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TIVATION:: 황금종이라는 것
저자 조정래 님은 알고 있었다. 잘 알고 있다고 표현하지 못한 이유는 저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태백산맥>, <명견만리>, <천년의 질문>이라는 책을 제목만 들어봤을 뿐 아직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장르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연이 닿질 않았었다. 내가 67번째 서평으로 작성했던 책인 김홍신 님의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라는 책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소설책은 무조건 읽어보자는 주의인데 마침 조정래 님의 신작이 발표를 하였고 제목부터 범상치 않았다.
황금종이, 5만 원권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한 그 이름은 돈을 나타낸 다는 사실을 유추해 내는데 어렵지 않았다. 내가 읽었던 책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경제경영 분야이며 돈에 대한 관심은 지금도 많은 편이다. 과연 돈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풀어갈지 너무나도 궁금했고 저자 서문에서 '황금종이라는 것'이라는 글을 친히 써주셨다. 저자가 생각하는 돈에 대한 생각을 여실히 알 수 있는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해당 질문들에 대한 내용을 소설 속에서 발견하라는 지시 같기도 했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며 서평을 이어가 보겠다.
우리가 의식, 무의식중에 날마다 생각하고 날마다 걱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어느 만큼 지니지 못하면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박탈해 버리는 것은 무엇일까?

KILLING PART:: 영화 변호인을 닮은 이태하 변호사
황금종이라는 책은 1, 2 편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 분야의 서평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이 소설을 읽고 싶게 끔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마치 영화의 예고편을 만들어 내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소설을 읽을 때는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가 빠를수록 내용 전체를 이해하기 쉬워진다. 주인공은 변호사 이태하이다. 군부독재 시절 학생운동으로 이름을 날리다 돌연 잠적하였으며 대학 졸업 전에 사법고시를 통과해 존재감을 나타낸 전도유망한 검사 출신. 하지만 그는 재벌 수사를 맡아 돈과 권력 앞에 법치주의는 없음을 느꼈으며 그가 가진 신념과는 맞지 않다는 것을 일찍이 깨닫고 검사를 그만두고 외로운 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황금종이는 이태하 변호사가 맡은 돈 싸움에 대한 이야기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했다. 유산 상속 과정에서의 가족 간의 다툼, 월세 인상을 놓고 임대인과 세입자의 싸움, 돈을 보고 오래 만난 연인을 떠나 새로운 사람을 찾는 사람에게 하는 복수 등 다양한 돈에 관한 싸움들이 일어나며 그런 사건을 해결하고자 각 의뢰인들이 이태하 변호사를 찾는다.
다양한 사건과 사건이 진행되는 사이에 대학생 1학년이었던 이태하 변호사를 데모 현장에서 도서관으로 이끈 선배 한지섭, 이태하 변호사가 재벌 수사와 관련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검사직을 내려놓고 변호사직으로도 전전긍긍 힘든 하루를 살아갈 때 그를 돕는 절친한 대학 동창 박현규등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며 각종 이야기들의 긴장감을 더한다. 저자는 다양한 인물들을 여러 사건들에 엮어 이해관계를 만들어낸다. 정말 읽으면서도 마법 같은 필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강호 주연의 변호인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딱 그 인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다만, 인권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닌 돈 문제를 해결하는 약자 편에 서는 변호인인 것이다.

CONCLUSION:: 돈은 인간의 실존인 동시에 부조리다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돈은 인간의 실존인 동시에 부조리다'로 표현할 수 있겠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다니는 대학의 철학 교수는 수업 중 학생의 기습 질문을 받는다. '인생에 있어서 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학교수의 답이 위와 같았고 이는 저자가 말하는 책의 주제이자 저자가 생각하는 돈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돈에 대한 본성과 존재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면서 끝없이 발생하는 비극적인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평생에 걸쳐 사유해온 내용을 책에 다양한 스토리를 다루어 표현하였다. 말 그대로 돈이 인간을 구속하기도 하고 지배하기도 하며 결국 인간은 돈에 매달릴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도 정의는 존재한다고, 주인공인 이태하 변호사와 그의 유일한 멘토이자 말벗인 귀농한 한지섭 선배를 통해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현재의 세계 유일의 이데올로기가 된 이후 돈의 힘은 더욱 막강해졌으며 우리 본능을 훨씬 뛰어넘는 무서운 야수적인 힘이 우리를 지배하지만 오늘의 민주화를 이룬 운동권 출신들의 정신을 최소한이나마 간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저자는 친구 윤민서가 부탁하는 수임료 10억 원짜리 사건의 딜레마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태하로 마무리하는데, 작가의 도리 없는 비관 속 의지로 낙관해 보려는 최선의 방식이자 바로 당대 대중에게 이제 답을 묻겠다는 작가의 결기가 담긴 방식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긴장 없이 넘기는 나에게 묵직한 한방을 남겨주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