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김홍신 지음 / 해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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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IVATION:: 소설의 프롤로그

시작부터 굉장히 임팩트가 있다. '한 남자의 마지막' .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은 탓에 더 빠져들고 압도당했을 수도 있겠다. 보통 내가 알고 있고 예상하는 책의 프롤로그와는 달랐다. 책의 결말의 한 장면을 먼저 보여주고 그다음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구조로 보였다. 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방식. 역시나 궁금증과 함께 몰입감을 갖게 만들었고 다소 급하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의 프롤로그는 그 목적을 충분히 다 해냈다고 봐도 될 것 같았다.


 

저자는 <인간시장>이라는 소설을 펴내신 분이다. 사실 난 읽어보지 않았지만 한국 최초로 소설 분야의 밀리언 셀러에 등극한 명작이라고 한다. 1981년 출간 즉시 10만 부가 판매되고, 1984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100만 권을 돌파한 책이며 현재 560만 권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소설로 밀리언 셀러에 등극하는 경우는 드물기에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4차례 영화로 제작되고 2차례 드라마와 만화로 제작되었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럴 만도 했던 게 1980년대의 역사적인 배경이 바탕이 되었는데 신군부의 정권 찬탈, 격렬했던 저항과 무자비한 탄압, 사회 구석구석에서 발생한 온갖 비리와 부조리에 대한 국민들의 울분을 대변해 주며 막혀있는 속을 뚫어준 책이었다는 평가가 자자하다.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라는 책도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역사에 일 면은 단순 배경을 구성할 뿐 진짜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주인공 한서진의 내면의 이야기를 첨예하게 다루고 있다. 그가 느낀 모든 감정을 마치 나의 감정인 양 느낄 수 있게 글을 쓰는 작가에게 한없이 감탄하며 글을 읽었다.

 


KILLING PART:: 기구한 운명

소설을 읽을 때나 영화를 볼 때 난 보통 최대한 주인공의 입장에 서보려고 한다. 그래야 더 실감이 난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의 주인공은 한서진이라는 인물이다. 문학도였으며 생계를 목적으로 군에 입대하여 소대장으로 근무 중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박애주의적 성격이 강한 그는 전사한 북한군을 땅에 묻고 부대원들과 기도를 통해 애도를 한다. 이게 그의 인생 제2 막을 시작하게 만드는 시발점이 된다. 1970년대의 역사적 배경 자체가 한참 '빨갱이' '반동분자' 등을 색출하는 분위기에서 그의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는 그림으로 비친다. 일명 '뿌락지'라고 하는 인물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기에 서로를 믿지 못한 분위기가 군대 내에서도 존재했으며 집단의 특수성으로 인해 철저히 폐쇄적으로 그를 엄벌에 처한다.

한서진은 '빨갱이'와 '반동분자'가 아닌 것이 확실하나 그의 아버지가 북한에서 태어난 배경, 문학도로서 그가 쓴 2편의 글, 불온서적과 북한 전단을 임시 보관한 정황 등 모든 요인들이 그가 '빨갱이'라고 말하고 있었고 최근 결혼을 하여 젖먹이 딸을 가지고 있던 그는 이 상황을 헤쳐나가 보려고 하지만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굳세고 강한 캐릭터인 한서진의 배우자 지향은 한서진의 죄에 대한 형벌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실무를 담당하는 보안 반장을 만나 애걸복걸 선처를 호소한다. 그 때문일까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사범은 보통 10년이 넘는 징역을 살지만 한서진은 5년형을 받게 된다.

생각해 보자. 난 정말 '빨갱이'가 아닌데 '빨갱이'로 의심받고 여겨져 5년의 징역형을 받았다면 어떤 기분일까? 심지어 군 생활을 소위로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딸린 처와 젖먹이 딸을 둔 상태로 5년의 기간을 감방에 있다 나와야 한다니 도저히 그 감정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뿐인가? 형무소에 들어가자마자 같은 방에 수감된 두 인물로부터 무차별적인 폭행과 반인륜적인 고문을 받기도 한다. 고문은 수천 가지가 넘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한서진에게 내려진 고문도 정말 끔찍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을 거울을 보고 이길 때까지 가위바위보를 하라는 것. 거울은 나 자신을 비추기에 계속 비길 수밖에 없는 데 이길 때까지 가위바위보를 하라니... 나도 모르게 따라 해보았고 1분을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한서진은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던 도중 배우자인 지향과 그의 오빠이자 절친한 친구인 재필이 면회를 오게 된다.

 


CONCLUSION:: 가장 아름다운 복수는 용서

스포를 할 수 없기에 책의 내용은 여기까지만 밝히려고 한다. 아마 장담하건대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읽다가 멈춘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작가는 몇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을 350page에 달하는 내용으로 풀어썼는데 글이 진행되는 긴장감이 장난이 아니다. 영화를 봐도 2시간의 런타임 중에 지루해지거나 긴장감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은 단 한 페이지도 긴장감을 놓을 수 있는 순간이 없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참 주인공은 지독한 삶을 살았다. 고민고민 끝에 내가 찾은 표현은 지독한 삶이다.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의 삶을 살았다. 죄도 없이 '빨갱이'로 여겨져 징역을 산 것도 억울하고 미쳐버릴 일인데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 더 숨을 조여온다.

가장 아름다운 복수는 용서라는 말은 굉장히 아름다운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 표현의 이면에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 어떠한 요인으로 하여금 복수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강제적인 용서라는 의미가 숨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본 한서진은 절대 용서를 한 것이 아니다. 한서진의 입장에선 절대 용서를 할 수 없다. 용서를 받아야 할 입장에서 느끼는 용서일 뿐이다. 그리고 감히 말한다. 가장 아름다운 복수는 용서라는 말은 절대 쉽게 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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