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학교란 무엇인가 - 민주시민 교육과정에서 민주적 학교문화까지
이대성 외 지음 / 교육과실천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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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지 11년 차가 되었다. 학교 교실에서는 자주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상황이 발생한다. 작년 1학년 학생을 가르칠 때 일이다.

쉬는 시간마다 몇몇 아이들이 힘을 합쳐 열심히 교실에 탑을 쌓았다. 아이들은 자기들 키 보다 큰 탑을 보며 즐거워했다. 아이들 탑을 쌓는 과정을 보는 내내 신기했고 어린이들의 협동과 노력에 감탄했다. 그런데 이 탑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다.

아이들 보행에 탑이 방해가 된 것이었다. 탑을 만든 다섯 명의 아이들은 그러나 정성 들인 작품을 부수는 것을 강하게 거부했다.
 
 교실에서 이런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발달 이론에 따르면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아직 남들보다는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는 단계에 있다. (피아제의 '전 조작기' 단계) 이들이 이기적인 생각을 우선하는 건 발달 단계상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아직 만 7세의 1학년 아이들은  콜버그 도덕성 이론에서 보면  '도구적 상대주의 지향' 단계 즉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권위자의 규칙에 따르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이를 종합하면 아이들은 어차피 아직 남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이 힘드니까 권위자(어른)가 상황을 조정해 줘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내 경험상 1학년이라고 해서 절대 지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 지혜를 이끌어 내는 좋은 방법의 하나는 '토론'이다.

 

'철거(?) 찬성' 측 의견은 이러했다. 아이들이 지나다니는데 불편하고, 또 누가 잘못해서 탑을 망가뜨리면 그 아이가 매우 미안해질 거라는 의견이었다.'철거 반대'측 의견은 좀 더 완강했다. 자신들이 힘들게 만들었고 그러니 부수는 것이 너무 아깝고 눈물 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사회자(담임)의 중재로 아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발표했다. 찬성 측 입장을 들으며 반대 측 아이들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들은 탑을 부수기로 결정한다. 이제 또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어떤 방식으로 부술 것인가?

 

사회자가 제안한다. '선생님이 부수면 어떨까? 아이들은 반대했다. (음...1학년아이들. 선험적으로 부당함을 안다).
몇몇 아이들이 대안을 말했다.  1학년 아이들이 지혜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왈, 선생님보다는 만든 아이들이 부수는 것이 더 공평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만약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이 부수면 탑을 만든 아이들이 너무 속상할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었다.

결국 ‘아이들은 만든 아이들이 직접 부수는 것’으로 했고 5명의 탑 건축가들은 '하나, 둘, 셋' 한 다음 탑을 무너뜨렸다. 찬성 측, 반대 측 아이들 모두 환호하며 박수쳤다. 공동의 문제 해결의 기쁨을 맛본 순간이었다. 숱한 의사 결정의 순간에 이러한 방식으로는 할 수 없지만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을 때 아이들 스스로 느끼는 자부심을 그들의 표정과 환호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은 매우 이기적이며 어리석기도 하지만,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지혜의 빛을 발하는 것을 본다. 이것은 교사 생활을 하며 내가 아이들에게 발견하고 감탄했던 숱한 사건들 속에서 증명된 일이다.
 

요즘 '민주교육', '민주 학교'라는 말이 교육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 학교'란 현재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줄 대안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최근 <민주 학교란 무엇인가>를 읽고  민주주의와 민주 학교, 민주교육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에 의하면 민주주의란 완벽한 진리는 아니지만,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최악의 상황이란 ‘독재’다. 물론 민주주의는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구성원일 경우 중우정치로 흘러가는 맹점을 갖고 있지만 적어도 ‘독재’로 인한 위험에서는 구해준다.

 

 <민주 학교란 무엇인가>에 등장하는 ‘민주 학교’란 여러 가지 의미가 혼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학교’를 '민주 학교'라 개념 지어 말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상적인 학교, 이상적 교육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이념이 교육과 교육행정에 반영되어야 한다. 즉,  절차의 공평성, 결과의 공익성이 학교 교육과정, 교육 방법, 그리고 교육 행정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

 

*절차(공정성)  – 모든 사람이 비합리적이며 이기적일지라도 절차가 민주적이면 어느 정도의 악을 피할 수 있다.

*교육의 목적 (공익성) – 이기심에서 벗어나기. 공익의 관점에서 사고하기(전체의 부분으로서의 자신 인식), 시스템적으로 사고하기. 절차적 공정성을 이끌어 내는 문제 해결 방식. ​

 

민주 학교라는 이상향은  '방향'일뿐이다. 어떤 구체적 실천방향으로 제시되지 않는다면 이론에 그친다. 위에서 나는 대안으로 ‘토론’을 들었다. 토론을 비롯한  ‘문제 해결 교육’은 민주 학교, 민주교육 더 나아가 이상적 교육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공익을 목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개인을 벗어나 타인 공헌으로서의 자아를 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이 민주적이고 이상적인 사회의 일원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교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안을 제시할 책임을 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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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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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안타까웠던 그날... 되돌릴 수 있다면


화재가 난 역에 한 기관차가 진입했다. 연기가 가득 찬 터라  승객들은 내려야 할지 어떨지 몰라 당황했으며 기관사 또한  우왕좌왕하다가 일단 유독 가스를 차단하기 위해 객차 문을 닫아 버렸다. 역을 빠져나가려 했으나 불이 번져 붙은 바람에 단전되어 전동차는 움직이지 않았고 계속 단전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간을 허비했다. 열차가 움직이지 않자 승객들에게 대피하라고 문을 열어 준 뒤 기관사는 실수로 마스터키를 뽑아버린 채 탈출하게 된다. 마스터키가 뽑힌 바람에 객차 문은 자동으로 다 닫혀 버리고 거의 모든 승객은 탈출하지 못한 채 참사를 당하게 된다.


우리 기억 속에 너무나 안타깝게 자리 잡고 있는 대구지하철 참사 이야기다. 이 사건은 위기 상황 속 의사결정자의 판단 오류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개인적, 사회적으로 우리는 크고 작은 의사결정 속에 살아간다. 특히 위기 시에 내리는 결정은 개인 혹은 사회의 운명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때 정확한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판단 오류를 범할 때가 많다.


10가지 자동적 사고 오류


책 <팩트 풀니스>를 보면서 왜 사람들이 의사결정 상황에서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메커니즘을 살펴보게 된다.  종합하면 바로 '자동적 사고의 오류'이다.  



자동적 사고란 일종의 사고 편향으로, 어떤 상황에 부딪힐 때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 패턴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 자동적 사고에 지배받고 있다. 자동적 사고(사고의 패턴)가 우리 사고를 단순화시켜 결단을 빠르게 내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자동적 사고를 인지하지 못하고 행동할 때 개인과 집단은 때로 매우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다. 특히 긴급한 경우 그 오류는 잘 발생한다.


책 <팩트 풀니스>는 이런 사고의 편향을 지적해준다. 그리고 세계를 바로 볼 것을 독려한다. 그럴 때 세계를 우리가 더 잘 가꾸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10가지 자동적 사고 편향을 지적하면서 우리가 깊게 생각하지 못하게 될 때 생기는 개인적, 사회적 위험을 알려준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다음 10가지다.


위의 10가지를 다음의 카테고리로 묶어 생각해 볼 수 있다.


10가지 편향 본능에서 벗어나는 방법


1. 고립에서 벗어나 시스템적으로 사고하라.


여기에 해당되는 본능은 단일 관점 본능, 비난 본능, 다급함 본능이다. 문제의 본질을 단일화하지 말고 시스템적으로 생각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자면 빌 게이츠 재단이 4단계 국가 아동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연구하고 있는 물이 필요 없는 수세식 화장실 같은 것이다.


2. 감정에서 벗어나 데이터를 직시하라


해당되는 본능은 부정 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이다. 우리는 세상이 생각보다 감사한 일들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문제 예컨대, 방사능, 유전자 조작 식품 같은 것에서 좀 더 냉정히 생각하는 소비자가 되어 지금 우리에게 그것뿐 아니라 다른 산재한 문제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3. 추상에서 벗어나 구체로 사고하라.


해당 본능은 간극 본능, 직선 본능, 운명 본능, 일반화 본능이다. 너와 나를 나누는 집합적 사고, 지금 추세가 그대로일 것이라는 관성적 사고, 내 생각이 옳다는 일반화 본능에서 벗어나 사건, 사람, 집단을 객체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위기의 시대, 필요한 정신


자동화된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지성의 참모습이다.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해당된다. 나는 나의 문제를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나 비난 등에서 벗어나 시스템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또한 부정적으로 흐르는 사고를 그대로 놔두지 않을 자유가 있다. 지나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내게 닥친 문제를 지나치게 크게 보지 않을 필요가 있다. 지금 나의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거나 또 계속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이것을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보거나 나는 어떠어떠한 사람이다라는 꼬리표를 달 필요가 없다.


위기의 시기일수록 냉철한 판단력이 요구된다. 책 <팩트풀니스>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저지르는 수많은 사고의 편향 오류를 바로 잡아 줄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책이다. 해피풀니스를 위해 <팩트풀니스>를 읽으며 머릿속을 먼저 팩트 샤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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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나를 만드는 오직 66일
자브리나 하아제 지음, 오지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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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인이 보내준 동영상을 보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보건 국장이 기자 회견에서 "오늘부터 얼굴을 만지지 마세요. 바이러스가 번지는 주요한 원인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 한 뒤 바로 자신의 손가락에 침을 묻히는 행동을 하는 웃픈 영상이었다.

 

위 해프닝의 주인공은 그 순간 자신이 한 일을 인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행동했을 것이다. 이만큼 습관은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하는 강력한 상대(친구 또는 적)이다.

 

습관에 관한 과학적 접근

 

습관의 형성과 변화에 관한 꽤 많은 연구들이 있었고 그 중 '행동과학''인지과학'은 습관 형성에 대해 많은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최근 읽은 책 <원하는 나를 만드는 오직 66, 위즈덤하우스>는 습관 전문 트레이너가 검증된 방법으로 내게 '좋은 습관' 형성을 위해 1대일 코칭해 주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다.

 

새로운 행동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는 데는 평균 21일이,

습관으로 만들어지는 데는 66일이 걸린다.

-런던대학교 필리파 랠리 박사-9p

 

책은 런던대학교에서 실시된 습관에 관한 연구 이론을 중심으로 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하나의 습관이 '자동성'을 지닐 때까지는 평균 '66'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하루 이틀 정도 실험을 거르는 것은 습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9p).'

 

습관을 바꾸는 것이 힘든 이유

 

뇌의 무게는 약 1.36킬로그램으로, 체중의 2~3퍼센트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그 작은 기관이, 우리 몸이 소모하는 열량의 20~25퍼센트를 사용합니다. 산소와 혈액도 끊임없이 날라다 줘야 하지요.11p

 

우리가 습관을 바꾸거나 새 습관을 형성하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 때문이다. 우리 뇌는 많은 열량을 사용하기 때문에 효율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됐다. '습관' '자동적 사고 또는 행동'은 뇌의 에너지를 아끼는 장치이다. 뇌는 습관이 주는 결과와는 상관 없이 기존에 형성된 습관을 지키려한다. 따라서 기존 습관의 변경 또는 새 습관의 형성을 위한 새 노력이 감지 될 때 '저항'하는 것이다.

 

습관이란 무엇인가

 

책에서는 습관의 특징을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한다.(13p)

1. 습관은 우리가 그것을 행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2. 무언가 습관이 되면 그에 대한 감정적 반응은 약화된다.

3. 상황과 습관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3'상황과 습관의 연결성'은 습관을 변화시키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차에 올라타면 좋아하는 라디오 채널을 틀고 커피 전문점에 들러 블루베리 머핀과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주문합니다. 모든 행동들은 서로 이어져 흐릅니다. 14p

 

위의 예시에서 보자면 '차에 올라탐 -> 라디오 채널을 켬', '커피 전문점에 들림->블루베리 머핀과 아메리카노'는 앞선 행동이 다음 행동을 저항감 없이 즉 자동적으로 촉진시킨다. 이렇듯 습관은 작은 원인과 결과의 연결 고리들이 촘촘히 이어져 만들어 진다. 즉 그 연결 고리에 틈을 내어 습관 체인을 변경, 또는 제거 할 수 있는 것이다.

 

66일의 습관 트레이닝 코치

 

나는 '운동'66일의 트레이닝의 주제로 잡았다. 책은 '66'동안 개인 습관 트레이너가 되어 주는 구성 방식을 갖고 있다.

 

이렇게 시키는 대로 하나 하나 하다 보니 마음을 다 잡게 된다. 그저 막연했던 목표가 하나 하나 실제화된다. 이런 말이 생각났다.

 

'눈에 보일 정도로 손으로 만져질 정도로 구체적이지 않으면

결코 무언가를 이룰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나의 66일간의 트레이닝 코치로 함께 하기로 했다. 운동 습관이 형성된 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의 방식에 따라 습관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 또한 즐겁고 행복한 여정이 될 것 같다. 66일 이후 나의 변화를 꿈꿔본다.

마지막으로 책의 맨 마지막 장과 그 장에 나온 문구를 소개하며 마친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은 드문 데 반해 무엇을 가지지 못했는가에 대해서는 늘 생각한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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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돌멩이 오리 - 2020 화이트 레이븐즈 선정도서 문학동네 동시집 77
이안 지음, 정진호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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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에 봉준호가 있다면 동시계에는 이안이 있다!!!
언어의 어떤 경지에 오른 분이 아닌가한다. 글자동물원에 이어 또다시 이런 동시를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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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 퇴진 요정 김민식 피디의 웃음 터지는 싸움 노하우
김민식 지음 / 푸른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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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MBC) 김재철 사장과 이명박 대통령은 달랐다. 무슨 양파도 아니고 까도 까도 온갖 비리가 계속해서 나오는데, 눈도 깜짝 안 했다."(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128쪽)


최근 출간된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김민식, 푸른숲, 2020>를 읽으면서 잠시 기억이 희미해져 버릴 뻔한 시절을 떠올렸다. 지금 코로나 19로 일상이 무너지자 보통의 평온한 날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듯, 그때 시절이 그랬다. 특히 언론 탄압은 말로 다 못했던 때. 하도 방송이 무슨 5 공화국 시대도 아니고 대놓고 어이없이 돌아가니까 국민들은 공영방송에 등을 돌리게 되고 '나꼼수' 같은 팟캐스트로 언론의 중심이 옮겨가고 있었다. MBC, KBS 뉴스는 기레기(기자+쓰레기) 방송이라며 조롱받았다. 공영방송 파업 소식은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 어차피 공영방송에 대한 기대나 애정이 사람들 마음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공영 방송에 몸담고 있던 이들은 괴로웠을 테고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다. 싸울 것이냐, 부역자가 될 것이냐. 이 책은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들에 대해 무심했던 사이, 방송 정상화를 위해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며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던 날들이었다.



예능 드라마 PD, 색다르게 유명해진 사연


저자 김민식 PD는 ‘뉴 논스톱(200~2002)’과 ‘내조의 여왕(2009)’을 히트시킨 예능감 넘치는 PD다. 그런데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MBC 프리덤’이라는 노조 영상과 ‘김장겸은 물러가라’라는 1인 라이브 방송이다. 어쩌다 예능PD는 직원들과 뮤비를 만들고 1인 투쟁 방송을 찍게 되었을까?

'방송 만들어서 시청자들을 재미나게 해 주는 일이 최고의 공익(45쪽)'이라 여기며 파업이나 노조에 관심 없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 어쩌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노조 부위원장 직을 맡게 되면서 인생이 180도  변하게 된다. 드라마 제작에 차질이 생기는 게 싫어 처음에는 어떻게든 파업을 막아보자 했다. 하지만 최승호 PD, 이용마, 박성제 기자와 같은 분들의 헌신된 삶에 영향을 받으며 점점 개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눈떠가게 된다.

예능 피디답게 이왕 하는 싸움 재밌게 하자며 '굿판'도 벌이고 'MBC 프리덤'이라는 뮤직비디오도 만들고 'MB 낙하산 김재철은 퇴진하라'는 구호를 등에 달고 마라톤에 참가하기도 한다. 그러다 검사한테 불려 가 영장 심사도 받는 등 수모를 겪는다.

이후 그의 PD로서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윗선에 찍힌 대가로  제작 일선에 배제된 채 방송 송출 부서로 옮겨진다(그에게 그것이 더욱 끔찍한 형벌인 것은 정권에 부역하는 뉴스를 강제 시청해야 하는 업무였기 때문이었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티고 버틴 그에게 2017년이 온다. '정윤회' 아들을 캐스팅하라는 윗선의 부당한 지시를 공론화하게 되면서 그는 MBC의 공공의 적이 된다. 그러나 물러나지 않는다. PD정신을 살려 그는 MBC 사옥에서  '김장겸은 물러가라'는 1인 투쟁 퍼포먼스를 라이브 방송으로 중계하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의 투쟁기는 최승호 PD의 영화  <공범자들>에 기록된다. 영화 <공범자들>의 개봉으로 공영방송 정상화를 향한 국민들의 심이 높아진다. 여론의 힘을 업고  MBC 파업이 재개되며 결국 김장겸 사장 해임되어 물러난다.


지는 싸움을 계속한 이유


2015년, 주조정실 엠디로 발령이 났다... 주조정실은 유배지 중에서도 'A급 전범'들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266쪽)


그토록 신나게 프로그램을 만들며 행복했던 피디가 작품 제작에서 손을 놓아야 하는 상황은 견디기 쉽지 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친한 선배를 통해 JTBC로의 이적을 권유받았을 때 그저 웃음으로 넘긴다. 그가 저 지경이 된 MBC에서 끝까지 버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게 드라마 피디라는 업을 빼앗고 유배지로 나를 쫓아낸 사람이 MBC 사장이 됐을 때 느꼈다. 운명이 내 멱살을 흔들고 패대기쳤다고. "이제 어떡할 거야? 도망갈 거야?" 그 순간 달아났다면,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부끄러운 마음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중략)
싸움의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이다.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는 것은 나를 죽이는 일이다.(202쪽)


2012년 파업 이후 그는 계속 지는 싸움을 반복해 왔다. 그렇지만 싸워야 할 때 싸우는 법을 배웠고 버텼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악의 평범성


이렇게 지는 싸움을 계속 해온 사람들이 있는 반면  파업으로 비어있던 자리를 꿰차며 승승장구한 무리도 있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아이히만'이라는 나치 동조자를 재판하는 과정에서 피고 아이히만의  '나는 무고하다'는 태도를 보며 저자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악'을 분석, 통찰한 책이다. 아이히만은 매우 평범한 사람으로 무슨 일을 맡든 의무를 다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치의 사상에 동조한다거나 악의를 가지고 일 하지 않았기에 스스로 억울해했다. 그렇다면 아이히만, 그의 죄는 무엇일까?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를 '타인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생각의 무능'으로 설명했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무능력은 악이다' 
 -한나 아렌트-


MBC 파업 때 보여준 노동자들의 각기 다른 선택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 한 사람들로 가득했다면 오늘날 우리 방송은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비단 방송뿐일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지금 우리가 즐겁게 누리는 많은 것들이 실은 '악의 평범성'을 거부하며 타인과 연대한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무능하고 평범한 악인이 되지 않기 위하여


개인이 가치 판단의 기로에 놓여 행동을 선택해야 할 때 무능하고 평범한 악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부지런히 검열해야 한다. 


1. 현실을 넓은 틀에서 보고 있는가?


앞서 보았듯 김민식PD에게는 원래 드라마 제작에 대한 열정이 파업 동참의 이유보다 더 컸었다. 그러나 그는 "당신들의 소임이 방송인데, 왜 맡은 바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냐?"는 질문에 "상한 음식인 줄 알면서도 계속 만드는 게 요리사의 책임인가요?(120쪽)"라고 답하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기까지 그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제작 자율성이 보장되는 조직문화 덕분에 MBC는 숱한 특종을 내고, 인기 프로그램을 양산했다. 그 덕분에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신뢰받는 방송이 될 수 있었다. 연출로서 나의 행복의 근원이기도 했던 제작 자율성은 사실 과거 MBC 노조 선배들이 군부독재와 피 흘리며 싸워 얻어낸 공정방송의 결실이다. (91쪽)

악의 평범한 동조자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신만의 좁은 틀에 갇힌 현실 인식에서 벗어날 때 가능하다. 내 행위가 미치는 결과의 범위를 '타인'에게로 확장하는 것이다.


2. 개인의 이익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김민식 PD는 결국 한 창 전성기 때 부당한 인사 발령으로 활동을 제지받게 된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드라마 연출의 전성기는 40대다. 한창 일해야 할 나이에 쫓겨났다. 나이 쉰을 넘겨 복귀했지만, 이제는 드라마 감독으로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드라마 피디는 시청자 동향에 민감한 직업이다. 매년 새로운 작가와 배우가 쏟아진다. 변방에서 산 7년 동안 연출 감각도 시장 감각도 다 잃었다. (280쪽)


투쟁의 끝에 다시 정상화를 이루어 냈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 많은 것이 달라져 버렸다. 그는 자신이 중심적 자리를 차지했을 때 혹시나 과거'한 많은' 선배들(제작 일선에서 물러나 인정받지 못한 한을 품은 선배들 중 후에 보직에 올라 그 못한 한을 풀려 후배를 부당하게 괴롭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이 그랬던 것처럼 괴물이 될 것을 우려한다. 그리고 후배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길을 내어주겠다는 선택을 한다.

드라마 피디로서 전성기가 이미 끝난 나와 달리 임채원과 서정문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연출로서 기량을 꽃피우고 MBC에 부활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역할은, 드라마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회사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회사를 바꾸는 일이 아닐까?... 내가 꼭 무엇이 되어야, 혹은 무엇을 해야 MBC가 좋아지는 게 아니다. 후배들이 마음껏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길을 내어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이들이 MBC의 희망이다. 나에게는 개인적인 소명이 따로 있다. 재주 많고 역량 있는 후배들을 가로막는 괴물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걸 위해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 (280쪽)


승리의 열매를 후배들에게 양보하는 장면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조직과 드라마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만큼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다. 


3. 내 선택은 자의에 의한 것인가, 타의에 의한 것인가?


아무리 좋은 선택이라 할 지라도 그것이 자발적 동기가 아니라면 오래갈 수 없다. 김민식 PD가 힘든 기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싸워 남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영화(레미제라블)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장면이 있다. 장 발장이 바리케이드 학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니, 마리우스를 살리기 위해 하수도를 걸어가는 장면이다. 파리 시민들의 배설물로 가득한 하수도를 허우적거리며 헤쳐나가는 장 발장의 모습. 나는 그 장면이 앞으로 내가 인생을 살아야 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똥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서 이 깜깜한 수로의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빛을 만날 테니까.'(127쪽)


앞서 보았듯 처음에는 파업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취했었으나 점차 자신만의 파업 스타일(?)을 장착하며 저항의 중심에 서게 된다. 만약 분위기에 이끌려 참여했거나 생각 없이 동조했다면 이렇게 끈질기게 투쟁을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사장님, 어금니 꽉 깨무세요.' 등의 남다른 구호와 방식 등 상투성에서 벗어난 참신함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은 끈기의 원동력일 뿐 아니라 투쟁에서 마저 자기 다움을 빛나게 한다. 


삶이 예능이요, 드라마다


"오, 말해줘. 왜 나를 내쫓았는지. 사장님은 왜 아직도 안 나가고 버티는지."


'적들에게는 괴로움을, 우리 편에게는 즐거움을!(238쪽)'을 모토로 매주 집회에서 이렇게 노래를 개사하며 새로운 공연을 했다. 오래 버티며 싸우기 위해 '재미'있는 방식을 선택한다. 

내가 좋아하는 코미디 영화 가운데 최고의 장면은 <인생은 아름다워> 마지막 장면이다. 아들 조슈아를 살리기 위해 나치 수용소 생활을 숨바꼭질 놀이로 바꿔버린 (주인공) 귀도는 마지막에 숨은 아들이 보는 앞에서 독일 병사에게 끌려간다. 잡혀가는 아빠를 보고 숨바꼭질에서 이겼다는 생각에 아이는 환하게 웃고, 귀도 역시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화답하는데, 그걸 보는 관객은 눈물을 참기 힘들다. 예전에 <유태인의 유머>라는 책을 읽었는데, 상당수가 나치 수용소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더라.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은 유머 감각을 갈고닦았나 보다. (147쪽)


김민식 의 PD재능은 운명의 장난(?) 덕분에 정규 방송보다는 투쟁 방송이라는 장르에서 빛을 발하였다. 자신을 타고난 딴따라라고 표현하는 PD답게 그의 PD로서의 생명줄을 자르려는 세력에 굴하지 않았다. 삶으로 예능을 찍고 드라마를 찍었다. 우리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연출하는 인생 PD라고 할 수 있다. 인생 자체가 히트작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


마치며 


책을 읽고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또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돌아본다. 살면서 누구나 자신의 삶 또는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 좋든 싫든 싸워야 할 때가 있다. 행여 지금 지고 있을 지라도 옳은 것이라면 계속 나아가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전염병과 일대 전투를 벌이고 있다.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는 어둠의 시기를 헤쳐나가는 비법을 보여준다. 책을 읽고 생각했다. 도망치지 않고 싸우기로 했다면 이왕 싸우는 거 "즐겁고 독특하고 당돌하게!" 싸워보자. 혹시나 이 기간이 길어질 지라도 긍정과 연대의 힘으로 결코 좌절하거나 엎어지지 말아야겠다고 말이다.





#푸른숲 #김민식 #나는_질_때마다_이기는_법을_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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