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라
김유진 지음, 안경미 그림 / 창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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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일 시 한편 읽고 손글씨로 옮겨본다. 큰 아이 얘기다.

들어보라고 읽어주는 시가 큰아이 마음 같기도 하고, 내 마음 같기도 하다.

이상국 시인의 '땅콩은 방이 두 개다'라는 시를 좋아한다.

2학년에 올라가고 국어 1단원에서 시를 다룰 때, 반 친구들에게 시 하나 소개 하는 과제를 준비하던 날

혼자 그리 연습해 갔던 시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안 시인이 진행하는 팟빵 <이안의 동시 이야기_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를 즐겨 듣는다.

한 시점 필사를 해 가는 시를 나눠주기도 하고, 매일 다른 시를 외워가는 기간도 있었다.

머리가 나빠 외는 건 따라 못하지만, 한 구절 한 구절 읊어주는 시에 마음이 일러일 때가 많아

설겆이를 하거나, 빨래를 널고, 개거나, 이동거리가 길 때 비어있는 공간을 채워준다.

보라를 좋아하는 큰 아이. 이 아이 마음에 이 동시는 어떻게 가 닿았을까.

표지부터 보라보라 한 것이, 우주 어느 행성 위에 한 발로 균형을 잡고 눈을 감은 아이가 정말 미지의 우리네 마음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빨강빨강보라였다가 빨강보라였다가 / 파랑보라였다가 파랑파랑보라였대도 // 보라는 보라 // 빨강 옆에서 빨강을 알게 하고 / 파랑 옆에서 파랑을 보여 주며 // 빨강과 파랑을 만드는 // 보라" ― 「나는 보라」 부분

한참을 곱씹으며 읽은 구절이다. 경계에 서있는 보라. 이쪽도 저쪽도 치우치는게 아니라 만나는 어느 지점에 형성되는 그 보라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나그네를 다시 만난 바람 / 그때 일이 분해서 / 휘이 휘이 휘이 세차게 내달렸더니 // 어? 나그네가 외투를 벗는다 // 추워하는 친구에게 건네고 / 어깨동무하며 다시 걷는다 // 오늘은 바람이 이겼다 / 언제나 사랑이 이기는 법" ― 「언제나 사랑이 이기는 법」 부분

이 구절은 아이가 참 좋은 글귀가 있다며 운을 떼고 읽어줬던 부분이다. 진짜 이기는게 무언지 대화의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해준 귀한 시. 옷을 벗었으니 바람이 이겼다. 진짜는 사랑이라며 시를 읽고 감탄한 시간이 또 사랑이 되어 기억된다.

 

 

 

간혹 아이들과 말 장난처럼 주고받는 순간들이 글로 옮기면 시가 되기도 한다.

일상이 글로 옮겨지니 시 한 구절 한 구절 쌓여간다. 일상이 시고, 시가 우리네 시간이 되는가 보다.

코로나로 아이들과 좀 더 밀착해 있게 된 지금의 시간,

순간을 기억하고 글로 남겨 나는 무지개가 되어야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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