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노자이야기, 나락한알속의 우주, 좁쌀한알' 등의 무위당선생에 관한 책을 몇권 읽었을 뿐이다. 당시 느낌은 꽤 속물스런 내 머리론 그의 비범광대한 삶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고 좀 과장된게 아닌가도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감동을 느낀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마음이 시끄럽고 사는게 피곤할 때 나도 모르게 들쳐보면서 위로받고 마음을 잡는데 도움이 되곤 하였다.
최근 출간된 이책은 우리나라 해방전후 근현대사의 권위자이신 김삼웅선생(전 독립기념관장 역임)께서 쓰신 평전으로, 안개속에 가려진 듯 잘 드러나지 않았던 무위당 장일순선생의 은밀한(?) 삶에 관해 우리 현대사에 실제 어떤 영향과 족적을 남겼는지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드러내어 기술하였다.
질곡어린 우리 현대사와 무위당 개인의 역경어린 삶은 서로 거울에 비춰진듯 조응한다는 점에서 우리 현대사의 흐름이 피부에 와닿은 듯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는 보기 드문 텍스트로 보인다.
또한 정통역사가의 객관적 시각으로 실제 사실을 기술한 평전임에도 불구하고, 읽다보면 어느새 한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보는 듯, 또는 옛날옛적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한 위대한 영웅의 드라마틱한 천로역정의 신화를 읽는 것 같기도 한 먹먹뭉클한 카타르시스 같은 걸 느끼게 하였다.
더구나 요즘 출간되는 책들에서 보기드문 조그만 폰트체에 400쪽 가량의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단숨에 읽힐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어 한편의 대하역사 블록버스터 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평소 우리 역사와 무위당선생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나로서는 무어라 간략히 내용을 요약하거나 평하는 것은 능력밖의 불가한 일이다.
그럼에도 한가지 말하고 싶은 바는, 현시대 자본주의 역사상 최악의 버전인 신자유주의로 인해 국가간 지역간 계층간 빈부격차와 갈등의 극대화, 산업혁명이후 오래 지속된 무차별 대량생산에 의한 극심한 환경파괴로 공해와 기상이변 심화 등, 이러한 문제들에 관해 이미 오래전 70년대부터 그 심각성을 예견하여 문제의 핵심을 꼬집고 더 나아가 근본적인 대안까지 제시한 점은 그가 시대를 앞선 혜안을 가진 선각자이자 진정한 지식인이었음을 말해준다.
그가 제시한 대안은 자본주의의 물질주의 세계관의 비인간적, 반생명적인 측면과 드러나는 폐해를 비판하며, 이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가능케 하려면 인간과 자연 속의 모든 생명체 심지어 한갖 눈에 띄지도 않는 미생물까지도 존중하며 동고동락 공생해야만 한다는 생명공동체사상인데, 무거운 주제이지만 이를 보통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과 논리로 주장하여 그 보편타당성을 직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다.
오히려 설명하는 제 말이 더 어렵다. 궁금하시면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각설하고 책내용 중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일부 인용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 지금 세계문명은 핵무기, 공해같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어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사람의 욕심에서 온 거란 말이에요. 지구가 병이 들고... 오염된 이런 공해의 일체가 욕심에서 온 거란 말입니다. 자연보호 하자고 하면서도, 자연을 착취하는 생산을 계속하고 있단 말이에요. 병주고 약주는 거지, 그렇지 않습니까?
원인에 대한 방향 전환을 하지 않고, 문제의 결과만 땜질을 하려 드니까 그게 되나요? 되지를 않지요. " - p28
"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졌다... 전쟁중에 원주의 지주들 대부분은 북한군에 붙잡혀 처형되거나 북으로 끌려갔다. 장일순의 집안도 원주에서 알아주는 지주집안 이었기에 누구보다 먼저 피난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전쟁이 벌어진 뒤에도 장일순 가족은 피난을 가지않고 원주에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일순 가족은 모두 무사할 수 있었는데 각지의 소작인들이 경쟁하다시피 장일순 가족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작인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피신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은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장일순 집안이 소작인들에게 베푼 넉넉한 인심과 돌봄 덕택이었다. " - P49
" 정치가 사람 살리지 않고, 사람 사는 길로 가지 않고 어떻게 잘 될 수 있겠습니까? 그건 거짓 정치죠. 우리 사회에는 국민을 갈라놓고 지배당하고, 지배하는 쪽에 붙어 먹는 패거리들이 있습니다. 정치를 통해서 어떤 개인의 명예라든지, 기선을 잡는다든지 그런 따위의 망상은 버려야 된다 이 말입니다. 근래 몇해 동안에 찾아오는 사람과 얘기를 해보면 대개 다 그 지경이라. 그러니까 문제는 뭐냐 하면 내면의 생활이 제대로 되어 있느냐, 그러서부터 문제를 풀어서 전체적으로 보는 안목,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자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통일도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끼리 살아갈 수 있는 조건,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문제라고 봐요.
지금 더러 통일운동 하는 사람들이 온단 말씀이야. 그래서 내가 자네들 통일운동을 북쪽하고 하는 건가? 하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 그래서 이렇게 말했지. 자네들 국민하고도 통일운동을 제대로 못하면서 무얼 북쪽하고 통일운동을 해? 또 나아가서 남한 내부가 지역감정으로 갈갈이 찢어져 있는데, 그 이해관계도 감정적으로 골이 깊은데, 그런 통일운동도 못하면서 뭐 어디하고 통일운동을 해? " - P255
" 난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내일 지구가 망한다 해도 오늘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사람이 있었지 않아요? 어차피 사람은 자기 나름의 사는 즐거움이 있고, 보람이 있어야 하니까. 그러면 내일 망한다 해도 그냥 밀고 가야 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요. 또 한가지는, 그렇게 하면 소망(희망)이 있다고 믿어요. " - P278
" 아마도 한살림운동이 현재 벌이고 있는 농산물 직거래와 같은 활동은 어떤 사람들의 시각에서 볼 때, 이 공해세상에서 자기들만이라도 살아남아보고자 하는 지구적인 소시민운동 쯤으로 보일지 모른다.
혹은 이 운동이 급속도로 와해되어가고 있는 농촌에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하는 사람이 살 수 있고, 그래서 마침내 살아 있는 땅과 마을을 새로운 형태로 돌이키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필사적인 노력의 하나라는 점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런 노력이 무슨 현실적인 효과가 있겠느냐고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의 생존의 바탕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것을 '진보'라고 여기는 이 어리석음과 무책임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배적인 습관과 타성을 거부하고 사람살이의 올바른 방식으로 '흙의 문화'의 재생을 위해 누군가가 헌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 - p279
" 고향 후배가 (무위당)선생님을 찾아와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후배의 말을 다 듣고 난 무위당은 아무 말없이 붓과 벼류를 꺼내 글을 써내려갔다.
'배고픈 사람 배불리 해주어라. 세금 조금 내보내라. 부역 없게 하라.'
다 쓴 글을 후배에게 보여주며 '이대로 실천할 자신 있으면 출마하고, 자신 없거든 출마하지 말라'고 준엄하게 말했다. 글을 본 후배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
(부역賦役: 국가의 공공사업을 위해 보수없이 국민에게 책임을 지우는 노역)
"장일순이 제자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주 한 말이 있다. 글씨로도 써서 나눠주었다.
'저파비(猪怕肥)였다. 돼지 저, 두려워할 파, 살찔 비'
곧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이다. 돼지는 살이 찌면 도살당하기 때문이다.
'저파비'앞에 '인파출명(人怕出名)'이 있었다. '사람은 세상에 허명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라'라는 뜻이다.
군사정권기는 물론 지금도 얼마나 많은 각계의 명사들이 허명을 날리다 날개도 없이 추락하는가. 장일순은 이를 경계하고 항상 허명을 내지 않으려 애썼다. 마음을 비우는 일, 달리 말하면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삶을 살고자 했고 이웃들에게 솔선했다. " - p327
" 노자에 그런 말이 있어요. '생이불유(生而不有)요, 장이부재(長而不宰)라.
이것은 자연하고 함께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귀중한 제목입니다. 자식은 자기가 낳지마는 그 자식은 자기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랬어도 그 사람들을 '야,자'하고 부리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그 말이에요. '야,자'하고 마구 부리는 그런 태도는 다시 얘기해서 독재의 태도요 내 맘대로 하려는 태도요. 소유하려는 그런 태도란 말이에요. 그건 자연스런 태도가 아녜요. 자연은 소유하려는게 없어요. " - P343
" 1987년 1월 공안당국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와 무위당 선생에 얽힌 일화는 참으로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