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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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하세요?”라는 말이 마치 인사말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미 많은 사람이 주식에 뛰어들고 있다는 거겠죠. 그리고 주식만큼이나 가상화폐 투자도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투자를 통한 사회발전이란 고결한 가치보다는 현실에서 일말의 행복을 얻기 위해 벌인 처절한 싸움을 하는 중이겠죠. 『달까지 가자』 속 다해와 은상, 지송은 자신들을 B03(비공채 3인방)이라고 부릅니다. 공채 출신이 아니기에 회사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연봉은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미래를 걱정합니다. 그렇기에 B03은 가상화폐의 말도 안되는 수익률이란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죠. 이 셋은 적금을 깨고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필사적으로 가상화폐를 사들입니다. 가상화폐 가격이 오르기도 하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떨어지기도 합니다. 코인 가격이 떨어질 때면 이 셋은 다시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오를 것이란 근거는 없습니다.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믿음이죠. 그렇지 못한다면 이들에게 남은 건 더욱 암울한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이들의 모습은 지금 당장 우리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생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다해와 지송이 처음에는 가상화폐 투자를 하는 은상을 비판했던 것처럼, 현실 속 사람들은 가상화폐 투자는 한탕주의라며 투자자들을 비판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정말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드는 청년들은 노동의 신성함을 무시하고 한탕만을 노리면서 오직 돈만을 좇는 몰상식한 사람일까요. 우리는 직장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지만 급여나 복지, 혹은 사회적 시선이라는 보상은 그에 준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다해처럼 내 잘못도 아닌 일로 상사에게 납작 엎드리며 그들의 말을 한 귀로 흘리는 생존기술을 익혀야 하죠. 그렇다면 적어도 가상화폐에서만이라도, 잠시나마 일확천금을 바라는 게 그렇게 욕심인 건가요.




저도 머지않아 B03처럼 취업을 할 것이고, 그 안에서 고통받는 일을 겪을 수도 있겠죠. 이미 그런 생활을 하는 주변 사람들을 봐왔기에 그런 불안은 더 큽니다. 하지만 ‘돈 많은 백수’라는 선택지가 제게는 없습니다. 등장인물 세 명의 투자가 성공하길 간절하게 바란 것도 그들에게 저와 친구들의 모습이 투영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그토록 주인공을 응원했을 겁니다. 주인공이 산 가상화폐의 가격이 오르면 제 가슴이 벅찼고, 떨어질 때면 마치 제 돈을 잃은 듯 머리가 멍해지며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제가 주인공을 이토록 응원했던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반전 없이 행복한 결말을 내어 준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가벼운 문체와 단순한 결말로 구성되어있지만 읽는 내내 스스로가 투영되어 집중해서 읽었던, 마지막 장을 넘긴 뒤 “음, 괜찮은 한 권이었어”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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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판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만 일반본을 샀습니다. 분홍색 바탕의 한정판은 분홍색 바탕에 발랄한 일러스트로 주인공들이 추구하는 행복, 희망의 이미지가 몽글몽글하게 떠오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달까지 가자』에서 주인공들이 느끼는 희망은 어두운 삶 속에서 잡힐 듯 말 듯 하면서도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무엇에 가까워 보였고, 사무실 책상 너머로 보이는 어두컴컴한 밤하늘 위에 홀로 떠 있는 달을 담은 일반본 표지에 이미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한정판 표지가 별로였던 건 절대 아니었어요. 일반본만큼이나 한정판의 표지도 너무 예뻤고 한정판이라는 희소성과 더불어, 함께 오는 양장 노트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도 어마어마했죠. 그래도 『달까지 가자』 출간 전부터 문학 플랫폼에서 진행되는 연재를 챙겨보며 나름대로 해석한 소설의 의미에 찰떡인 일반본의 표지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돈만 많았으면 둘 다 샀을 텐데 말이죠. 만일 제가 B03과 같은 시기에 이더리움을 사고 인내하며 제 희망도 함께 달까지 갔다면 한정판과 일반본 모두 샀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무의미한 아쉬움이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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