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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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살면서 죽기 전까지 자기 이름의 책 한권은 써야한다고 말한다. 난 아직 책을 낼 수 있을거란 자신감은 없다. 아직까진 별볼일 없는 삶과 나의 지식의 한계를 생각해보면 글을 지어볼 엄두가 안 난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기에 작가란 직업에 대해선 항상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긴 글들을 써 내려갈 수 있는지, 어떻게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글들을 생각해 낼 수 있는지, 작가라는 직업의 불안감은 없는지,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서 얻는지 궁금했다. 작가는 어떻게 시작하는 걸까?


그동안 수많은 소설책들을 출간했지만 자서전적인 에세이는 처음이다. 남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자서전은 항상 흥미롭다. 에세이라고 하지만 나와 다른 누군가의 삶의 처음과 끝을 엿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소설이지 않나 생각한다.


책이 다른 책들에 비해 가로가 짧아서 왜 그럴까 생각하며 펼쳤는데, 그 이유를 첫 챕터에서 알겠다. 타로카드 확대모양. 자신의 인생을 타로카드와 연계하여 필연적이면서 운명적인 작가로서의 삶을 전개해 나간다. 첫 챕터부터 강렬하게 시작되는 코르시카섬에서의 여름 한밤의 소동으로 시작한다. 역시 작가다. 자서전인데도 호기심을 확 잡아끄는 말, "다 끝났어. 넌 죽은 목숨이야." 그리고 그의 목을 향한 총구.

왜 이 사건을 가장 처음으로 사용했을까 생각해보면, 자신의 삶이 끝날 수도 있는 순간이면서,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순간이기에 의미를 두지 않았을까.. 또는 앞으로 나올 글쓰기의 한 기술인 서스펜스라는 장치일 수도.

자서전인데 벌써 흥미롭다.

그리고 계속 되는 사건들과 사람들과의 만남, 그 안에서의 작가의 깨달음.

챕터가 끝날때마다 다음 타로와 연관된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자꾸 다음 장을 펼치게 되는 마법을 맛보게 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어렸을 때는 암기도 수학도 못하고 학교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던 아이로 자신을 평가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머리속에 이미지화하여 스토리텔링하는 능력은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책을 좋아했고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글쓰는 걸 좋아하던 아이. 이미 작가로서의 능력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의 삶도 항상 순탄치만은 않았다. 9살에 판정받게 된 강직척추염이 그 하나다. 그럼에도 인생의 여러 스승들을 만나며 글쓰는 방법에 대해서 알게 되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법도 배우고 명상하는 삶을 배운다. 그래서 <12번 아르카나: 매달린 남자>카드를 이용하여 설명한다. 매달리고 꼼짝할 수 없는 몸이어도 거꾸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배우는 자세를 갖추게 되었다고.

욕심이 없어지면 실망하거나 좌절할 일이 없어. 삶 자체가 너를 추동할 뿐이지. 너한테 벌어지는 모든 일을 감사히 받아들이게 될 거야. by 자크 파도바니 (62p.)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는 참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고 그 궁금증을 꼭 해결하고야 마는 사람인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신문을 제작하고 창간하는가 하면, 법학도면서 철학, 천문학, 과학에도 관심이 많고, 비과학적인 최면이나 영매, 전생에도 관심이 있고, 독서도 많이 하면서 여행도 많이 다니고, 여러 사람과 관계 맺는 것에 대해 즐거움을 느꼈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여행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실금이 터져나온다. 특히 첫부인과 인도여행에서의 일화는 너무 재미있어서 딸에게도 보여줬더니 너무 재미있다면서 자기도 꼭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했다. <서른 살, 인도로 모험을 떠나다. 223p.>부분은 꼭 읽어보길!!


쭉 재미있게 읽다보면 작가의 마인드에 대해서 나와 있는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작가의 깨달음의 순간들을 명심하면 글쓸 때 도움이 될 거 같아 적어본다.

잊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기록이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기록하는 게 방법이다.(43p.)

우물 안 개구리는 좋은 이야기꾼이 될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쓰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 부지런히 낯선 사람들을, 자신과 다른, 심지어는 정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만남과 경험을 꼼꼼히 기록해 놓았다가 나중에 작품에 활용해야 한다. (118p.)

매일 오전 네 시간 30분씩 글을 쓰는 것 외에 한 시간을 추가해 놀라운 결말을 가진 짧은 글을 하나 더 써보자.

단편 쓰기는 새로운 소재는 물론 새로운 서사 기법과 구성을 테스트하는 실험실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었다. (127p.)

양자 물리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관찰자 효과>, 즉 <관찰자라는 존재 자체가 관찰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147p.)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소설을 쓰기엔 좋은 소재가 된다. (199p.)

<설명하기 보다는 보여 주는> 이야기가 좋은 소설이다. 이를 위해 설명적인 대화는 최소화하고 상황만 독자에게 제시해 스스로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259p.)

부침을 거듭하면서 작가라는 직업이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임을 깨닫게 되었다. <한 방> 터뜨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규칙적인 리듬을 유지하면서 지치지 않고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299p.)

이해하려고 노력하되 판단하지는 않는다. 이해를 바탕으로 복잡하고 정교한 시계 장치, 다시 말해 현실을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재현해 낸다. 그게 내가 소설을 쓰는 방식이다. (372p.)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의미에서 갈등을 동력 삼아 작동하기 때문이다. (412p.)

글쓰기가 음악 연주나 운동처럼 즐거운 경험임을 깨닫게 해주려는 목적이었다. 좋은 아이디어만 찾아내면 글은 순식간에 써진다는 걸 참가자들이 체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

과감하고 독창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

나는 초보 작가들에게 <에크리뱅>이 아닌 <오퇴르>가 될 것을 주문했다. (448p.)

30년의 작가 인생을 돌아보며 스스로 기록해 나간 이 에세이를 읽으며 참 감사했다.

초보 작가들에게 글쓰는 방법을 자신이 살아오며 겪은 경험들을 예를 들며 한 마디 한 마디 뼈를 심어주었다.

그러면서 여러 기법들; 클리프 행어, 페이지터너, 서스펜스 장치, 리버스 숏 기법 등을 알려준다.

여전히 매해 10월이면 신작을 쓸 것을 스스로 다짐하는 면에서 그의 작가로서의 삶이 끝나지 않아 다행이라 느끼며 앞으로의 출간될 책들에 대해 기대감을 심어주게 되었다. 앞으로 이 책에서 말한 작가의 글쓰기 비법들이 잘 녹아나 있는지 접목해가며 읽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책을 번역해 준 이세욱, 임호경, 전미연 번역가님들에게도 감사하다. 이 책에 작가가 여러 나라에 출간하기 위해 번역에 대해 고군분투하는 부분에서 우리 나라의 번역가님이 대단하다 여겨졌다. 그의 유머 뉘앙스를 그대로 옮겨줬고, 그가 프레임짰던 부분들을 그대로 옮겨와 줬기에 우리가 작가의 의도를 온전히 느낄 수 있고 작가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본다. 그 부분을 알기에 작가도 우리 나라 한국에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는 것일지도. 독자와 작가의 중간자 역할을 제대로 해내신 번역가님들과 편집자님들 수고에 감사를 드리고, 이 작가를 만나게 해 준 출판사 [열린책들]에도 감사하다.


벌써 작가의 다음 책이 출간되었는데, 부푼 마음으로 어서 읽어보고 싶다. 이런 맘을 갖게 해준 이 책 [베르베르씨, 오늘은 뭘 쓰세요?]는 작가의 다른 책에도 관심을 갖게 해주는 마중물이지 않을까 싶다. 베르베르씨의 책들을 읽어보고 이해해보고 싶다면, 오히려 이 에세이를 먼저 읽어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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