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간의 남미 일주
최민석 지음 / 해냄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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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후기를 쓰기가 좀 난감하다.

10편의 소설, EBS 라디오 책 프로그램 강좌, 여행 칼럼 연재, 글쓰기 강의 10년,...

나로서는 들어본 적 없는 작가였지만 작가의 프로필을 보고 후기 이벤트에 냅다 손을 들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가볼 일 없는 남미에 대한 호기심과

작가의 이력으로 이 기행문에 관한 기대가 한껏 부풀었다.



게다가 난 기행문을 좋아한다.

최근에 읽은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도 좋았고, 요즘의 한국인 작가 미노(김미정님)의 글들도 좋하한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훌륭한 기행문들은 엄청나게 많다. 

작가가 얘기한 소설 <80일 간의 세계일주> 외에도 <돈키호테>, <걸리버 여행기>, <열하일기>, ....

그리고 기행문은 나를 실망시키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책을 1독하고 후기를 써야하는 지금... 이 책과 작가는 나를 너무나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했다.




일단 초반의 느낌은... 흠~ 여행 일기인가? 였다.

그 전날의 이동 경로와 에피소드로 씌여진 일기 형식의 기행문



그런데... 보자~ 꼭 방학 숙제로 (내키지 않는) 일기를 (억지로) 쓴 느낌이다.

시차와 배탈로 고생하며 징징징징~

사실 시차의 피로와 배탈을 이기고 매일 일정 분량의 글을 쓰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여행을 하면 물갈이로 두드러기나 배탈이 나기 때문에 조금쯤 이해할 수는 있다.

게다가 남미 여행이 힘들다!라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바, 조금쯤 현실적인 여행기라 인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작가 양반... 정말 하기 싫은 방학 숙제 하듯 쓴 일기라니 심하지 않소.

솔직히 '글 좀 쓴다'하는 여행 블로거들의 글을 찾아보면 이 책이 아니더라도 이런 정도 글들은 꽤 찾을 거 같다.)



기행문스러운 옵션으로 컬러풀한 남미의 자연과 도시들, 그리고 사람들... 정말 블로그 글처럼 사진도 많았다.

방학숙제 그림일기?같은 글들이 모여 기행문이 되니 그림 대신 사진이 실려 사진일기가 되었다.




그리고 또 읽으면서 발견한 점, 

역사 속 저명 인사들을 비유한 문장들이 곳곳에 보였다.

오직 **만이 저자를 이해할 수 있다거나, 자신도 **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스타일의 문장들.

처음 몇 번은 오~ 이런 촌철살인의 문장이라니 "신선한데!"라고 생각했지만

듣기 좋은 노래도 한 두 번이고, 아무리 좋아하는 짜장면도 내리 세 끼를 먹으면 질린다고

몇 번이나 반복되자 식상해졌다.

나중엔.... 작가가 자신의 배경 지식을 자랑하고 싶어서 자꾸 쓰나?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뭐 순수하게 본인의 일기라면 하루에 몇 번을 써도 상관없지만, 츨판을 계획한다면 무성의한 글쓰기가 아닌가 싶었다.

뭐~ 작가님께서 "내 스타일이오"라고 한다면 ... 할 말은 없다!

나 역시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느낌이오!일 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이 작가는 이런 글쓰기를 10년 이상 해온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글 곳곳에 보이는 가족에 대한 애정과 지속적인 집필!

그 원동력이 작가가 엄청나게 성실하거나, 지독한 끈기의 소유자거나, 작가가 느끼는 생계의 무거움이거나 간에 지치지 않고 쓰고 출판하는 집념은 놀라웠다.

게을러서 블로그 하나 꾸준히 쓰고 관리하지 못하는 내가 넘볼 수 있는 성실함은 아니다.

생업의 무게인가?



 


그래도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부분도 있다.



그나마 이 여행기가 정말 여행기스러워지기 시작하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작가 스스로도 여행의 만족도에 행복해 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부분에서 부터다.

이 작가는 행복도와 기분이 바로 글에 드러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공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퇴근 길의 흔들리는 전철 안에 있는 내게도 느껴졌다.

어쩌면 남미에는 한 번도 가볼 일이 없을지 모르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라면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작가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이름의 유래, 영화 해피투게더, 결국에는 못 간 이과수 폭포, 그리고 느끼함 가득했던 버터+빵...그리고 보르헤스 얘기까지 ^^

아~ 언젠가 부에노스아이레스만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 "해피투게더"를 다시 보고 싶어지게 했다.


(그리고 사족이지만, 콜롬비아에는 가보지 않더라도

사놓고 아직 펼쳐보지도 않은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조만간 꼭 읽어봐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 도착한 멕시코에서 작가는 이런 말을 한다.

"어차피 일상을 떠나서 새로운 경험을 하겠다고 왔으니 주저하지 않는 게 낫다.

그 경험이 자신에게 안전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데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미지의 영역에 있는 그 경험은 결국 미련의 영역으로 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을 여행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그만큼 기행문이 던져주는 울림은 일상을 영위하는데 교훈이 된다.

식상한 내용같지만 이것이 여행이 가르쳐주는 큰 가르침이 아닐까.

(평범한 진리는 어느 정도 식상하게 들리는 경향이 있다.)

살면서, 미지의 영역 앞에서 망설이다가 미련의 영역으로 흘려보낸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알면서도 그런 미련들을 쌓아가는 삶을 사는 내게 자꾸만 들려 주어야 할 잔소리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후기 초반에 늘어놓은 불평들은 이 문장에 용기를 얻어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동안의 나는 작가의 수고를 생각하면 서평 후원을 받은 책들의 후기에 혹평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작가는 마추픽추를 보면서 "이건 잉카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감탄한다. 

미국인이라면 군사기지를 짓고 방위비를 청구할 것이고,

독일인이라면 수도원을 짓고 안데스 산맥의 물로 맥주를 빚을 것이며,

일본인이라면 곳곳에 라면집을 열고

중국인이라면 차이나타운을 만들었을 거란다.

그리고 한국인이라면 이들 모두에게 월세를 받을 거라는 유머를 날린다.

소설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낼 법한 재미있는 대목이다.


페루의 쿠스코에는 상점들에 써 붙인 한국어, 일본어, 아랍어로 된 호객 문구들이 있다고 한다.

사용 인구가 많은 영어, 중국어 등의 호객 문구도 아닌 한국어, 일본어, 아랍어만 많은 이유에 대해 작가도 궁금해 한다.

마추픽추처럼 재미있는 작가의 상상력을 보여줬다면 더 재미있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산티아고의 혼성밴드를 보면서 작가는 더욱 더 일상에 열정을 쏟아부을 동기를 얻게 된다.

영상 7도의 쌀쌀한 날씨에 카디건 하나 걸치고, 얇은 목도리 하나 두른 채,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출연료도 없이 거리에서 겨우 동전 몇 닢을 받으며 웃음을 잃지 않고 춤추며 노래하는 이들"이야말로 정말 프로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결심은 한국에 돌아오는 마지막까지 작가의 마음 속에 이번 여행의 중요한 교훈으로 남는다.



부디 여행에서 얻은 에너지로 앞으로 좋은 글을 많이 써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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