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말은 웃어넘기지 않습니다 - 나를 지키고 상대를 움직이는 말의 기술
도쓰게키 도호쿠 지음, 노경아 옮김 / 일센치페이퍼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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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에서 나온 다른 사람의 말

도쓰게키 도호쿠 지음, 노경아 옮김, 『불편한 말은 웃어넘기지 않습니다』, 일센치페이퍼, 2020


나를 불편하게 하는 말들이 있다. 그런 말들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툭 던져진다. 반응할 수 있는 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잘못된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서, 혹은 되려 비난받을 게 뻔해 넘어가는 편을 택한다. 모든 말들에 반박한다는 게 불가능이라는 걸 알지만, 침묵을 지킨 나도 그 말에 동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다. '다음번엔 짚고 넘어가야지!' 다짐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평소 '나만의 옳고 그름을 끊임없이 생각(p.111)'하는 일에 게을렀기 때문이다.


이 책의 1, 2부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말들이 어떤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구체적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상대의 처우를 공격하는 발언은 '인신공격의 오류', 현재 상황과 관련 없는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피장파장의 오류'라는 식이다. 이는 나의 마음을 헛소리로부터 지키는 데에 분명 효과가 있다. 헛소리가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나면 그 주장을 나와 분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차별과 혐오의 말은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존재들에게도 상처를 주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런 주장이 사회와 멀리 떨어져 있고, 소수의 집단에서 공유되는 데 그칠 거라는 생각 또한 틀렸음을 절실하게 경험했다. 경제, 정치,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앞장서 억지 주장을 하고, 그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그를 중심으로 결집했을 때 현실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불편한 말이 가진 오류를 지적하고 반박하려 한다. 타인을 향하는 말의 화살이 더 멀리 나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물론 논리적인 접근이 그 사람의 말을 멈추게 하였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것은 어렵다. 수용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논리적인 지적을 해봐야 그는 더 굳게 마음을 닫고, 내적 논리를 강화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객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객관적 접근은 감정을 배제한 후 이성과 논리로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감정마저도 논리와 이성적 영역에 포함해 분석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책에서 예를 든 강남역의 '남자 A'를 생각해보자. 남자 A는 본인을 신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이 자신은 신이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도 자유라고 주장하며 칼을 꺼냈을 때 그를 논리만으로 설득시킬 수 있는가?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가 본인을 신이라고 생각하게 된 심리적 요인과 그의 내적 논리를 파악해야 한다.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음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스스로 신이라고 주장하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야만 남자 A도 자신의 생각에 비현실적인 지점이 있었다는 걸 깨닫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고, 이는 공동체의 안전과 성숙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나만의 옳고 그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는 개인의 합이 아니다. 도덕이나 윤리 또한 시대나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자신의 기준에서 다시 생각하라는 말이 타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공동체나 사회가 추구하는 최소한의 방향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력이 있음에도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세금을 덜 내고 있으므로, 선거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가치 있는 공론장의 형성을 위해서라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시민의 선거권은 보장된다'는 등의 최소한의 규칙은 정해져야 한다. 그것 없이 법이나 윤리, 규칙들을 각자의 기준으로 재해석하는 게 무제한으로 허용된다면 사회는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히 이를 전제로 했겠지만(그리고 이를 지적하는 것도 이 책에서 말한 논리적 오류 중 하나일 테지만) 현실은 영 엉뚱한 곳으로 튀기도 하니 말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때 스스로의 의견을 검열하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지려 하는 동시에, 시대와 사회를 파악할 수 있는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 또한 내 주장이 맞다고 인정해주는 집단과 사회의 지지 속에서 내 입으로 남의 말을 하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물론 나 또한 갈등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해 여전히 내 언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언어를 빌려 하나마나한 말로 대화에 참여하곤 한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신념이 굳은살처럼 박혀있어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피곤함과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말이 정말 내 생각이 맞는지, 그리고 그게 더 나은 우리 사회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주는 안락함에 빠져 '혐오할 자유가 있다'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자가 되거나, '차별하려는 건 아니지만~'으로 시작하는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내면화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 본 글은 일센치페이퍼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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