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룸 - 초파리, 사회 그리고 두 생물학
김우재 지음 / 김영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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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에 <플라이룸>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교양과학서의 새로운 종 출현을 본 듯 하다. 이미 알릴만큼 알려진 분이지만, 단행본 하나쯤은 나와야 독서계의 공식적인 데뷔라 할 수 있으므로 독자의 입장에서는 신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초파리 유전학’이라는 대중들에게는 거의 생소한 분야를 중심에 두고, 과학을 둘러싼 논쟁적 주제들을 정면으로 올려놨다.

1장에서는 기초과학의 제3섹터 대망론에 공감이 갔다. 정부도 기업도 아닌 공익재단이 조건 없이 자본을 투입하는 미국식 기초과학 연구가 우리 현실에서 가능할지 의문이지만, 지원은 하되 간섭을 하지 않는 원칙은 모든 공익적 사업에서 필요하다. 돈이 웬만큼 많지 않고서는 그게 잘 안 된다는 게 문제다. 

2장은 저자의 연구분야를 다루었다. 저자는 이 책이 어려우면 그건 저자가 독자를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좀 존중을 받았으나 고통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저자는 초파리의 교미시간을 연구한다. 초파리 수컷은 경쟁자나 교미경험 유무에 따라 교미시간이 다르다. 5분의 시간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는데, 초파리가 어떻게 시간을 지각하는 지 그 비밀을 푸는 게 연구과제다. 초파리의 교미시간의 비밀을 풀며 인간의 시간지각능력을 유전학적으로 연구한다. 매우 미시적인 과정을 통해 궁극적인 답을 찾아가는 초파리 유전학의 역사가 무척 흥미롭다.

3장은 진화생물학과 분자생물학의 역사와 갈등, 공생을 다루었다. 화해보다는 반목이 더 많았던 두 생물학을 ‘다양성 속의 조화’라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과학으로 정리했다. 저자가 두 생물학을 모두 거치고 그 접합지점에서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혜안이었다. 약 80년전 우생학이 번성했던 시대에 발표된 ‘유전학자 선언’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당시 유전학자들이 책임있는 과학자로서 인간과 사회에 대해 얼마나 사려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 지, 생물학 버전의 인권선언문을 읽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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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대중화 혹은 대중의 과학화라는 이름으로 교양과학 도서가 나오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되었으나, 우리나라의 과학자가 우리말로 쓴 교양과학서는 일부 선구적인 저작들을 제외하고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전성기를 맞았다고 할 수 있다. 전성기라고 하니 뭔가 대단한 것처럼 보여도 교양과학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은 드물고, 저자들이 글만 써서 먹고살 만큼 안정된 시장이 형성된 것도 아니다. 고작 1쇄를 넘기는 책이 많지 않고 대부분의 책들이 서점의 매대를 스치듯 사라진다. 

책 읽는 사람에게 독서는 밥 먹고 차 마시는 일과 다름 없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게 만드는 일은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것이다. 독서의 대중화도 난공불락인데, 책으로 과학의  대중화를 도모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 일지 모른다.
과학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지식이 아니라 사고하는 태도라는 말은 교양과학서들의 주된 레파토리다. 과학을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실려 있는데, 실은 그게 더 어렵고 절망적이다. 대중들이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과학의 결과를 배우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 과정과 사고방법은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다. 과학의 과정은 과학자들만의 영역이므로 대중은 함부로 접근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완곡한 표현 같기도 하다.

과학 대중화는 바다를 모르는 사막 사람들에게 바다를 알리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과학자들과 커뮤니케이터들이 정성을 다해 노력해왔고,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기도 했으나, 사막 사람들에게 여전히 바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다. 호기심에 넘치는 사람들은 안내자들을 따라 직접 바다를 찾아 떠나기도 했으나 중도에 길을 잃고 헤매거나, 화려한 현학의 길로 빠지기도 한다. 과학의 결과건 과정이건 대중들 중에 과학을 제대로 맛 본 사람은 드물다는 얘기다.

저자는 지난한 과학 대중화의 한계를 정면으로 뛰어넘을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당대의 천재들이 온갖 미사여구를 끌어다 붙여도 글로써 과학을 대중화하는 일은 사실 모래성을 쌓는 거나 다름없다. 저자는 사막 사람들에게 바다를 설명하기 보다는 아예 사막에다가 바다를 만드는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책이 나오기 전부터 캐나다 오타와대학의 잘나가는 어떤 과학자가 학교를 나와 ‘타운랩’을 만들거라는 이야기는 이미 퍼져있었다. ‘타운랩’은 한마디로 동네 실험실 같은 개념이다. 동네마다 수학학원, 영어학원이 있듯이 과학자의 실험실을 동네에다가 옮겨 놓겠다는 거다. 과학자는 거기서 누구의 간섭도 없이 기초과학을 연구하고 대중에게는 과학의 과정을 함께 경험하고 참여하게 하자는 것이다. 누구나 과학자가 될 수 있다고.

우와, 이거~ 진짜 너무 많이 나간 거 아닌가? 
캐러비언 베이, 육지에 바다 흉내를 낸 놀이터다. 만들고 유지하는데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물론 그 만큼 돈도 된다. ‘타운랩’의 구체적인 미션이나 방법론을 아직 알 수 없으나 과학계로서는 전대미문의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책에서는 과학자들의 적극적인 정치 진출까지 이야기하지만, 아직은 먼 이야기고 그것만으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많은 우군들이 필요할 것이다. <플라이룸>처럼, 현실의 기초과학 실험실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격문 같은 책들도 더 많이 나와야 한다.
혹시라도 마중물을 붓는 일이 실행된다면 한 방울의 물이라도 보탤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 불편한 점 : 색인이 없는 것, 불요불급한 각주가 너무 많은 것.
- 오탈자는 거의 눈에 안 띄었는데, 딱 한 글자 발견함 (p280 본문 맨 아래)    

 

 

 

길은 하나가 아니다. - p159

우리에게 필요한 건 쉽게 과학을 설명해주는 과학자가 아니라, 자신의 과학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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