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공포 소설 중 지금까지 최고로 생각하는 책은 기시 유스케의 「검은집」이다. 딱 작년 이맘 때 쯤 이었던 것 같다. 표지부터 칠흙같은 어둠을 떠올리게 하는 「검은집」을 읽었던 것이. 다른 계절에 보는 것보다 여름에 봐야 소름이 오돌토돌 돋는 느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공포 소설이 바로 이 시기에 한국에서 출간되었다기에 나는 남시 「검은집」을 머릿 속 한 구석에 놓아두고 부푼 기대감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물론 밝은 대낮에.
「호러픽션」의 책 표지를 보며 '딱! 공포소설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습한 지하와 같은 공간에 형태가 불문명한 검은 인영. 으스스한 느낌을 한껏 받으며 읽기에 앞서 먼저 각오를 다지고 첫 장을 넘겼다.
「호러픽션」에는 총 열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침입자들, 자살주식회사, 괴물이 있다, 만월의 살인귀, 사자와의 하룻밤, 꿈 속의 그녀, 붉은 장미, 묵도의 밤, 향전, 유령의 집
제목만 봐도 딱 호러 소설이지 않은가? 이 들 중 몇 몇 작품은 상상하기엔 너무 끔직할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었다.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보다 역시 잔인한 사람이 저지르는 끔찍한 행위들이 훨씬 더 공포스럽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단편 작품들 중 '침입자들'은 낯익은 사람들이 낯선 존재가 되면서 주인공을 위협하는 묘사들이 소름끼치도록 오싹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소재들이라 뒷 이야기가 없이 짧게 끝이나 아쉬웠다. '자살주식회사'는 단순 호러이야기가 아닌 무언가를 떠올리게 해주어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겨 있게 했고 '만월의 살위귀'와 '묵도의 밤', '향전', '유령의 집에서'는 끔찍한 장면들이 나와 상상하며 읽지 않으려 애를 쓰며 읽어야 했다. 좀비 영화나 CSI와 같은 드라마를 많이 보아 잔인한 장면에는 단련이 많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로 형용할 수도 없는 이런 묘사들은 정말 상상하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얼마 전 혼다 테쓰야의 「스트로베리 나이트」를 보면서도 끔찍한 묘사에 혀를 내둘렀는데, 이 책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잔인한 것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은 괜한 호기심으로 봤다가 기분이 상할지도 모른다.
기시 유스케이 「검은집」에서는 언제 튀어나올 줄 모르는 살인마에게 쫓기는 묘사들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며 소름이 돋았다면, 「호러픽션」에서는 그런 것 보다 경악과 씁쓸함, 안타까움, 끔찍함이 남았다.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시시각각 거리가 좁아지는 듯한 느낌의 긴박함을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나름의 공포는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단편이라 더 마음에 드는 작품들도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단편이라 아쉬웠던 작품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장편 소설을 찾아보기로 했다. 단편에서의 부족함을 조금이나마 대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