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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에게 ㅣ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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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여름하고 겨울 중에 어떤 게 더 좋아?"
"엄마는 여름이 좋아."
"왜? 여름은 더운데? 난 여름은 너무 더워서 겨울이 좋아.
겨울엔 내 생일도 있고 눈도 내리고."
"여름이 오는 게 나쁘지만은 않은데. 그치만 덜 힘들게
엄마가 네 여름을 살짝 가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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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어린이는 남편을 닮았다. 체형이나 생김새, 웃는 입모양까지도 영락없는 남편인데, 체온이 높은 체질도 닮았는지 여름엔 유난히 더위로 힘들어한다. 온몸이 뜨끈뜨끈한 난로 타입이라, 겨울엔 아주 쌩쌩하다. 반대로 나는 남편과 아이와는 다르게, 겨울이 유난히 힘들다. 겨울은 매년 익숙해지지 않고 매번 더 춥기만 하다.
사랑할수록 닮는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는 아이는 내가 자기와 다른 점이 썩 맘에 들지 않았나 보다. 여름과 겨울이 다가올 때마다, 아이는 겨울을 좋아하는 자기와 여름을 좋아하는 엄마가 통하지 않는다고 입술이 삐죽 나온다. 그러다 올해, 여지없이 나온 "여름이 좋아, 겨울이 좋아?" 질문에 평소와는 다른 답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슬쩍 본 아이의 입술이 호선을 그린다. 됐다, 이게 정답인가 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조용한 오전 시간, 손에 잡힌 최지은 작가의 『우리의 여름에게』를 읽으며, 나는 나의 할머니와, 나의 아버지와, 나의 아이를 많이 생각했다. 사랑은 무엇일까, 이 빛나는 사랑의 기록을 내가 쉽게 읽어도 될까 몇 번이고 고민하면서.
에세이는 쉽게 읽을 수 있다. 보통은 눈으로 술술 넘길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어쩐지 쉽게 읽을 수가 없고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겉으로만 보자면 최지은 작가는 어린 시절 부모님 대신 할머니와 함께 하며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고, 어른이 돼서도 힘든 일을 겪게 되는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저 어린 시절에 힘듦에 가라앉지 않고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주고받은 귀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있는 반짝이는 존재로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다. 아픔을 온전하게 껴안고 토닥이며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난 후의 개운함으로 반짝이는 이야기들. 어느 것 하나 사랑이 아닌 것이 없는, 그야말로 빛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최지은 작가의 에세이 『우리의 여름에게』에 담겨있다.
읽어 내려가는 문장 하나하나가 책에서 솟아 나와 마음속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어린아이를 포근하게 감싸준다. ‘괜찮아, 손잡아 줄게, 안아줄게-’ 하면서. 그 따스함이 좋아 페이지를 넘기기 아쉬운 마음이 들 때쯤, 나에게도 여름의 한복판을 지나갈 수 있는 용기가 살짝 돋아나는 것을 발견한다. 상처가 흔적을 남겼지만, 그 흔적 위엔 상처를 쓰다듬어주는 손이 있으니까. 그냥, 다 사랑이다.
매일 아침, 아이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아이의 "다녀오겠습니다!"의 인사에,
나 또한 최지은 작가의 할머니처럼
따스히 말해주고 싶다.
"기쁘렴, 기쁘게 집으로 돌아오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