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쉬운 역사 첫걸음 - 인물열전 편
이영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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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IVATION:: 역사학자가 아닌 저자의 역사 이야기


 

중학교 3학년 처음으로 성적표에서 '양(良)'을 받았다. 충격을 받을 법도 하지만 받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난 그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국사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흥미를 가지기 어려웠다. 그러니 당연히 좋은 성적을 받기는 어려웠고 다만 '미' 정도로 예상했던 성적에 '양'을 받아서 안 그래도 싫었던 국사를 더 멀리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이과를 선택했고 한국사가 필수인 요즘과는 달리 한국사를 공부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10여 년이 지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 자격이 필요했고 어쩔 수 없이 한국사 공부를 시작했다.

강사분의 역할이 컸던 걸까? 한국사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후배는 1초도 망설임 없이 '최태성' 선생님을 추천했고 찍어놓은 영상을 정주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수도 없이 많은 영상을 언제 다 봐야 할지 걱정이었는데 나의 걱정은 괜한 기우였고 첫 번째 영상을 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멈출 수가 없었다.

한국사 전편을 완강하였을 때 스스로 내가 왜 중학교 시절 국사를 이렇게 싫어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수업 시간마다 너무 졸렸던 기억뿐인데 성인이 되어 다시금 공부해 보는 한국사는 내가 기억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심지어 배우자도 '벌거벗은 세계사'라는 TV프로그램 애청자인데 그 또한 나도 함께 즐겨 볼 만큼 역사에 대한 나의 관심은 몰라보게 커져있었고 <가장 쉬운 역사 첫걸음>이 역사 학자가 아닌 사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옛날이야기를 블로그와 브런치 등에 재미있게 풀어내는 유튜버 이영 님의 책이라는 사실에 큰 기대를 안고 책을 펼쳤다.

THINK:: 역사는 경험 공간과 기대 지평의 융합이다

위의 문구는 독일의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고젤렉의 말이다. 저자가 대학생 시절 '역사학 개론'이라는 수업 시간에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교수님께서 소개해 주신 여러 학자들의 인용문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한글이 이렇게 어려울 수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곱씹어 봐도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저자 또한 나와 같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무슨 뜻인지 명확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서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말에 단번에 반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저자가 내린 해석은 다음과 같다.

'역사는 과거의 경험을 체화해서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일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

과거가 현재의 우리에게 살아서 움직일 때 비로소 역사가 되며 역사는 과거보다 현재에 더 가깝다는 저자의 해석을 듣고 나 또한 문장의 의미를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저자는 몰입도를 높이고자 사건보다 인물에 치중했다고 한다. 누구나 알 법한 16명의 인물들을 시대와 국가에 상관없이 꼽아서 어떤 지혜와 교훈, 관점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게 했다.

내가 대단하다고 느낀 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삼국시대 제갈량, 청나라의 이홍장, 몽골 칭기즈칸, 일본 오다 노부나가, 태국 라마 4세와 5세, 아테네 소크라테스, 프랑스 잔다르크와 나폴레옹, 영국의 처칠, 미국의 링컨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인물들을 깊이 있게 다뤘다는 점이다. 유튜브 누적 조회 5400만 뷰는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KILLING PART:: 이순신이 절대 지지 않는 이유

이순신 장군을 주제로 한 '명량'과 '한산'이라는 영화를 보았는가? 최민식과 박해일이 각각 연기한 이순신의 모습은 사뭇 다르면서도 본질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그렇다. 이순신 장군은 우리나라에 영웅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국가의 심장부로 통하는 광화문 네거리에 현재까지도 국가를 수호하는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역사적인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고 그가 전투에서 절대 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자세히 말하고 있는데 몰랐던 점들이 꽤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현장 순시를 지독히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근무 태만을 막기 위해 스스로 발로 뛰었던 것이다. 사실 어떤 부서이든 부서장이 직접 현장을 보는 것만큼 직원들이 일을 열심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율에 맡기고 부서원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숨을 걸고 전쟁을 준비하는 전쟁터에서는 믿음 위에 엄격한 순시가 존재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필요시 엄격하게 처벌하여 군율을 똑바로 세웠다고 한다. 나는 지금도 엄격하게 처벌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직장에서 후배들의 잘못에 대해 어떻게 교육하고 교훈을 줄지에 대한 부분은 답이 없는 부분이다. 난 다만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후배들 모두에게 동일한 잣대를 댄다. 아무리 친해도, 아무리 사이가 서먹해도 후배를 대하는 태도는 일관되게 하려고 한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7년간 총 9차례의 출동에서 23번의 전투 결과 23번 모두 승리했다. 승리에 취해서 자만할 법도 한데 그는 항상 전투에서 승리 후 돌아와 병사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한번 승전했다고 소홀히 생각하지 말라. 처음과 끝이 한결같아야 한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꼭 취해야 할 덕목이다. 이루었을 때 오히려 더욱 겸손해야 한다. 억지로라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순신 장군의 해전은 모두 도전적이었지만, 병사들의 목숨과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에서 그는 결코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주특기인 유인술, 생각의 유연함도 그가 절대 지지 않는 이유에 포함되어 있지만 가장 큰 것은 그는 이기는 전쟁에만 나섰다는 점이다.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곳에만 나가는 것, 그가 명장 소리를 듣는 이유이다.

CONCLUSION:: 명량과 한산

나는 '명량'과 '한산' 2가지의 영화 중 어느 것이 더 감명 깊냐고 물어본다면 한사코 '한산'이다. 최민식보다 박해일을 더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그건 아니다. 사실 성과 면에서는 명량대첩이 한산도 대첩을 뛰어넘는다. 하지만 한산도 대첩이 세계 4대 해전에 꼽히는 이유가 있다.

한산도 대첩은 임진왜란에서 벌어진 해전 중 최초로 일본의 정식 함대와의 싸움이었으며, 이순신 장군의 전략 중 가장 교과서적이고 모범적인 전술의 표본인 '유인 후 포위 섬멸전'을 볼 수 있는 전투였다. 더불어 한산도 대첩에서 승리한 후 남해안 제해권을 완전히 조선이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로 인해 왜군은 수군으로부터 보급선이 아예 끊기게 되었다. 섬나라의 특징 상 왜군은 수군으로부터 보급을 받지 못하면 아예 보급이 끊기게 되며 이미 상륙한 지상군은 보급선이 끊긴 채로 고립되게 돼버렸다.

임진왜란의 전환점을 만들었던 해전, 규모보다는 판도에서 그 가치와 의의가 남다른 전투였던 것이다.

물론 13척의 배로 '죽으려고 하는 자 살 것이고, 살려고 하는 자 죽을 것이다'라는 임전무퇴의 기상으로 일본군의 배 133척을 상대로 승리한 울돌목의 전설 '명량해전'은 나에겐 세계 4대 해전과 더불어 5번째 해전으로 꼽힌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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