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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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표지 그림 때문이었습니다 

에곤 쉴레의 자화상이 생각나는 쌍둥이의 반누드?는 어딘지 일그러지고 고뇌가 가득한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장바구니에 넣어 두고 한참을 고민하다 구매했던 작품인데 

한 때 쉴레의 그림에 몰두했던 적이 있어 이 책을 선택하여 읽게 되었던 겁니다

 

 

이 작품은 어떻게 후기를 시작해야 할 지 알 수 없게 하는 독특한 소재와 반전들이 줄을 잇습니다
대체 어떻게 후기를 써야 하는 걸까 싶은...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작품은 읽다가 몇 번이나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멀쩡하게 읽다가 문득 나도 모르는 순간, 입을 떡 벌리고는 숨을 멈춘채, 눈을 천천이 끔벅끔벅 거리게 합니다 

숨이 턱 막혀 오면 그제서야 내가 입을 벌리고 숨도 멈춘 채, 눈을 끔벅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거죠

그리고는 더 이상 읽어나갈 수 없는 순간인 겁니다


 

가슴이 아플 사이도 없이 몰아치는 빠른 진행과 계속되는 반전들...

전쟁, 실종, 죽음은 물론이거니와 고아, 이복 남매, 장애인, 수간, 혼음, 동성애, 심지어 아버지를 죽이고 국경을 넘는...기막힌 이야기들

알콜중독, 정신병... 이 작품이 보여주는 전쟁의 아픔은 끝도 없습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 외도의 결과?로 헤어진 가족들이 가진 상처로 끝까지 만나지 못 하는 다소 비극적?인 결말까지.... 

 

 

이 작품을 다 읽고 역자해설을 읽으면서야 작가인 아고타 그리스토프가 여성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건조한 문체로 빠른 전개와 다소 엽기적이기까지한 묘사들을 해내는 작가가 여성일 거라는 사실은 의외였으나,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놀라운 신선함을 경험했습니다

 

대체로 세세한 심리묘사가 있는 작품의 경우, 이성의 심리를 묘사하는 건 아무리 대단한 작가여도 한계를 가지게 마련입니다

 

남성작가가 여성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를 하거나 여성작가가 남성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를 하는 건 자주 보기도 힘들거니와

제 짧은 문학적 경험이지만 기억을  한참 뒤져 보아도, 여성의 심리를 제대로 묘사해 낸 남성 작가는 없었거든요

그러나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철저하게 심리묘사를 자제하고 건조한 문체로 형제의 이야기를 써내려 감으로써 형제?의 행위나 삶을 통해 독자에게 그 심정을 간접적이고도 교묘하게 체험하도록 합니다.

 

아!  

무릎을 치게 만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철저하게 건조한 서술 방식과 독자가 딴 생각을 할 수 없게 하는 빠른 전개로 인해, 여류작가가 서술하는 이 소설 속 형제?의 이야기에 오히려 진실성의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했던 겁니다

 

자세하고 구체적인 서술이 없어 추정만 할 뿐이지 어느 전쟁, 어느 지역인지는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건조한 서술 방식과 어우러져 현장감이 느껴집니다

막연하게 관념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겪는 인물들의 아픔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식으로는 참 교묘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

처절한 경험이 없으면 써내려갈 수 없을 것 같은....

사실 이 작품에서 구체적인 어느 전쟁, 어느 지역인지는 중요하지도 않구요!

 

 

전쟁이 주는 그 아픔과 뒤틀린 운명, 욕망 같은 것들을 표현하는 데 전쟁이라는 배경이 필요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잠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전쟁의 상황이나 진행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일체 생략하고,

순수하게 참전한 여인들의 에피소드만으로 커다란 울림을 전달했던 것과 비교를 해 보게 됩니다


 

어지간한 작품에 눈도 깜짝 않는 분들은 읽어보셔도 좋지만

노약자나 지극히 섬세한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나  "내 영혼은 지극히 순수하고 맑고 깨끗함의 극치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는 절대 읽지 말라고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 인상 깊은 구절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욕을 하도록 행동하고는, 우리가 정말 끄덕없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옛날에 듣던 말들이 생각났다.

.

.

.

우리는 말했다

'귀여운 것들! 내 사랑! 난 너희를 사랑해... 난 영원히 너희를 떠나지 않을 거야... 난 너희만 사랑할 거야... 영원히... 너희는 내 인생의 전부야...'

반복하다 보니, 이런 말들도 차츰 그 의미를 잃고 그 말들이 주던 고통도 줄어들었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사과랑 과자, 초콜릿, 동전 등을 길가 풀숲에 던져버렸다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것은 버릴 도리가 없었다."


 

"온갖 궂은 일, 온갖 걱정에 빠져 지내는 게 여자야.

아이들 먹여 살려야지. 부상병들 돌봐야지. 당신들은 일단 전쟁만 끝나면, 모두 다 영웅이 되잖아.

죽었으면 죽어서 영웅, 살아남았으면 살아서 영웅, 부상당했으면 부상당해서 영웅.

전쟁을 발명한 것도 당신들 남자들이고, 이번 전쟁도 당신들의 전쟁이야

당신들이 원해서 그렇게 한 거야. 개똥같은 영웅들아!"

 

 

"난 말이야, 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거야."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지. 넌 다른 사람들만큼 크지는 않겠지만, 영리하잖아.

키는 중요하지 않아. 영리한 게 더 중요하지."


 

"너의 정열적이고 불안한 영혼은 너를 최악의 경우까지 몰고 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있어. 신의 자비는 무한하니까."

 

 

"난 그녀가 어려울 때 도와준 것뿐인 걸요. 난 그녀에게 아무런 약속도 한 적이 없어요."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본질만이 중요해요. 당신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 역시 당시을 사랑하니까요."


 

"노인께서 방금 말했듯이, 기억이 희미해지고, '고통은 줄어들고 있지요.'

불면증 환자는 눈을 뜨고 루카스를 바라본다.

'희미새지고, 줄어들고, 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네'"


 

"두려워하실 필요 없어요. 이 놈은 사람을 잡아먹지 않아요."


 

"소년은 조서에 서명을 했다. 거기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적혀 있었다.

국경을 같이 넘은 남자는 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이 소년은 열여덟 살이 아니고, 열다섯 살이다.

이름은 클라우스(Claus)가 아니다."

 

 
"당신의 심장은 정상입니다. 통증은 불안, 걱정, 심한 우울증에서 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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