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부수는 말 - 왜곡되고 둔갑되는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기
이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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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회학 연구자인 이라영이 던지는 21개의 화두의 중심에는 '말'이 있다. 왜 어떤 말은 뱉어지기까지 너무나 쉽지만 어떤 말은 그토록 어려운지, 왜 어떤 사람을 말하기만 하고 어떤 사람은 듣기만 하는지, 왜 어떤 말은 빠르게 잊히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나를 분노하게 하는 말도 있지만,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말들이 더 많다. 나 역시 빈번히 무심한 폭력을 저지르는 주체가 되므로. 몰랐던 것들을 새로이 알고 배우는 것은 분명 큰 기쁨이지만, 동시에 내가 옳다고 믿어온 것들이 무너지는 일이고, 그럴 때마다 나는 자꾸만 부끄러워진다. 내가 뱉었던 말들이 나에게 돌아와 나를 가차 없이 때리는데, 그럼에도 지금 내가 아는 것은 티끌에 불과하다는 사실 때문에 더 괴롭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말하는 '아름다움'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저자는 시몬 베유의 '아름다움은 선에 대한 우리들의 갈망을 반추하는 거울과 같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아름다움은 '고통과 연대하고 권력에 저항하며 정상성에 균열을 내어 세상에 충격을 주는 행위'(9쪽)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 '나 이외의 타자와 동등하게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결'(362쪽)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므로 섣불리 비관주의에 잠식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문제들을 어쩔 수 있는 것으로 바꾸'(288쪽)려 부단히 노력하기. 또한 이것이 아름다움에 가까워지는 행위임을 기억하기. 완벽하고 매끄러운 아름다움이 아닌, 울퉁불퉁하고 땀 흘리는 아름다움을 향해서라면 한없이 부끄러워지더라도 다시 올려다볼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나 고통에 대한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 P7

고통을 외면한 채 우리는 아름다움을 맞이할 수 없다. 타자의 고통을 마주하고 사랑과 아름다움이 주는 힘과 그것의 정치성에 대한 무한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세계를 아름다움으로 이끌 것이다. 아름다움은 살아가는 모든 것에게 애쓰는 마음이며 동시에 죽어간 모든 것에게 애도를 잃지 않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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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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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쉬운 내용은 아니라 술술 읽히진 않지만, 내용이 너무 흥미로워서 읽는 내내 감탄하게 된다1970년대에 영미 여성문학을 가르치던 두 여성이, 19세기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페미니즘을 통해 비평하고 있는데 도무지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긴 하지만...


당시 여성 작가들이 겪어야 했을 차별은 얼핏 짐작할 수 있었지만, 실제적인 텍스트로 보면 그 비난의 수위가 견디지 못할 만큼 악랄하고 유치했음을 알 수 있다. 생각하는 여자는 자연을 거스른다고 간주되(155), ‘굴복하지 않는 여자는 그저 신경증적인 여자일 뿐이라(163) 것이 당연히 여겨졌던 시대에 어떻게든 펜을 들어 글을 써낸 여자들. 전적으로 남성이 지배하던 문학이라는 가부장적 공간에서 이 여성들은 어떻게 글을 썼을까


1부는 당시 문학장이 얼마나 여성 작가(독자)들에게 배타적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앞으로 이어질 내용을 가볍게 예고한다면, 2부부터 5부까지는 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에밀리 브론테, 샬럿 브론테, 조지 엘리엇의 소설들을 직접 다룬다.


읽다 보면 내가 작품을 정말 겉핥기로만 읽어왔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와 레이디 캐서린이 실은 굉장히 닮아 있고, 고로 캐서린이 어쩌면 ‘엘리자베스에게 어울리는 어머니’라는 것. ‘엘리자베스는 꺾이지 않는 용기를 지닌 캐서린을 닮아 있다. 결국 이들만이 이 소설에서 진정한 분노를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여자’(338쪽)라는 것은 엘리자베스와 캐서린을 일종의 대결 구도로만 봤던 나로서는 전혀 포착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폭풍의 언덕>에서의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관계성을 분석한 부분도 진짜 재밌었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채찍이고, 또 다른 자아이자 분신이며, 캐서린의 존재를 보충하는 부가물이’므로,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의 결합을 통해 완벽한 양성적 존재가 된다’(484쪽)는 건 흥미로움을 넘어 뭔가 짜릿하기까지 했음.


6부에서는 19세기 여성 시인들의 작품들을 분석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들에 쓰인 ‘거미줄’과 ‘바느질’에 대한 해석. ‘거미의 기예와 그것이 상징하는 여성 예술의 모호한 속성’, 그리고 거미줄과 여성 예술 둘 다 ‘검열관 같은 주부의 빗자루에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 나아가 이는 거미와 여성의 바느질로 연결되며, 브론테가 시 속에 직접 써넣은 대시(-)가 ‘분열된 생각을 솔기마다 접합시켜주는 섬세한 바늘땀’(1081쪽)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해석은 정말 재밌음. 더불어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을 접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의 작품이 왜인지 맑고 차분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예상치 못한 강렬하고 분노하는 시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구...


여성 작가들이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글로 읽으니 더 좋다. 시대적 한계로 인한 불편한 부분들이 있다는 이유로 고전 작품을 자주 읽지는 않았는데,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굴해 내는 독서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쉽게 외면하지 않고 어떻게든 다른 시각으로, 다양한 자세로 읽어보는 것. 그래야지 내가 디딜 수 있는 땅이 더 넓어지겠지, 이 책을 쓴 두 여성이 여성 문학의 땅을 단단히 다져 주었듯이. 


분량도, 내용도 어려웠지만 완독하고 보니 '필독서'라는 간명한 추천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성은 남성의 ‘펜’에 의한 창조물로서 ‘감금되었다.’ 여성은 남성이 내뱉은 ‘문장’으로 (사형이든 징역형이든) 형을 ‘선고받았다.’ 남성은 여성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을 ‘기소했다.’ 여성은 남성이 ‘만들어놓은’ 사고에 따라 남성의 텍스트, 그림, 그래픽 속에 갇혀 있었으며, 여성은 남성의 우주론 속에서 (죄 많은 결함투성이로) ‘날조되었다.’ - P89

예술의 마력은 남성의 신화에 의해 죽임을 당한 여성들을 다시 살려내기 때문에, 여성에게는 광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 걸까? - P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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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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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를 흥미롭게 읽었었기 때문에 더 기대되었는데, 역시 좋았다.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이 남성 중심 예술계에 의해 의도적으로 지워졌던 여성 예술가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면, <기울어진 미술관>은 권력에 의해 가려졌던 소수자들을 망라하여 다룬다는 점에서 같은 궤에 있으면서도 다른 책. 


'예술이 돈과 권력을 떠나 독립하기는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7쪽), 한 폭의 그림일지라도 그것은 필연적으로 '시대를 증언'(8쪽)하게 된다. 그저 아름답다는 감상을 넘어, 그 안에 얽힌 사회적 맥락과 권력의 작동을 읽는 것은 오늘날 우리를 돌아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슬프게도 그 '기울어짐'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우리는 그 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그림에 대해 하나도 몰라도 술술 읽힐 만큼 쉽고 재밌게 쓰인 글이다.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과 나란히 읽어보는 것을 추천.

그래서 이 책은 의도치 않게 시대를 증언한다. 화가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필연적으로 자신이 살던 시대의 공기를 작품 안에 담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략) 이렇게 그림은 당대의 문화적 편협함과 무지를 드러내는 선명한 징후였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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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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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정보도 없이 서점에서 우연히 <칵테일, 러브, 좀비>를 사서 읽은 후 조예은 작가에게 완전히 반해버린 적이 있다. 그때의 기대를 가지고 읽은 이번 소설집은 뒤표지에 쓰인 대로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이들의 이야기이다. 다만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가 막막하고 처참하기에,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쪽에 머무르길 선택한 용기를 가진 이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부분 한심하고 가끔 사랑스럽지만 잘 살"(208쪽)길 바랄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인육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정체불명의 생명체와 꿈속에 들어와 악몽을 만드는 몽마까지 사랑스럽게 보인다면 믿길까. 그 기묘함마저, 그 미련함마저 사랑하게 만들어버리는 인물들이 복작복작 모여있는, 이 세계의 다음 이야기를 또 기다리게 만드는 책이다.


여름이 가기 전에 이 시원하고 달큼한 책을 얼른 읽어보시길!

미주에게 수안이 수십, 수백 중의 1이라면 수안에게 미주는 그 자체로 꽉 찬 1이었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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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 -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그 영화를 다시 볼 수밖에 없다
주성철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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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방송 <방구석 1열>과 유튜브 채널 <무비건조>에서 익숙하게 뵈어 온 주성철 평론가님의 첫 평론집! 그간 읽어 온 영화 평론집은 목차별로 한 영화를 진득하게 파헤치는 쪽이었다면, 이 책은 여러 영화를 넘나들며 감독, 배우, 장르를 다양하게 소개하는 쪽이다. 하나의 영화(감독/배우/장르)에 쓰인 분량이 그리 길지 않은데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얇지만은 않다. 한 작품을 심층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여러 영화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사유를 통해 다른 감독에 의해 만들어지고, 다른 배우가 연기하고, 다른 장르에 속하는 영화임에도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더 나아가는지를 통찰하고 있기 때문. 영화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게 닿을 수 있고, 이미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미처 알지 못했던 영화의 재밌고 씁쓸한 뒷이야기를 알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여러 작품을 다루는 과정에서,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기자님의 애정이 잔뜩 묻어나서 좋았다. 어떤 것을 오래, 열심히 사랑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반짝거림이 이 책에는 있다. 이런 반짝거림이 잘 묻어나는 책 속의 한 구절을 함께.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감독의 집중력과 스태프의 기술력, 그리고 배우의 컨디션이나 현장의 날씨 등 그 모든 미완성인 것들이 모여 마치 완벽하게 연출된 것인 양 관객을 유혹하는 게 영화다. 난 근본적으로 미완성일 수밖에 없으면서도 마치 제대로 완성된 것처럼 너스레를 떨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예술의 속성이 매혹적이면서 때론 귀엽다. 그리고 100년 넘는 영화의 역사라는 것이, 어떻게든 그 틈새를 채우기 위한 안간힘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와의 스킨십이란 바로 그 틈새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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