은 약초와 주문을 다루는 힘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태도일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키르케와 같은 마녀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주 간절하게 마녀라는 말이 없어지길 바랍니다. 모든 여성이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펼치게 되고, 또 그것이 당연한 사회가 된다면 마녀라는 단어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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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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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강 작가는 중심 원인보다 그 주변의 모습을 조명하여 문제 제기하는데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채식주의자>에서는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며 모든 일이 시작하지만, 그녀가 육식을 거부하게 된 최초의 이유는 그리 중요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영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폭력을 가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에 집중이 되었고 이를 통해 인간의 폭력성을 실감할 수 있었죠.


<소년이 온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운동의 경위와 경과, 영웅적인 인물 대신 그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주변인을 다룹니다. 운동의 최전선에 나서기보다 나름의 자리를 지키려고 했던 인물도 등장하고 그 가족들의 고통도 그립니다. 동호와 정대는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은숙과 선주는 살아남지만 그때의 기억이 그들을 평생 따라다니죠. 죽은 이들의 가족 또한 고통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영웅의 시련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을 그리며 아픔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이들은 나무의 중심보다는 곁가지 같은 인물들입니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중심을 깔끔하게 보기 위해서라면 쉽게 쳐내지던 곁가지들의 힘을 실감하게 합니다.


인간 폭력성의 고발도 이 책에서 주목할 부분입니다. 많은 시민군이 책에서나 현실에서나 군인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합니다. 군인은 명령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원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난무하는 집단이기도 하죠. 권력의 가장 위에서 공격 명령을 내리는 이의 폭력도 물론 있지만, <소년이 온다>에서는 군복만 벗으면 일반 시민과 다름없는 군인들의 폭력성을 보여주며 폭력성이란 몇 명의 악당들만이 가진 것이 아니라 인간 근본의 것이라는 점을 짚습니다.


쌓여있는 광주 시민의 시체를 보며 슬픔의 표정을 짓기보다 그들의 시취에 눈을 찡그리며 코를 막는 모습. 일렬로 계단을 내려와 항복하려는 학생들에게 총을 갈기는 모습. 이 모든 게 타의에 의한 행위인가요? 인간의 폭력성은 잘 숨어있다가 스스로 정당한 이유를 찾으면 그때부터 날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41년 전 광주에서 인간의 폭력성이 적나라하게 폭발했죠. 사건 자체를 기억하여 다시는 반복되지 않으려는 노력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 기저에는 인간의 폭력성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극복을 위해서는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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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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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포르노에 대해 아시나요? 감동 포르노는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는 모습을 연출하여 비장애인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합니다. 기계 팔다리를 이식받거나 색맹 안경을 쓰는 장애인들이 등장하죠.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비슷해지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감동합니다.




김초엽, 김원영 두 작가는 모든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되길 원한다는 저 시선을 지적합니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의 생각과 달리 자신의 상황에 잘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변 사물을 파악하는데 눈보다 더 훌륭한 신체가 있을 수 있지만 비장애인들이 눈을 불편해하지 않듯 장애인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방식을 잘 활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꾸만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건 비장애인인 자신과 다른 그들의 신체를 열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장애가 불완전하고 열등하다면 그러는 비장애인은 완벽한 신체를 갖고 있나요? 인간은 약합니다. 단단한 것에 부딪히면 몸이 부서지고 질병에도 쉽게 걸리죠. 물고기처럼 물에서 숨을 쉴 수도, 새처럼 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비장애인들은 쇠처럼 단단하지 못한 몸을 장애라고 하지 않습니다. 날개가 없음을 장애라고 하지 않으며 아가미가 없음을 장애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장애인에게는 비장애인의 모습을 강요하는 건가요.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장애 유무의 차이가 오른발, 왼발 중 어느 다리를 먼저 내딛는지의 차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장애는 생활 속 불편함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불편함은 장애의 기본값이 아닙니다. 그 누구의 신체도, 살아가는 데 불편해야 한다는 가치판단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비교해 유독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건 장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비장애인만을 위한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겠죠. 점자 블록을 만드는 것도, 버스 출입구를 계단으로만 만드는 것도 모두 인간이 하는 것이니까요. 김보라 감독의 추천사처럼, 이제는 장애를 ‘결여’가 아닌 ‘압도적인 고유성’(6p)으로 받아들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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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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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는 2009년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수도권 연속 의문사 사건’의 주인공 기지마 가나에를 모델로 한 소설입니다. 그녀는 세 명의 남성과 교제하면서 금품을 갈취했으며, 그들을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기지마 가나에는 이 책에서 가지이 마나코로 다시 태어납니다. 주간지 기자 리카는 가지이와의 면회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의 과거를 추적해갑니다.




『버터』을 읽는 내내 실을 공 모양으로 꽁꽁 묶어둔 듯한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이 어떤 경로로 움직여 이 공을 만들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을 만큼 하염없이 엉켜있지만, 짧게 튀어나온 실의 끝부분을 더듬으며 하나하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지이는 실뭉치 속에서도 가장 단단히 엉켜있는 부분이었죠. 가지이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인물이며, 어떻게 이토록 엉킨 것인지 감도 오지 않을 정도로 꼬여있는 부분입니다.





가지이의 사건이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가지이의 외모에 주목합니다. 소위 ‘꽃뱀’이라 불리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견의 이미지와 달리 가지이는 평균의 외모였으며 몸매도 통통했기 때문이죠. 남성을 즐겁게 하는 것이 여성의 역할이며 페미니스트를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그러면서도 역설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가장 잘 지키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살을 빼려는 강박에 빠지지 않죠. 자신의 몸을 긍정하는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그녀의 가치관들이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며 그 이유를 깨닫고 그녀의 모순에 긍정하게 되죠. 어떻게 풀어낼지 엄두가 나지 않았던 이야기가 조금씩 풀려가는 과정을 보는 재미가 저를 압도했습니다.




책에서 지적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성별에 대한 불합리한 시선입니다. 여성들은 집안일을 강요받으며 남성을 보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웁니다. 특히 요리는 그 특징이 더 두드러지는 영역입니다. 리카의 남자친구 마코토는 리카가 만든 케이크를 먹은 뒤 케이크의 상큼한 맛이 엄마의 맛이 떠오른다고 말합니다. 이에 리카는 “레몬 껍질이야, 그거. ‘엄마의 맛’이 아니라, 그냥 레몬맛.”(221p)이라고 답하죠. 가사노동은 오롯이 여성인 어머니의 몫이었기에 엄마의 맛이라고 착각한 것뿐입니다. 리카는 가지이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며 ‘누군가를 위한’ 요리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요리를 시작합니다.




동시에 작가는 이런 가치관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피해를 준다고 말합니다. 가지이와 교제한 뒤 죽은 세 남성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고로 사망합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자살이나 사고로 유도했다고 말합니다. 그녀가 한 것이라곤 더 이상 그들의 곁에 있지 않았던 것뿐인데 말이죠. 그들을 죽인 건 가지이나 그녀가 떠난 뒤의 고독이 아니라 수치입니다. 남성은 여성들에게 모성을 찾고, 보살핌과 다정함을 바라는 것이 마땅하다는 세계에서 남성으로 대우받고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는 수치.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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