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 치매 증상이 있는 시아버지와 조카딸 나오코를 단 둘이 남겨두고 외출한 사토코의 시점으로 소설 백광은 시작한다. 사라진 조카를 찾던 중 마치 귀신이나 도깨비가 이 가족을 우롱하듯이 자기 집 마당의 한 구석에서 흙에 파묻힌 나오코가 발견된다. 일본 고전 추리소설 시리즈나 호러 괴담처럼도 느껴지는 도입부에서 점차 자신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과 진실의 조각 하나하나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단 한 명도 빠짐 없이 어떤 식으로 이 비극에 개입되었는지를 따라가며 몰입하게 만드는 구성은 유례적이지는 않지만 독자에게 ‘그랬군’하고 납득시킨 뒤 곧바로 이를 뒤집어버리는 등의 촘촘한 설계와 꼭 필요한 말만을 써서 정확하게 묘사하는 듯한 문체로 완성된다. 깔끔한 문장과 서술로 머릿속에 생생한 이미지가 절로 그려진다. 참화가 할퀸 정신은 대를 거듭해 광기가 되고 지글지글 끓는 더위 속에서 따가운 햇볕을 맞아 끓다 못해 하얗게 번진다. 치정과 애증으로 엮인 가족. 제 정신이 아닌 두려운 노인. 미궁처럼 얽혀들어가지만 모든 고리를 전부 잇는 명료한 결말 등 일본 미스터리 살인극에서 기대할 수 있는 요소가 과하지 않게 딱 담백하게 들어간 진국이다. 아는 맛의 재미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