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세계를 바꾸다 - 마법, 향신료, 노예, 자유, 과학이 얽힌 세계사
마크 애론슨.마리나 부드호스 지음, 설배환 옮김 / 검둥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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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 시절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하는 쟁쟁한 인물들 ― 그들이 당대나 사후에 어떠한 평가를 받든 ― 중심으로 역사를 배우다 보니 역사책에 담긴 역사는 나와는 무관한 다른 사람들 이야기로만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일제강점기에 현해탄을 건너 일본 땅을 밟았던 징용 피해자들 중에, 한국전쟁 당시 총을 들거나 피난을 떠났던 사람들 중에,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군인들 중에 어쩌면 내 할아버지나 아버지나 삼촌이 있다는 생각을 역사를 배우던 당시에는 하지 못했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내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삶도 분명 있었을 터인데, 내 어머니들의 삶과 역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눈에 띄었다. “가족사는 가장 오래된 새로운 역사다.”

 

몇 해 전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에게서, 학생들에게 할아버지나 아버지 등 내 가족의 삶을 추적해 봄으로써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는 과제를 주었다는 말씀을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일이 있다. 그때 문득 머리를 스친 것은, 일제강점기에 경찰이었다는 외할아버지는 과연 어떤 분이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머니에게서 들은 외할아버지는 꽤 넉넉한 재산도 가지고 있었고, 외국 선교사들과도 교류했던 분이었고, 당시 다른 아버지들과 달리 자식들에게도 다정다감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나는 외할아버지를 뵌 일이 없다. 어머니의 기억에만 의존해 상상해야 했는데, 내 상상 속에서 외할아버지는 역사 속 쟁쟁한 인물들 못지않게 능력 있고, 인품도 훌륭한 그런 분이었다. 그런데 궁금했다. 어머니가 들려주지 않은 ― 어쩌면 어머니도 잘 모르는 일일 수도 있겠다. ― 그 이면의 것들이……. 외할아버지가 소유했던 많은 재산은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것일까, 아니면 외할아버지가 손수 일군 것일까. 상속받은 것이라면 외할아버지의 아버지는 그 재산을 어떻게 누리게 된 것일까. 외할아버지가 손수 일군 것이라면 외할아버지는 어떻게 해서 그 재물을 모은 것일까. 외할아버지가 다른 시대도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경찰이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외할아버지는 일제에 부역한 인물이 아닌가. 외할아버지는 과연 어떤 경찰이었을까. 외국인 선교사들과도 교류를 한 외할아버지는 시대의 흐름을 어떻게 읽고 있었던 것일까. 아직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어떠한 시도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교과서 속 나와는 무관하기만 했던 역사 속으로 한 발짝 들어선 듯한 그런 기분이다.

 

<설탕, 세계를 바꾸다>를 쓴 마크와 마리나의 시작도 이러했다. 각자 가족사에 설탕과 관련된 사연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두 저자 마크와 마리나의 가족사를 담은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마리나의 증조부모는 노예제가 폐지된 자리를 대체할 사탕수수 농장 계약 노동자로서 인도에서 카리브 해의 영국령 가이아나로 이주했고, 마크의 숙모 니나의 조부는 러시아에서 사탕수수 대신 사탕무를 정제하여 큰 재산을 모았다. 이는 그저 야생에서 채집하면 되었던 ‘꿀의 시대’가 설탕의 등장으로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예고한다. 설탕이 어떤 사람에게는 큰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다른 어떤 사람은 사슬에 묶인 노예노동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설탕은 수천 년 전 남태평양 뉴기니 섬에서 최초로 사탕수수 재배가 시작된 이래 뱃사람들에 의해 아시아 대륙으로 전파되고, 이후 인도와 이집트로, 그리고 학문 교류를 통해, 이슬람교도들의 무역을 통해, 십자군전쟁을 통해 마침내 설탕의 단맛을 알지 못했던 유럽인들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15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카나리아 제도를 정복하면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그곳의 사탕수수를 카리브 해의 섬에 가져다 심고, 상인들이 인근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사들임으로써 잔혹한 노예노동으로 “하얀 금” 설탕을 본격적으로 생산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마법이나 향신료로 쓰이던 설탕이 사탕수수 농장의 잔혹한 노예제와 더불어 융성하게 된 본격적인 ‘설탕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설탕의 시대’는 누군가에게는 ‘지옥’이었다. 사탕수수 농장의 끔찍한 노예노동,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의 비참한 삶, 심지어 농장주와 감독관 들의 비뚤어진 욕망과 생활상까지 이 책에 담긴 사진, 그림, 지도 등 풍부한 자료를 통해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설탕 지옥에서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은 이후 어떠한 궤적을 그릴까. 그들은 단순한 희생자로 남지 않고 말과 행동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다. 유럽인들이 그들을 인간으로 보게 만들고, 그야말로 ‘지옥’인 설탕의 시대를 ‘해방의 시대’로 바꾸어 나간다.

 

미국 독립전쟁의 시발점이 된 보스턴 차 사건이 있기 전, 식민 종주국 영국과 뉴잉글랜드 주민들 사이에 설탕세를 두고 갈등이 붉어지고, 미국인들은 영국에 맞서 생명과 자유와 재산에 대한 권리를 선포한 독립선언을 전쟁으로 지켜낸다. 그런데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그들이 재산에 대한 권리는 노예를 소유할 권리를 포함하는 것이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노예노동으로 설탕 무역의 최강자가 된 영국은 노예해방 운동가들의 선구적인 투쟁 덕분에 가장 먼저 노예제를 폐지한 나라가 된다. 프랑스혁명 와중에서 발생한 노예제 지지자들과 폐지론자들의 충돌은 영국과 미국의 노예 소유주들에게 위기의식을 강화시켰지만, 18세기 말 오늘날의 아이티에 속하는 생 도밍그에서 사탕수수 농장 노예들이 해방 전쟁을 일으켜 프랑스 군대와 싸워 승리함으로써 해방된 노예들의 나라가 세워진다. 당시 사탕수수 농장 노예들이 내건 기치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혁명의 이념이었고, 인간은 결코 재산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이념을 진정으로 실현한 것이었다. 

 

노예제 폐지로 인권의 역사가 한 걸음 진전되었을 때, 설탕의 역사에는 새로운 장이 열린다. 사탕수수 농장은 24시간 가동되어야 했기에 계약 노동자라는 새로운 노동자가 탄생한 것이다. 마리나의 증조부처럼 가난한 인도인들이 카리브 해로 향했다. 한편 영국을 따라잡고자 나폴레옹이 시도했던 사탕무를 통한 설탕 생산은 엉뚱하게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싹을 틔우는데, 여기에 마크의 큰어머니 니나의 가족사가 등장한다. 또한 설탕의 역사에는 남아프리카에서 인종차별 반대 투쟁을 이끈 변호사 간디의 발자취도 담겨 있다. 설탕은 인간을 재산으로 전락시켰지만, 또한 누군가에게는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소유될 수 없다는 인식을 고취시키기도 한 것이다.

 

이 책 말미에는 저자들이 교사와 사서들에게 남기는 팁이 담겨 있다. 저자들은 두 가지 문제의식을 강조한다. 첫째, 설탕과 노예제가 자유를 위한 투쟁과 맺고 있는 관계, 즉 미국과 프랑스, 아이티의 혁명과 영국을 비롯해 이들 나라에서 일어난 노예해방 운동의 연관성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설탕과 노예제가 영국의 산업혁명의 탄생과 맺고 있는 관계이다. 설탕의 역사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노예를 소유한 농장주들이 내세운 자유와 해방이라는 사상을 주의 깊게 살피고, 산업혁명이 플랜테이션에서 나온 이윤의 결과물이 아닌지 숙고할 것을 요청하면서 저자들은 말한다. 근대의 탄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관한 이 주제는 학생들에게 제시할 만한 완벽한 질문이 아니겠느냐고.

 

이 책에 담긴 세계사를 관통한 매혹적이면서도 잔혹한 설탕 이야기도 흥미진진하지만, 가족사와 설탕, 그리고 설탕과 세계사를 연결한 두 저자들의 집필 과정이 그 자체로 아주 유용한 교육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역사 교과서 속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어쩌면 숫자 속에 담기기만 했던 내 가족들의 삶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역사 교육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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