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레스토랑 - 오지랖 엉뚱모녀의 굽신굽신 영업일기
변혜정.안백린 지음 / 파람북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MOTIVATION:: 불편한 모녀

아들로 태어난 탓에 모녀의 관계를 안타깝게도 이해할 수는 없다. 모자 관계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떠들 수 있을 것 같지만 딸만 둘은 둔 아빠의 입장에서 모녀 관계는 내 관심사가 되었다. 예전부터 엄마한테는 딸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아들만 둘을 두신 우리 어머니께서는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딸 생각 없다고 하셨지만, 두 아들이 모두 결혼을 한 요즘 심심치 않게 딸 가진 친구들이 부럽다는 말씀을 하신다. 모녀 관계를 이해하진 못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이해가 된다. 책의 제목처럼 불편하지만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둘은 배경부터 특별하다.

레스토랑에서 서버 및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하는 변혜정 님은 식당을 운영하기 전 여성학자이자 젠더, 성 평등, 인권 관련 전문가로 민관학을 넘나들며 활동했다. 불편한 식당이라고 정의하는 '천년식향'의 대표이자 셰프를 맡고 있는 딸 안백린 님은 원래 의학도이자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의료생물학을 전공하고 더럼대학교에서 '정신건강, 식품-생명의 연결성'을 연구했다고 한다. 사실 안백린 님이 불편한 레스토랑의 대표가 될만한 이유는 일찍이부터 있었다. 석사과정 중 현대인의 건강하지 못한 식생활과 공장식 축산으로 고통받는 동물들을 놓고 고민하다, 인간이 음식을 먹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배경도 그렇고, 2018년 사찰음식의 재해석, 속세의 사찰 ‘소식’을 친구들과 창업, 운영한 경험도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책의 제목을 너무 잘 지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를 이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KILLING PART:: 박사님이 술집 여자가 되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되어 있지만 불편한 식당의 서버이자 스토리텔러인 변혜정 님의 과거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흔히 말하는 박사님, PH.D의 직함을 가지고 교수로서 생활을 하셨다. 하지만 어느 순간 술집 여자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정말 말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2가지 비유를 들어보겠다. 술집 여자 vs 와인셀러, 본인이 한 가지 직함을 골라서 사용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고르겠는가? 초기 불편한 레스토랑이라고 칭하는 '천년식향'이 와인도 판매하기에 술집으로 사업자등록이 되었고, 변혜정 님이 교수직에 계실 때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 그녀를 알아보고 당황하며 '아니 왜 지금 서빙을 하고 계시냐'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사실 가장 힘들었을 사람은 본인 자신이다. 나도 긴 인생을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결국 스스로 만든 틀과 스스로 만든 기준에 힘들어하는 것이 사람이다. 주변의 시선을 굳이 신경 쓸 필요도 없는데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가기 힘든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결국 딸인 안백린 님은 어머니의 직함을 와인셀러라고 칭하고 식당도 술집이 아닌 와인 바, 그것도 모자라 '발효 바'로 명시했다고 한다.

술집 여자이면 어떻고 와인셀러이면 어떠한가? 난 사실 이 부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저자에게 실망을 했다. 경영원칙이나 추구하는 주장은 너무나도 존중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독불장군 같은 뚝심에 반해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명칭을 바꾸는 태도는 적어도 어울리지 않았다. 아쉬운 부분이다.

CONCLUSION:: 올해 연말은 '천년식향'에서...

이직으로 인해 빠르면 올해 말에는 서울로 이사를 갈 예정이다. 두 딸을 양육하느라 배우자와 나름 오붓한 시간을 보낸 적이 별로 없는지라 어떻게든 둘이서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천년식향'이라는 레스토랑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비건 레스토랑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되어 한번 방문해 보려고 마음먹었다.

'천년식향'의 운영규칙을 보면 정말 불편하다. 나름 마음이 넓고 포용력이 넓다고 자칭하는 내가 이 정도로 느낄 정도이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굳이 이 식당을 찾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천년식향'은 안백린 대표님의 철학을 반영하여 Zero Waste를 추구한다. 이 말인즉은 일회용 물티슈도 냅킨도 제공되지 않는다. 깨진 돌그릇을 플레이팅에 사용하며 앞접시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곤 바꿔주지 않는다. 설거지 세제는 석유가 아닌 코코넛 베이스의 인체에 무해한 세제를 쓰며 대부분의 음식 재료는 친환경 또는 못난이 채소를 사용한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불편함이 몰려올 것이다. 하지만 이에 더해 화장실은 남녀 구분 없는 gender-free이며 엘리베이터는 없다. 식물성이지만 비건을 표방하지 않으며 빵, 밥, 피클 등이 메뉴에 없다.

자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식당을 찾아갈 자신이 생기는가? 굳이 이런 식당을 왜가냐고 반문하시는 분이 많을 것이라 예상된다. 위에 더해 한 가지 불편함을 추가하려고 한다. 반려동물을 데리고 식사하는 것이 허용이 되며 만약 선 예약으로 반려동물을 동반한 분들이 계시다면 그 후 예약하시는 분들은 불편하면 예약을 취소해야 한다. 다수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며 수익을 쫓지 않는다. 그곳이 바로 불편한 식당인 '천년식향'이다.

다른 코멘트를 다 떠나서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뚝심 있게 본인의 색깔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모습, 장사가 수익을 발생시키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는 상식을 깨부수는 변혜정 어머니와 안백린 따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난 '천년식향'을 예약할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Tip을 줄 수 있는 분위기라면 넉넉히 주고 싶다. 걱정 말라, 대표와 서버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다. 두 모녀가 추구하는 그 뚝심을 이어가라고 응원하는 의미로 전달하는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