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호승이 부치는 275개의 편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내용뿐 아니라 종이 질감, 글씨체, 분량, 챕터 구성까지 만족한 정호승 시인의 시선집.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다. 사람의 가슴속에는 누구나 시가 가득 들어 있다. 그 시를 내가 대신해서 쓸 뿐이다."라는 시인의 말이 인상깊다. 고통으로 깎아내고 깎아냈을 말들을 미련 없이 보내는 담담한 태도가 존경스럽다.

워낙 노동, 사랑, 해방, 자연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얘기하는 시인이지만 난 그중에서도 슬픔에 관해 얘기하는 정호승이 좋다. 당연히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던 슬픔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슬픔에 대해 깊게 고찰하는 그의 시가 좋다.

탑백귀만큼이나 시 보는 눈도 매우 대중적인지라 그의 시 중 <슬픔이 기쁨에게>와 <고래를 위하여>를 가장 좋아한다. 특히 <슬픔이 기쁨에게>는 고등학생 문학 시간에 처음 배운 시였는데, 감상하고 나니 말그대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이토록 다정하고도 담담하게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세상을 조금은 더 따듯하게 바라보고 나의 것을 조금만 더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내가 쥐고 있는 것을 조금만 놓아도 되지 않을까'를 느끼게 해준 시다. 지금 생각해보면 감상 포인트가 더욱 많은데, 그때의 여유 없고 이기적이었던 난 이런 것부터 보였다.. 역시 가장 찔리는 부분부터 보이는 법

<고래를 위하여>는 조금은 더 희망적인 시. 내가 이 시를 읽고 나서부터 그렇게 고래를 좋아하게 됐다. 내 마음 속에도 고래가 있지, 있었지, 있어야지, 언젠간 수평선 위로 치솟아오르겠지, 올라야지.. 하면서. 이젠 이게 정호승식 위로법인가 싶기도 하다.

시인의 말부터 시작해 시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시집의 맨 뒤에 있는 김승희 시인과 이숭원 평론가의 해설까지 읽어야 비로소 그의 시 275편을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후에 커피 마시면서, 저녁에 LP 들으며, 자기 전에 한 번씩 들여다보자. 정호승 시인이 건네는 다정한 말들을 들을 수 있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대비하려면

사피엔스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과학 지식 - 지식은 어떻게 문명을 만들었는가
루이스 다트넬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1년 7월

설국열차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살아남은 저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혹독한 추위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냥 종말 급의 대재앙이 오거나 심한 기후변화로 인해 더 이상 현대 문명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들어졌을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공상해본 적이 있다. (더 이상 공상이 아니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지만...)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생존 비법서이다. 지금의 세상이 파괴되고 질서가 무너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처음부터 다시 세계를 재건해야 할지 굉장히 진지하고 자세하게 쓰여 있다. 종말이 온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의 종말일지, 그렇다면 우리는 황페화된 도시를 떠나야 할지 아니면 도시에 머무르며 그나마 남은 문명을 뒤적거려야 할지, 당장 농업은 어떡하고 의식주는 어떻게 해결할지, 집은 어떻게 짓은지, 아플 때는 어떡할지, 전력은 어떻게 재공급할지, 심지어는 잃어버린 날짜 감각을 어떻게 되살려 달력을 만들지도 쓰여 있다. 서서히 우리 주변의 것들을 갉아먹는 그런 형태의 종말이 아닌, 어느날 갑자기 종말이 '뚝' 떨어진다면 제일 먼저 챙겨야 할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이 책에는 기본 생존 방법부터 소통, 과학 등 세상을 재건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이 그야말로 총망라되어 있다.

처음에는 책이 너무 진지해서 웃길 지경이었지만 계속 읽다 보니 이게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무분별하게 환경을 파괴하는 지금의 모습을 고치지 않으면 이런 상황은 더욱 빨리 오겠지. 혹은 전쟁이나. 웃다가 생각해보니 웃을 때가 아니었다는 말이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가 싶었다. 종말에 항상 대비하고 있는 프레퍼(prepper)들이 마냥 허무맹랑한 얘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그걸 발전시켜 온 사람들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많은 것들이 다 누군가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이고 누군가가 직접 만들고 실현했을 것들이라 생각하니 인류의 발전이 무궁무진하긴 했구나(하구나) 느꼈다. 그래도 지금은 충분히 발전했으니

이제는 정말 지구를 생각할 때가 아닌다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 책에서 좋았던 건 각 장에 맞는 명언들을 맨 앞에 제시해준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세계가 파괴됐을 때, 그래도 그동안 인류가 이룩해놓은 것들이 있으니 그걸 소진하기까지의 유예기간 동안 우리는 뭘 해야 할지 알려주는 2장엔 "정반대의 상황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이 어떤지 도저히 알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이 누리는 것은 잃어봐야 그 가치를 말할 수 있다."라는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속 대사를 인용했다. 상황에 더욱 몰입하게 하면서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관한 방향도 제시해준다는 점이 좋았다. 마냥 "지구에 종말이 온다면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해요!"를 얘기하는 책이 아닌, "이렇게까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린 지금 뭘 할 수 있지? 뭘 할 수 있지?"까지 생각할 수 있게 해주어 더욱 고마운 책이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한국의 중소 게임 기업이 어떻게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는가

크래프톤 웨이 - 배틀그라운드 신화를 만든 10년의 도전
이기문 지음 / 김영사 / 2021년 7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임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나도 그 유명한 크래프톤은 안다. 우리나라에서 시작되어 세계로 뻗어나가 모바일 게임 누적 가입자수 10억 명, PC 타이틀 7천만 장 판매라는 신화를 기록한MMORPG 게임 '배틀그라운드' 제작사인 크래프톤. 항상 궁금했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 일했길래 이런 엄청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이 책은 크래프톤(전 블루홀 스튜디오)의 공동창업자 6인이 모여 회사를 세우고 배틀그라운드를 출시하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중간중간 인터뷰 형식의 글도, 장병규 씨의 경영 관련 메시지도 담겨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엔씨소프트에서 나온 게임개발 팀장 3명이 자신을 따를 팀원들을 데리고 나온 것부터 게임과 전혀 관련 없었던 사람을 설득해 공동창업을 이룬 것도, 엔씨소프트라는 거대 기업의 압박을 결국에는 이겨낸 것도, 그렇게 엄청난 성과를 이룬 과정이 정말 생생하게 적혀 있다. 공동창업자 6인이 모이고 직원을 모으고 동고동락하며 결국에는 해낸 과정들을 보면 정말 영화를 이렇게 써도 현실성 없다고 욕먹을 정도로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회사의 비전과 기업 모토에 관한 이야기였다. 창업자는 'MMORPG의 명가'라는 큰 비전을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한 세부 비전 및 목표를 제시했다. 게임 개발자들이 게임사의 부속품처럼 취급받지 않도록(기성 기업들에서는 이런 현상이 심했다고 한다) 개발과 경영을 완전히 분리할 것, 구성원들 간 수평적 소통을 최우선 가치로 삼을 것, 일단은 동료를 신뢰할 것 등의 목표들. 간단해 보이지만 아예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 상황에서 이런 새로운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갖추기는 쉽지 않다. 창업자는 비전을 제시하고 '기업이 아닌 비전에 헌신할 사람을 모을 것'을 중시했는데, 책을 다 읽고 생각해보니 이런 비전을 가진 사람과 이런 기업관을 가진 사람이 성공을 안하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에 문외한인데도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여러 사람과의 인터뷰와 회사 메일 열람 등 방대한 자료수집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그라운드 제로, 플레이어 입장, 튜토리얼 등 게임을 연상시키는 용어들로 각 장 제목을 정한 점도 흥미로웠다. 내용이 꽤 방대하지만 가독성이 좋아 후루룩 읽어내려갈 수 있다. 종이의 질감을 굉장히 중시하는데(질감이 나쁜 종이는 내용이 좋아도 읽기가 싫다), 종이 질감이 정말 좋아 자꾸 만지고 보고 넘기게 되는 책이다! 김영사의 모든 책들이 이 종이를 썼으면 하는 바람이 생길 정도로..

게임을 잘 모르더라도 그냥 그쪽 세계가 궁금했다면, 한국 기업이 어떻게 그렇게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면, 성공한 기업의 경영철학을 참고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 궁금하다면

삼성페이 이야기 - 세상에 없던 서비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김경동.여산 지음 / 김영사 / 2021년 7월

세상에는 누구나 떠올릴 수 있지만 아무나 구현할 수는 없는 아이디어가 많다. 항상 이걸 직접 구현하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아이디어 중 하나인 모바일 결제 서비스 삼성페이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이폰을 쓰고 있기에 '애플페이는 왜 우리나라에서 안되는거야!' '삼성페이 부럽다' 정도로만 생각했었지, 삼성페이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삼성페이는 그저 애플페이라는 혁신적인 결제 서비스를 보고 삼성에서 부랴부랴 준비한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근데 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스마트폰이 생긴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무터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고안해냈다는 것에 놀랐다. 삼성월렛의 망과 흥, 삼성페이의 망과 흥까지 삼성이 얼마나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위해 노력해왔는지 알 수 있는 책이다.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는 의외로 단순한 곳에서 시작된다. '지갑을 들고 다니기 귀찮다. 스마트폰으로 카드결제까지 하면 좋을 텐데' 라는 아이디어로 시작된 삼성페이는 혁신을 가져왔다. 기존의 카드단말기나 포스기에 가져다 대기만 하면 핸드폰으로 카드결제를 할 수 있는 세상이라니.

카드 정보를 핸드폰에 담는 것은 보안 기술에서부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까지 새로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어려운 걸 해내는 과정이 상세하게 담겨 있는데, 읽으면서 내내 신기해했다.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오뚝이처럼 계속 일어나 다시 도전하는 모습도 신기했다. 어떤 비전과 확신을 갖고 있어야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걸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을 바꾸는 한 방이 궁금한 사람, 세상을 바꾸는 건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한 사람, IT 기술 분야가 궁금하지만 어려워서 공부랑 엄두도 못내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한 아이디어가 어떻게 구현되어 세상을 바꾸는 기술로 자리잡는지 상세하게, 또 쉽게 서술돼 있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진정한 삶의 균형을 찾고 싶다면

삶으로서의 일 - 일과 삶의 갈림길에 선 당신을 위한 철학
모르텐 알베크 지음, 이지연 옮김 / 김영사 / 2021년 6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과 삶의 관계,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철학 에세이

저자는 우리의 목적은 만족도 행복도 아닌 '의미'라고 주장한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삶이 의미 있는 삶인지 얘기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일'을 우리의 삶과 절대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뜻의 워라밸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과 삶을 분리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일터에서의 나와 일터 밖에서의 나, 다양한 인간관계에서의 나를 분리시키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판하며 그것은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나라 현실과는 좀 동떨어진 판타지 같은 얘기지만 그럼에도 궁극적으로는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저자의 말은 맞는 말이다. 자기소개는 자신의 직업을 소개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흔히 자신을 소개할 때 직업부터 말한다. 그렇게 일과 삶을 분리할 수 없음에도 우리는 자꾸 분리하려고 한다. 24시간 중 8시간은 자고, 보통 8시간은 일하는데 이는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일을 하는 데에 보낸다는 뜻이다. 이를 미루어 보았을 때 더 이상 우리는 일과 삶을 분리시켜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없다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이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일에서 의미를 찾을지, 의미 있는 일과 의미 있는 내 삶을 넘어 어떻게 의미 있는 사회로 나아갈지를 아는 것인데 이 책에서 저자가 그 방법을 소개해준다.

사실 읽으면서 조금 반감이 들기도 했다. 현대 사람들이 치열하게 달려나가기만 하지 무엇을 위해 달려나가는 건지 모른다는 것을 비판하며 천천히 쉬어갈 것을 강조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수가 있나? 너무 유럽, 그것도 북유럽 위주의 얘기 아닌가?라는 반감이 들기도 했지만 결국은 그 방향이 개인을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옳은 방향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딱 사회로 나가기 직전인 대학생들이(저자는 대학이 직업양성소에 불과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긴 하지만), 혹은 정신없이 일하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남는 게 없게 느껴지는 직장인들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