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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잊어버리지 않는 세계사 - 12가지 패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야마모토 나오토 지음, 정문주 옮김 / 시그마북스 / 2025년 12월
평점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세계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를 말한다
한때 세계사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시험을 위해 외워야 하는 연표와 이름들, 금세 잊히는 사건의 나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세계사는 과거를 설명하는 학문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설명하는 언어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요즘 세상을 보면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반복된다. 경제 위기, 제도의 붕괴, 통화에 대한 불안, 정치적 극단화.
이 책을 읽으며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정말 처음 벌어지는 일일까?”
규정의 함정
『12가지 패턴으로 더 이상 잊어버리지 않는 세계사』는 역사를 사건이 아닌 시스템의 흥망으로 바라본다.
인류는 법과 제도, 토지 정책, 화폐, 정치 이념 등 수많은 시스템을 만들어 왔지만 역사적으로 완벽했던 시스템은 단 하나도 없었다.
처음에는 질서를 만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균열이 생긴다.
균전제에서 장원제로 이어지는 흐름은 이를 잘 보여준다.
평등을 위해 설계된 제도는 관리가 느슨해지는 순간 권력을 가진 자에게 유리한 구조로 변질된다.
의도와 결과가 어긋나는 이 장면은 오늘날 제도와 정책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그대로 겹쳐진다.
화폐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실체 없는 숫자와 기록을 ‘돈’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국가가 보증한다는 이유로 신뢰하지만, 역사는 이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도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의 세계사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금융, 경제 불안을 이해하는 배경 설명처럼 읽힌다.
대중은 어떻게 선동되는가
플라톤은 오래전에 민주주의의 구조적 결함을 지적했다.
다수의 선택이 언제나 옳은 판단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감정과 말에 휘둘린 대중은 쉽게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경고는 추상적인 철학에 머물지 않았다.
히틀러는 대중의 불만과 공포를 교묘하게 자극해 여론을 장악했고, 그 힘으로 독재를 시도했다.
역사는 반복해서 보여준다. 대중은 생각하기보다 설득당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여론’이라는 말은 사실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개념이다.
여론이란 정치·사회적 쟁점에 대해 다수의 사람들이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공유는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그것을 전파하는 도구와 함께 등장했다.
근대에 들어 여론을 형성하는 핵심 도구는 신문이었다.
18세기 영국의 도시에서는 커피 하우스가 유행했는데, 손님을 끌기 위해 주인들은 신문과 잡지를 비치해 자유롭게 읽게 했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뉴스를 접했고, 그 뉴스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며 정치와 사회를 논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생각은 점차 집단의 의견으로 수렴되었고, 그것이 곧 ‘여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카페는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사상의 교환소였고,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배경 역시 이 공간들에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여론은 토론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동시에 누군가에 의해 방향이 설정될 수 있는 구조를 지닌다.
대중은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기보다,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이야기와 감정적으로 설계된 메시지에 더 쉽게 반응한다. 그래서 여론은 언제든 토론의 산물이 아니라 선동의 결과로 변질될 수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묻게 된다. 우리가 믿는 여론은 과연 자발적인 판단의 총합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설계한 이야기의 결과일까.
대중이 선동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 자체가 현대를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역사 감각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사를 하나하나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숲을 먼저 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큰 흐름과 반복되는 패턴을 머릿속에 그려 놓으니 세부 사건은 그 위에 자연스럽게 얹힌다.
세계사는 더 이상 암기 과목이 아니다. 우리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그리고 지금의 선택이 어디로 이어질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지도에 가깝다.
이 책은 과거를 외우게 하기보다, 현재를 이해할 수 있는 눈을 먼저 길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