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 (양장) -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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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자마자 발 위로 떨어진 엽서 한 장. 나를 악마의 속삭임으로 꾀어 내 입에서 '만약에'라는 말을 내뱉게 만드는 초대장이 왔다.

이 책에서 만날 헬렐이란 악마는 과연 어떤 달콤함으로 사람을 꾀어낼지 궁금해진다.

너무 불운한 가정환경에서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삶을 하루하루 겨우내 살아내는 중학생 현정인. 이 아이의 입에서 나올 '만약에'는 그늘보다 어두운 삶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줄까?

나혜림 작가도 작가의 말에 불행한 어린 시절을 살아왔다 털어놓았다. 그래서인지 정인이가 느꼈을 감정에 대해 현실적이면서 적절한 비유를 통해 세심하게 표현한 느낌이 든다. 1인칭 정인이의 시점으로 이야기되어져서 그런지 읽으면서 정인이의 힘든 삶 속에서 주인공이 바라보는 세상이 더 공감되는 거 같다.

나이키를 신는 태주가 부러우면서도,

상냥한 재아와 함께 대화나눌 땐 행복하고,

고장난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고 ,

어른이 잘못했는데도 아이에게 덮어씌우는 '햄버거 힐'사장에게 화를 내보기도 하고,

헬렐과 대화를 나눌 땐 오히려 냉정하게 판단하는 정인이가 마치 나인 것처럼 빠져들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이 읽을 수록 맘에 든다.

정인이는 '만약에'라는 상상의 말에 어떤 것들을 말했을까?

참 대견하게도 할머니의 상상에 대한 충고들을 되새기며 악마의 속삭임을 잘 이겨낸다. 어린 나이에 이렇게 악마 앞에서 당당할 수 있다니. 세상이 아이를 너무 일찍 크게 만든 느낌에 안타까우면서도 아이의 당당함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인이에겐 최악의 사건들만 거듭해서 일어나고 결국 상상 속에 갇히게 된다. 빠져나올 수 있을까?

상상도 지나치면 병이다.

...

이런 상상, 저런 상상. 좋은 상상, 나쁜 상상. 상상은 해 볼 수 있지, 사람이니까.

근데 상상을 끝낼 줄도 알아야 한다.

-187p.-

얘 이름은 달개비야.

...

밭이나 길이나 쓰레기장이나, 아무 데서나 잘 자라. 땅도 안 가리고 응달도 안 가려. 무던하고, 까다롭지 않고. 그런데 꽃은 너무짧게 피어. 하루면 시들어 버리거든. 그래서 꽃말도 '짧은 즐거움'인가 봐.

-97p-

여기에서 나오는 식물들은 왠지 다 정인이와 그 처지를 설명해주는 주체들인 것 같다. 달개비꽃, 꽃무릇, 계수나무, 클로버. 나는 <클로버>라는 제목을 봤을 때 그저 행운과 연관지어서 생각했지만, 이 책에서의 클로버는 그늘에서도 자라나고 있는 세잎클로버를 이야기하며 아무것도 아니면서 척박한 환경에 있는 정인이를 표현하는 주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자라날 수 있다고.


주인공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는 아침이 되어 봐야 아는 거야. 인생도 마찬가지고. 마냥 어두운 것 같아도, 그 밤이 지나고 햇빛이 비출 때 어떤 모습일지는 너희가 결정하는 거다.

-149p.-

이야기 중간에 국어 선생님의 수업 중 나오는 밤에 대한 설명이 너무나도 맘에 들었다. 정인이가 결국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옳은지 알려주는 것 마냥 작가가 주인공에게 해주는 이야기 같았다. 밤은 계속 되지 않는다. 정인이가 이 어두운 밤을 이겨내거라 결심하고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할거란 기대감을 갖기 좋은 말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근데 넌 아직 유통 기한이 안 지났는데 왜 안 괜찮지? 

-158p-

이 글귀는 나에게도 하는 말 같아서 뜨끔하다. 난 왜 아직 유통기한이 남아있는데 힘들어 하는거지? 왜 꿈이 없는 것처럼 삶을 썩히고 있지? 정인이를 봐. 얘도 이겨내려고 꿈이길 바라는 불운 속에서도 한 발자국씩 내딛잖아. 이 책을 읽으며 그래도 좋은 조건 속에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이 순간에 감사하며 나의 유통 기한 내에 신선하게 살아가자 결심해본다.

이 책에서 감초역할의 악마 헬렐이 정인이의 삶에서 그나마 현실에서 벗어나서 조금이나마 즐거운 상상을 즐기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 온갖 고급진 것들을 보여주지만 정인이에게 거절당하는 모습이 비굴하지만 귀엽다고 느껴진다. <클로버>가 영화화 된다면 차승원 배우님이 잘 어울릴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덩치가 커다랗고 쌔 보이지만 쭈굴미가 있는 대사를 잘 읊을 거 같은 배우님이지 않을까.

다 읽고 나서 속이 후련하면서도 씁쓸함이 남았지만, 투아웃 9회말 상황에 끝내기 홈런을 때려버릴 정인이를 응원하게 된다. 또한 어른으로서 불우한 환경의 사각지대에 처한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함에 무력감 또한 느낀다. 많은 어른들이 어른으로서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이 한 발 한 발 힘있게 내딛을 수 있게 좋은 제도들을 만들고 복지를 실천해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을 빌어 일어나지 못할 만큼 힘을 잃은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사람들은 극복하는 인간을 좋아한다지만 사실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극복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냥 하세요. 뭐 어떻습니까, 딱히 할 일도 없잖아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피어날 겁니다. 응달에서도 꽃은 피니까요.

-작가의 말 241p-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리뷰를 하였습니다.

근데 넌 아직 유통 기한이 안 지났는데 왜 안 괜찮지?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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