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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학교란 무엇인가 - 민주시민 교육과정에서 민주적 학교문화까지
이대성 외 지음 / 교육과실천 / 2020년 2월
평점 :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지 11년 차가 되었다. 학교 교실에서는 자주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상황이 발생한다. 작년 1학년 학생을 가르칠 때 일이다.
쉬는 시간마다 몇몇 아이들이 힘을 합쳐 열심히 교실에 탑을 쌓았다. 아이들은 자기들 키 보다 큰 탑을 보며 즐거워했다. 아이들 탑을 쌓는 과정을 보는 내내 신기했고 어린이들의 협동과 노력에 감탄했다. 그런데 이 탑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다.
아이들 보행에 탑이 방해가 된 것이었다. 탑을 만든 다섯 명의 아이들은 그러나 정성 들인 작품을 부수는 것을 강하게 거부했다.
교실에서 이런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발달 이론에 따르면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아직 남들보다는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는 단계에 있다. (피아제의 '전 조작기' 단계) 이들이 이기적인 생각을 우선하는 건 발달 단계상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아직 만 7세의 1학년 아이들은 콜버그 도덕성 이론에서 보면 '도구적 상대주의 지향' 단계 즉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권위자의 규칙에 따르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이를 종합하면 아이들은 어차피 아직 남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이 힘드니까 권위자(어른)가 상황을 조정해 줘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내 경험상 1학년이라고 해서 절대 지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 지혜를 이끌어 내는 좋은 방법의 하나는 '토론'이다.
'철거(?) 찬성' 측 의견은 이러했다. 아이들이 지나다니는데 불편하고, 또 누가 잘못해서 탑을 망가뜨리면 그 아이가 매우 미안해질 거라는 의견이었다.'철거 반대'측 의견은 좀 더 완강했다. 자신들이 힘들게 만들었고 그러니 부수는 것이 너무 아깝고 눈물 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사회자(담임)의 중재로 아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발표했다. 찬성 측 입장을 들으며 반대 측 아이들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들은 탑을 부수기로 결정한다. 이제 또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어떤 방식으로 부술 것인가?
사회자가 제안한다. '선생님이 부수면 어떨까? 아이들은 반대했다. (음...1학년아이들. 선험적으로 부당함을 안다).
몇몇 아이들이 대안을 말했다. 1학년 아이들이 지혜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왈, 선생님보다는 만든 아이들이 부수는 것이 더 공평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만약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이 부수면 탑을 만든 아이들이 너무 속상할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었다.
결국 ‘아이들은 만든 아이들이 직접 부수는 것’으로 했고 5명의 탑 건축가들은 '하나, 둘, 셋' 한 다음 탑을 무너뜨렸다. 찬성 측, 반대 측 아이들 모두 환호하며 박수쳤다. 공동의 문제 해결의 기쁨을 맛본 순간이었다. 숱한 의사 결정의 순간에 이러한 방식으로는 할 수 없지만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을 때 아이들 스스로 느끼는 자부심을 그들의 표정과 환호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은 매우 이기적이며 어리석기도 하지만,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지혜의 빛을 발하는 것을 본다. 이것은 교사 생활을 하며 내가 아이들에게 발견하고 감탄했던 숱한 사건들 속에서 증명된 일이다.
요즘 '민주교육', '민주 학교'라는 말이 교육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 학교'란 현재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줄 대안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최근 <민주 학교란 무엇인가>를 읽고 민주주의와 민주 학교, 민주교육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에 의하면 민주주의란 완벽한 진리는 아니지만,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최악의 상황이란 ‘독재’다. 물론 민주주의는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구성원일 경우 중우정치로 흘러가는 맹점을 갖고 있지만 적어도 ‘독재’로 인한 위험에서는 구해준다.
<민주 학교란 무엇인가>에 등장하는 ‘민주 학교’란 여러 가지 의미가 혼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학교’를 '민주 학교'라 개념 지어 말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상적인 학교, 이상적 교육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이념이 교육과 교육행정에 반영되어야 한다. 즉, 절차의 공평성, 결과의 공익성이 학교 교육과정, 교육 방법, 그리고 교육 행정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절차(공정성) – 모든 사람이 비합리적이며 이기적일지라도 절차가 민주적이면 어느 정도의 악을 피할 수 있다.
*교육의 목적 (공익성) – 이기심에서 벗어나기. 공익의 관점에서 사고하기(전체의 부분으로서의 자신 인식), 시스템적으로 사고하기. 절차적 공정성을 이끌어 내는 문제 해결 방식.
민주 학교라는 이상향은 '방향'일뿐이다. 어떤 구체적 실천방향으로 제시되지 않는다면 이론에 그친다. 위에서 나는 대안으로 ‘토론’을 들었다. 토론을 비롯한 ‘문제 해결 교육’은 민주 학교, 민주교육 더 나아가 이상적 교육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공익을 목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개인을 벗어나 타인 공헌으로서의 자아를 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이 민주적이고 이상적인 사회의 일원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교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안을 제시할 책임을 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