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IVATION:: 지구에 단 하나뿐인 사랑에게
에세이는 찾아서 읽는 편은 아니다. 종이에 쓰인 활자들이 뭔가 내 몸을 간지럽힌다고 해야 할까?
적당한 표현을 못 찾겠는데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뭔가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책이라고 느꼈었다.
나는 감정이 메마른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감정 표현을 잘하지도 않는다.
진지한 속삭임보다는 가벼운 장난으로 나의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편이다.
'사소하고 아름다운 말들을 전해주고 싶다'라는 남궁원 작가의 소개말에서 그의 문체가 궁금했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뭐라고 할까? 비슷한 느낌인 것 같은데 수많은 다른 이야기들 속에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책이라는 건 타겟팅 하는 독자가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은 연애를 시작하는 20대부터 중년의 부부까지 어느 세대든 읽어도 좋을 느낌을 주었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주제는 나이가 없고 경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읽어왔던 그리고 선호했던 분야의 책이 아니었던 지라 다소 읽기 시작하기가 오래 걸렸지만 읽어내는 데는 그 어느 책보다도 빨랐다.
그만큼 나도 빠져들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어찌 보면 말라 왔던 나의 감정선에 딱 필요했던 책이 아니었다 싶다.
THINK:: 자주 볼 수 없다면
결혼 7년 차 부부이고 2012년에 처음 만나 11년을 함께한 사이.
연애 때는 부득이 장거리를 오갔고, 결혼 후에는 1년을 제외하고 쭉 함께 살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1년을 주말부부로 지낸 뒤 다시는 떨어질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건 배우자도 같은 생각이지만 나의 주장이 더욱 확고하다.
난 1년을 주말부부로 지낸 뒤 배우자에게 말했다. 더 이상 우리 인생에 주말부부는 없다고 말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직장에서 주어진 교육의 기회로 인해 배우자와 아이들을 처가 근처에 두고 나 혼자 주중 시간을 보냈었다.
사실 결혼 이후 내 인생에 주어진 가장 많은 시간들이었다. 배우고 싶은 운동을 아침저녁으로 즐겼고, 직장동료들과의 회식자리도 눈치 보지 않고 나갈 수 있었다. 먹고 싶은 걸 먹었고 자고 싶을 때 잤으며 출근만 잘 하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별다른 걱정이 없었다.
그리고 금요일 늦은 저녁에 집에 도착하여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이때부터가 문제가 발생한다.
주중에 신나게 에너지를 소모한 덕분에 주말에 쓸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금요일 저녁은 멀리 운전을 하고 왔다고 피곤해하고, 토요일은 주중에 쌓인 피로로 인해 늦잠을 잤으며 일요일은 차가 밀리기 전에 일찍 간다고 온전한 주말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주중 내내 두 딸을 본 배우자 입장에서도 쉴 시간이 필요한데 나마저도 쉴 시간을 찾고 있었으니 가정이 온전하게 유지될 일이 만무했다.
그러면 다투게 되고 주말에 얼마 길지도 않은 시간에 다투고 화해하다 보면 또다시 월요일이 찾아왔다.
이런 불협화음이 계속되었던 건 결국 주말부부라는 환경이 만들어 낸 스트레스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스트레스가 쌓여가다 보니 평소에 드라이브를 하면서 자주 잡았던 배우자의 손도 잡기가 뻘쭘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 스트레스는 두 딸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는 이런 환경에 가족들을 노출시키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부부는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속된 말로 지지고 볶고 해도 부부는 같이 살아야 한다.
살아보니 그렇다. 지지고 볶는 시간이 없이는 부부의 온도는 유지가 되지 않더라.
KILLING PART:: 그때그때 풀자
배우자 혹은 이성친구와 다투었을 때 그 냉전의 시간을 얼마나 오래가는가?
나는 11년째 나의 배우자와 함께하고 있지만 다투고 나서 풀리기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다툰 횟수를 정확히 기억은 못 하지만 전부 내가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다.
배우자가 사과를 하지 않는 고집 있는 성격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항상 먼저 양보하고 사과하는 내가 멋진 남자라는 말도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의 배우자는 언제든 내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받아 주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매번 사과하는 이유도 사실 배우자의 덕이 크다. 적어도 뒤끝 없이 진심으로 사과하면 받아주니까.
사람에 따라서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부부는 다행히도 그렇지 않다.
그 부분이 잘 맞아서 금방 금방 화해를 한다.
주변에 친구들이 서로의 배우자와 1주일 동안 말을 안 했다, 1달간 별거 중이다 등등의 말을 들을 때마다 공감은 해주지만 미안하게도 이해는 못 한다. 그리고 생각할 시간을 가져서 정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긴 한 건가?라는 생각도 든다.
감정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인정하겠다. 하지만 상대방이 사과를 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심보로 시간을 갖는 거라면 난 정확히 말해줄 수 있다. 그건 바보 같은 것이라고.
CONCLUSION:: 듣는 만큼 생각한 만큼
이 글을 혹시나 배우자가 보기를 바라며 허심탄회하게 소회를 밝힌다.
난 최근 배우자로 하여금 별명을 하나 받았다.
'삼식이'
어떤 의미냐고? 멍청하고 미련하다는 의미인 줄 알고 처음엔 깜짝 놀랐다. 다행히 그건 아니었고 삼식이의 뜻은 집에서 삼시 세끼를 다 먹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서평을 쓰면서 한 번도 여성 이웃분들에게 댓글을 요청한 적이 없는데 진심으로 여쭈어보고 싶다. 남편이 집에서 삼시 세끼 배우자가 차려준 밥을 먹고 싶어 한다면 여러분의 기분은 솔직히 어떨 것 같나요?
그전에 내가 집에서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해보자면, 사실 직장 내 식당 밥도 정말 훌륭한다. 아침, 점심, 저녁이 이렇게 다양하고 밸런스 있게 나올 수가 없다. 딱히 내 입맛이 아닌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배우자가 해주는 밥이 좋다.
본인은 결코 요리에 소질이 없다고 하지만 난 배우자의 음식이 너무 맛있다.
아직 어린 두 딸과 식사를 같이해야 하기에 아무래도 아이들 입맛에 맞춘 음식들이지만 내 입맛에도 쏙 맞는다.
자극적인 음식은 먹을 때 황홀하지만 먹은 후가 불편해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마치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마실 때는 각성이 되어 기운이 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빠져가는 느낌이 너무 싫다.
그리고 또 하나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면 배우자의 청결한 생활습관. <사장학개론> 서평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외식을 할 때도 오픈 주방으로 되어있는 식당을 선호하는 편이다. 뭔가 요리사가 음식을 하는 모습이 내 눈에 보여야 마음이 편하다.
집안의 주방처럼 오픈된 곳은 없을 것이다. 배우자가 음식을 하는 모습, 각종 식기를 씻고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 한치의 찝찝함도 남아 있지 않다. 말 그대로 깔끔하고 청결하다. 배우자의 음식은 정말 그런 면에서 정갈하다.
이왕 삼식이로 인정받은 거, 밥을 차려주면 불평 없이 맛있게 먹을 것이다. 그리고 항상 맛있다고 칭찬을 해줄 것이다.
"여보, 삼식이로 살게 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