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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것은 두고 가기로 했다
정재영 지음 / 책들의정원 / 2026년 5월
평점 :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손이 잘 안 갔다. 제목은 감성적인데, 설명엔 '죽음의 문턱'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적혀 있었으니까. 뭔가 무겁고 어두운 책일 것 같아서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읽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책이 아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책이다.
저자 정재영은 신혼여행지에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의 직전까지 갔다 온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경험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단순한 회고담으로 끝내지 않는다. 뇌과학과 심리학, 수백 건의 임상 사례를 바탕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인간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신비주의나 종교적 해석에 기대지 않는다는 점이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첫 번째 이유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임종을 앞둔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연구자들이 수집한 수많은 임종 사례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패턴이 있다. 그들은 사업에서 실패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돈을 충분히 벌지 못한 것도 아니다. 가장 많이 후회하는 건 '하지 못한 말', '무너진 관계',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한 시간'이다. 죽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설득력이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삶의 회고'를 다루는 방식이다. 죽음 직전에 인생이 영상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것이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뇌가 삶의 의미를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 순간 사람들이 선명하게 떠올리는 장면들이 무엇인지,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를 풀어내는 대목에서 나는 책을 잠시 덮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 책이 자기계발서와 다른 점은 '~하라'는 지시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독자가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그것이 정말 내 삶에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그냥 무거워서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책장을 넘길수록 그 질문이 점점 선명해진다.
문장도 좋다. 어렵지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독자를 밀어내지 않는다. 뇌과학 이야기가 나오는 챕터도 술술 읽힌다. 이런 균형감은 쉽게 오는 게 아닌데, 저자가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가 문장 사이사이에서 느껴진다.
두껍지 않다. 268페이지, 하루 이틀이면 다 읽는다. 그런데 읽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며칠이 지나도 문득문득 생각난다. 그게 이 책의 진짜 힘이다.
나는 이 책을 번아웃이 온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무언가에 지쳐 있는 사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사는지 모르겠는 사람, 오래된 죄책감이나 상처를 아직도 붙들고 있는 사람에게. 죽음을 공부하는 것이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다르게 살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걸 이 책은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증명한다.
무거운 것은 지금 내려놔도 된다. 이 책이 그 허락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