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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ㅣ 창비시선 527
백무산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평점 :
제목만으로도 오래 마음에 남는 책이었습니다. 보통 우리는 “내가 살아간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정반대의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인간은 홀로 자신의 삶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가, 혹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타인의 시간과 희생 속에서 살아지는 존재인가를 말입니다. 저는 이 시집을 읽으며 한 사람의 삶은 결코 개인의 의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누리는 하루에도 누군가의 노동과 사랑, 기다림과 희생이 스며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백무산 시인의 언어는 결코 화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백하고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절제 속에는 삶의 가장 깊은 온도가 숨어 있었습니다. 시인은 거창한 철학이나 과장된 감정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노동 현장의 거친 숨결, 지친 사람들의 어깨, 외롭고도 묵묵한 일상을 통해 인간 존재의 존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누군가의 손을 조용히 붙잡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큰 소리로 위로하지 않지만, 끝내 사람을 울리는 힘이 있습니다.
특히 저는 이 책이 “함께 살아간다”는 말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주었다는 점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현대 사회는 점점 더 경쟁과 속도를 강조합니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밀어내고, 때로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 채 자신의 성공만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백무산 시인은 그런 시대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고, 서로의 삶을 조금씩 살아주는 일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이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그 메시지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목소리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시집 전체에 흐르는 ‘겸허함’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노력만으로 삶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부모의 희생, 이름 모를 노동자의 땀, 곁을 지켜준 사람들의 사랑 속에서 살아갑니다. 시인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조용히 비추어 줍니다. 그리고 독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의 삶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저는 그 질문 앞에서 한동안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었습니다.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누군가에게 빚진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슬픔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현실은 고단하고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시인은 끝내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 함께 견디려는 의지, 작지만 따뜻한 연대의 힘을 끝까지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집은 읽고 난 뒤 오히려 사람을 더 사랑하고 싶게 만듭니다. 세상이 각박할수록 인간다움은 더욱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저는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을 단순한 시집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려는 다정한 시선, 약한 존재를 향한 깊은 연민, 그리고 끝내 사람을 믿으려는 마음이 이 책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동안보다 덮은 뒤에 더 오래 남습니다. 마치 삶의 한구석을 조용히 밝혀주는 작은 등불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누군가가 나를 살아주고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조금씩 살아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백무산 시인의 시는 바로 그 잊고 있던 진실을 가장 따뜻하고도 묵직한 언어로 일깨워주었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이 책을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