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음 돌보는 동반 - 안셀름 그륀 신부의 절망 해독서
안셀름 그륀 지음, 조한규 옮김 / 생활성서사 / 2021년 11월
평점 :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과 함께 우십시오. (로마서 12:15)
오래전 선물로 받았던 북마크에는 Footprints (발자국)라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꿈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걷고 있던 한 사람이 지나온 나날 중 발자국이 한 쌍이었던 구간이 있음을 보고 예수님께 왜 그 시기에, 마침 가장 힘들었던 그 시기에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는지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사랑하는 아이야, 그때, 너의 그 어려운 때에 남겨진 발자국은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업고 있었다.’라고 하십니다. 마태오복음의 마지막 구절 (28:20)에는 주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분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라고 확실하게 느낀다는 것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흔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아니, 우리는 조용히 멈춰서 그분의 임재를 느끼는 것에, 느껴보려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긴 한 것일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에겐 가야 할 곳이, 만나야 할 사람이, 해야 할 것들이 그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어떤 형태로든 ‘고통’이 우리의 영적 성장에 필수적인가 봅니다. 하느님께서 메가폰을 드시기 전까지 우리는 세상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정신없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채 달려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 고통을 불러오는 위기의 순간은 우리에게 불쑥 찾아옵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은 이렇게 위기의 순간을 맞은 많은 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하신 경험들을 토대로 <마음 돌보는 동반>을 쓰셨습니다. 일상이 파괴되고, 마음의 평화가 사라지고, 삶이 방향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 절망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 것일까요? 신부님의 ‘절망 해독서'는 우리가 해결의 실마리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그 힌트는 우리가 슬퍼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산상수훈 (Beatitudes)에서 말하듯이 우리는 슬퍼하는 가운데 우리가 받은 ‘복'을 깨닫게 됩니다. 잃어버린 것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이든, 직장이든, 건강이나 젊음이든 그것은 부재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삶의 소중한 것들을 깨닫게 합니다. 그륀 신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삶의 위기는 우리로 하여금 ‘더 의식적이고 더 주목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륀 신부님은 ‘슬픔'을 느끼며 대면하라고 하십니다. 슬픔은 자기 자신과 더 깊이 만날 수 있도록 영혼의 고요 속으로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거기서 바쁜 삶 속에서 우리가 추구했던 것들, 이루었던 것들, 상실을 아파하는 바로 그것들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됩니다. 우리는 비록 잃었지만, 그것이 우리의 전부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사랑과 평화 속에, “하느님의 너른 손안에 있음" (64쪽)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침묵 가운데 영혼의 그 깊은 곳에서 하느님께서 지으신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자신'을 이해하는 것으로 남들에게서 이해받지 못한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일치할 때 행복해집니다.” (103쪽) 이렇게 자신과 교류하고 이해해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또한 하느님의 용서와 무조건적 사랑을 체험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찾은 나의 모습으로 더 진실하게, 더 당당하게,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마음 돌보는 동반>을 읽는 내내 저는 여러 번 책을 덮고 생각에 잠겨야 했습니다. 제가 겪은 위기들을 돌이켜 보고 슬픔과 대면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륀 신부님께서 제안하였듯이 ‘실패의 상징이자 실패 극복의 상징'이기도 한 십자가를 자주 바라보며 예수님께서 저를 안아주시는 상상을 해 보려고 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저의 모습을 찾고 일치를 이루어야겠습니다.
<마음 돌보는 동반>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 나가야 하는, 위기의 사람들뿐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돌보는 ‘동반자'가 되어야 하는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사목활동에 참여하시는 신부님들, 수녀님들, 교회에서, 삶 속에서 이웃을 돌보고자 하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것을 우리의 ‘동반'을 통해 선포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