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조선 초를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이다. 천선란 작가가 추천사에 에놀라 홈즈를 언급하여 제법 기대감을 안고 읽기 시작했다.
어떤 작가들은 독자가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하면 불쾌해한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작가가 아니고 독자인지라 이후 전개를 대강 짐작할 수 있으면 큰 즐거움을 느낀다. 이번 책은 그런 종류의 책이었다. 읽는 동안 큰 부담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인공 민환이는 조선 최고의 수사관인 아버지의 뒤를 쫓아 자신이 나고 자란 제주로 향한다. 제주에 남겨두고 온 동생 민매월을 만난 민환이는 제주에 묻힌 아버지의 행방을 쫓고 이들 부녀가 얽힌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뒤틀렸던 자매의 관계는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회복되고 민환이는 누군가의 말을 따라서 살기보다 자신의 뜻대로 사는 이로 거듭난다.
첫째와 아버지 사이는 참 역동적이다. 첫째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 의지하고 싶다. 그와 동시에 아버지와의 투쟁을 통해 어른으로 거듭나고 싶다. 태양은 빛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그림자를 상징하기도 한다. 관점에 따라 참 구식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지나는 첫째와 아버지 사이는 어찌되었든 인간과 태양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민환이에게 있어서도 아버지는 태양이다. 삶의 지침, 길잡이, 인정 욕구와 뛰어 넘어야 할 사람. 하지만 작중 사건을 겪으며 절대적이었던 아버지의 위상은 흔들린다. 빛은 필연적으로 그림자를 동반한다. 아버지에게 동생 매월이는 쉽게 떨쳐낼 수 없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였을 거다.
모든 인간은 좋은 인간일 수 있지만 완벽한 인간은 될 수 없다. 이 사실을 절절히 깨달은 다음에야 첫째와 아버지는 동등한 인간으로 만나게 되는 모양이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었던 일도 용서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없던 점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환이와 매월, 두 자매는 아버지의 유산인 서로를 마주하며 상대를, 자신을, 이윽고 아버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기대받는 첫째(특히 장녀)가 읽는다면 위안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