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빙허각 창비아동문고 340
채은하 지음, 박재인 그림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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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글을 읽고 쓰고 표현할 수 있는 지금과 달리, 조선시대의 여성들은 공부하고 글을 쓰는 일조차 제약을 받았다. 


   또한 여성이 주체적으로 나오는 기록도 극히 드물다. 여성이 책을 써서 남긴다는 것 자체가 사회 통념에 반하는 일이었으며, 기꺼이 자신을 낮추고 희생해야 하는 존재가 바로 조선시대의 여성이라는 사실이 어딘지 모르게 씁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맞닥트린 조선시대의 각박한 시기를 주체적으로 살아내며 스스로 지식을 쌓고, 쌓은 지식을 이웃에게 전파하며 역동적으로 살아낸 조선시대의 여성 또한 존재했다면 어떨까? 

​   시대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시대를 앞선 삶을 산 조선시대 여성 실학자, 바로 빙허각 이씨 부인이 그렇다. 빙허각 이씨 부인은 자신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경험을 집대성하여 한글로 쓰인 생활 백서인 『규합총서』를 집필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   이 사실에 착안하여, 채은하 작가는 가난한 양반의 딸 덕주가 빙허각과 함께 책을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를 내놓았다. 바로, 『이웃집 빙허각』이다. 


"규합에 어찌 인재가 없으리오."

덕주는 그 말을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규합은 여성이 거처하는 방이나 안채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여인 중에도 뛰어난 이가 있으리라는 뜻이다. 되새길수록 마음에 드는 말이다.

62 페이지 


   주인공 덕주는 답답한 마음에 새벽녘 언덕을 헤매다가 빙허각을 만나고, 우연한 기회로 빙허각의 집에서 살림을 배우게 된다. 빙허각의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연구하는 빙허각의 모습을 본 덕주. 덕주는 그간 배운 여인의 덕목과 상반되는 빙허각의 모습에 헷갈려 한다. 하지만 빙허각은 덕주의 눈 속에 담긴 불을 알아채고, 덕주와 함께 책 집필을 시작한다.

“왜 쓰느냐. 그 답은 네가 한 말속에 있겠구나. 내가 일평생 해 온 일이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일이니까. 설령 누군가는 고작 여인의 일이라 깎아내리고, 또 그 일이 거칠고 고되기만 해도, 그 속에는 내 경험과 삶이 들어 있으니까.”


151 페이지

 

   덕주의 아버지는 사대부의 도리를 강조하고 글을 쓰는 덕주를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덕주가 빙허각과 계속 책을 만들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해 준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동네의 아주머니들도 비밀스럽게 집필에 손을 보탠다. 대체 왜 험한 길을 가려는지 묻는 아버지에게 덕주는 “저는 꺾이지 않을 거예요. 저를 지킬 거예요.” 하고 단단한 결심을 말한다. 

"어디 보자. 그러고 보니 우리 딸 눈에도 불이 담겼구나. 네 마음을 밝히고 다른 이들에게 온기를 전해 줄 불이란다."

"그러면 아버지 눈에도 불이 있겠네요."

아이는 맹랑하게 종알거렸다. 윤보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는 자기와 눈이 닮은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그해 들었던 세찬 강물 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듯했다. 윤보는 그리움에 젖어 미소를 지었다.

"그 불을 끝끝내 지켜낸 사람들이 있단다. 너도 그럴 수 있을 거다."

187 페이지

 

   기댈 빙(憑), 허공 허(虛), 집 각(閣) - 허공에 기댄다 혹은 아무 데도 기대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호처럼 올곧게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빙허각.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결국 답을 찾아내는 덕주. 그리고 그들의 전진을 누구보다 응원하는 마을 아주머니들의 다스하고 따뜻한 연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이웃집 빙허각』! 

   시대와는 상관 없이, 나이 차이도 상관 없이,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도전해내는 멋진 여성들의 진심과 열심이 모여 꿈을 이뤄내는 빙허각과 덕주의 모습이 현실의 우리를 북돋아 주는 고마운 책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가슴에 품은 꿈을 온전히 펼쳐내는 삶을 살아갈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응원이 담긴 『이웃집 빙허각』을 올 겨울에 읽을 따뜻한 책으로 추천해본다. ​

[출판사로부터 본 도서를 제공받았으며, 제 생각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규합에 어찌 인재가 없으리오."

덕주는 그 말을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규합은 여성이 거처하는 방이나 안채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여인 중에도 뛰어난 이가 있으리라는 뜻이다. 되새길수록 마음에 드는 말이다. - P62

"왜 쓰느냐. 그 답은 네가 한 말속에 있겠구나. 내가 일평생 해 온 일이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일이니까. 설령 누군가는 고작 여인의 일이라 깎아내리고, 또 그 일이 거칠고 고되기만 해도, 그 속에는 내 경험과 삶이 들어 있으니까." - P151

"어디 보자. 그러고 보니 우리 딸 눈에도 불이 담겼구나. 네 마음을 밝히고 다른 이들에게 온기를 전해 줄 불이란다."

"그러면 아버지 눈에도 불이 있겠네요."

아이는 맹랑하게 종알거렸다. 윤보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는 자기와 눈이 닮은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그해 들었던 세찬 강물 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듯했다. 윤보는 그리움에 젖어 미소를 지었다.

"그 불을 끝끝내 지켜낸 사람들이 있단다. 너도 그럴 수 있을 거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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