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사소한 통일
송광호 지음 / 하움출판사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MOTIVATION:: 내가 만난 북녘 땅

나또한 저자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금강산개발계획으로 방북했던 남북간의 분위기가 좋았던 시절 나도 학교에서 학생대표로 금강산 관광을 갈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엔 어린 학생이었고 북한에 관한 관심이라해봤자 나의 우선순위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는 말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산이 '금강산'이라는 말은 정말도 많이 들었다. 이산가족 상봉, 각 국 정상회담, 현대그룹의 각종 지원 등 햇빛정책과 관련한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북한을 방문하는데 일체의 거리낌도 없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금강산, 노천탕, 평양냉면 이 3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한가지를 더하자면 장시간 타고 올라가는 버스안에서 북한에서 유의해야 할 점에 대해 여러번 강조받은 기억이 난다. 금해야할 언어, 행동 등 굉장히 자세히 교육을 받았고 과연 이게 금강산 관광인지 모를 묘한 분위기가 북측으로 넘어가기 전부터 풍겼다.

저자는 캐나다 국적을 가지고 북한을 방문한 케이스로 총 8번이나 북한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1980년대부터 북한을 방문하기 시작하였으니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화해온 북한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가장 가깝게 지켜본 셈이다. 특히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캐나다 국적을 가진 점은 북한의 변화를 조망하는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나 또한 북한에 일상에 대해 접할 길이 딱히 없었고 고작해야 뉴스나 유튜브 정도인데 거기서 접하는 정보가 실제와 100% 일치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북한의 일상생활과 그곳에서 만난 자연환경, 사람들, 안내원들, 당국자 등 실제 접하기 어려운 사소한 이야기들을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서술하였다. 특히 북한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그대로 옮겨 온 부분 부분들은 그들의 문화와 생활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왜 북한이 미국을 그리도 증오하는지, 꽃제비라는 용어의 의미, 고난의 대행진이라는 표현의 유래, 김씨 3대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등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고 있는 다양한 정보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어주는 저자의 필력에 속도감 있게 책을 읽어나갔다.

 


KILLING PART:: 고향 어머니 상봉

남북 이산가족이 총 몇명이나 되는지 알고 있는가?나또한 전혀 가늠하기 힘들었는데 수를 알고 깜짝 놀랐다. 1000만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존재하며 1985년 역사적인 첫 상봉 이후로 2018년 까지 스물 한 차례의 상봉이 성사되었다. 그럼 상봉하는 가족의 수는 몇명이나 되는지 예상이되는가? 첫 상봉때 남측 35명과 북측 30명이 가족을 만났다고 한다. 너무나도 적은 수이다. 2018년 4. 27.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두 정상은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하였으며, 이에 따라 2년 10개월 만인 2018년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진행된 것을 마지막으로 이태까지 더이상의 상봉행사는 없었다. 상상을 해보자. 지금 내가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과 어느날 이산가족이 된다면? 소식도 전해듣기 어렵고 어떻게 사는지 볼수도 없는 상황이 되버린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상상을 해보자고 말했지만 난 도저히 상상할 자신이 없다. 혹자는 말한다. 차라리 죽어서 하늘나라에 간 것이 이산가족이 되어 지내는 하루하루 보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할 것이라고. 그럼 반대로 이산가족이 되었다가 상봉했을때의 기분은 상상이 되는가? 헤어질때의 마음보다 더 큰 벅참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본문 중 캐나다 정해수씨의 상봉 이야기를 다루는데 눈물이 울컥했다. 사실 이산가족이 된지 하루이틀이 지난 것이 아니라 몇십년이 지났으니 알아보는 것도 신기할 것 같다. 헤어질 때는 한창 청춘시절이었던 동생들이 50이 다 되서 만났으니 알아보기 어려울 것 같지만 가족들은 서로 기억하는 특징들(코 옆의 점이나 얼굴의 흉터 등)과 더불어 가족이라면 서로 느낄 수 있는 느낌을 알아차린다고 한다.

고향집에서 회포를 풀고, 성묘를 하며 2박 3일간의 꿈같은 시간은 흘러갔고 헤어지는 순간 다음을 기약하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후기를 접했을 때는 뭉클함이 극에 달했다. 몇십년만에 만난 가족과 2박 3일만에 다시 헤어져야 한다니...그것도 다시 만날 기약도 없는 채로..

가족간의 상봉이라는 것이 단순 행사가 아니고 기적을 만드는 사랑의 힘을 가졌다는 일화를 하나 전해본다. 북한의 한 할머니께서 외아들을 만나고 나서 건강이 회복되고 거동이 자유로워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나뿐인 외아들을 만난 후 병이 거의 완쾌돼 그 후 7년을 더 사셨고 아들가족을 보자마자 "이제 며느리와 손녀도 만났으니 한을 풀었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랑의 힘은 몹쓸병도 낫게 한다.

 


CONCLUSION::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의 소원'이라는 노래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또한 몇 학년 때 배웠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교과서에 실린 노래이고 첫 소절은 절대 못 잊을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 노래는 1947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원제목은 '독립의 노래' 였으며 일제강점기 안석주가 작사하였고 그의 아들이자 당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재학생이었던 안병원 작곡가가 곡을 붙였다고 한다. 2013년 안병원 작곡가께서 "이제는 이 노래를 그만 불렀으면 좋겠다"라는 쓸쓸한 인터뷰를 한 것이 전해졌는데 그는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이 노래가 더 이상 불러질 일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안병원 작곡가는 통일을 보지 못하고 2015년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또한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셨고 방북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으며 평소 방북을 통해 그가 작곡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지휘하고 싶은 욕망이 2001년 이루어질 기회를 얻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북한 공식 석상에서 지휘봉을 들지 못했다고 하며 소개조차 안 했다고 한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다행인 건 그 또한 별로 실망하지 않았다고...

왜 저자가 남한은 북한을 너무 모른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