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레인보우 초콜릿 도넛 ㅣ 그늘 단편선 5
백수연 지음 / 그늘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레인보우 초콜릿 도넛』을 펼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작고 얇은 책이 꽤 묵직한 질문을 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늘 단편선의 다섯 번째 책으로, 백수연 작가가 세 편의 단편을 통해 묻는 건 하나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정말로 지나온 걸까, 아니면 여전히 그 안에 머물러 있는 걸까.
표제작 「레인보우 초콜릿 도넛」은 열두 살 같은 반이었던 희민과 하영이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 연애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결혼을 앞둔 두 사람이지만, 사랑이 깊어질수록 초등학교 오 학년 교실에서 있었던 어떤 사건이 자꾸만 끼어든다. 말대꾸하지 않아야 착한 아이라는 강압 속에서 함묵증을 앓았던 희민, 신앙의 힘으로만 병을 견뎌야 한다고 믿는 이단 목사의 딸로 자라 의심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하영. 이 둘이 어른이 되어서도 끝내 마주해야 했던 건 결국 자기 존재의 본질이었다. 담임이 쓰러진 사건, 도넛을 빼앗긴 아이, 그리고 오랜 시간 뒤 의문의 손님이 건넨 오르골까지 — 보이지 않는 선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인상적이다.
「백설공주와 마녀 이야기」는 대학 시절부터 가까웠던 현선을 향한 경화의 감정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좋은 집에서 구김 없이 자란 현선과, 가난을 물려받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경화. 비교와 수치심이 가정과 자녀에게 투영되어 폭발하는 과정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경화가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어쩌면 우리의 마지막 페이지」는 건조하게 납작해진 부부, 은주와 용진의 이야기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왜 이렇게 답답할까 — 이 질문 하나가 용진의 동창 혜진을 통해 점점 확장되고, 은주가 의식하지 못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던 관계의 문제를 뾰족하게 짚어낸다.
세 편 모두 표면적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다루지만, 백수연 작가는 그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세밀한 균열을 포착해낸다. 멀리서 보면 아무렇지 않았을 일들이, 작가의 시선 안에서는 하염없이 확대되고 진지해진다. 특히 세 편 모두에 어린아이가 등장한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 그 아이들의 모습이 결국 지금 어른이 된 우리의 그림자처럼 겹쳐 보인다.
122쪽이라는 분량은 짧지만, 다 읽고 나면 마음에 오래 남는 무게감이 있다. 자리에서 단숨에 읽을 수 있으면서도, 다시 펼쳐 보게 만드는 이야기들. 어린 시절의 경험을 한 번쯤 떠올리게 되는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