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구 - 4.19혁명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윤태호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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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사일구』 - 4.19혁명

윤태호 (지은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창비

 

 

1954년 당시,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두 번만 하게 되어 있어 이미 두 번의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은 더 이상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횟수에 제한 없이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도록 헌법을 바꾸려고 하였다.

헌법을 고치기 위해서는 국회 의원 2/3의 찬성(당시 국회 의원 203명 중에서 136명 이상)이 필요한데, 투표 결과 찬성 수가 1명 부족하여 헌법 개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당시 자유당은 사사오입을 내세워 0.3333은 빼고 135명만 찬성하면 된다고 우겨 이 개헌안은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이렇게 다시 이승만은 1956년 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장기 집권을 하기 위하여 옳지 못한 방법으로 헌법을 고치는 이승만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 될 수 밖에 없었다.

 

 

 

 

 

1960년 3월 15일,

대통령과 부통령을 뽑는 정부통령 선거가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되었다. 그러나 선거는 유권자 위협과 투표함 교체 등의 부정한 방법을 동원된 선거였다. 그렇게 또 이승만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60월 3월 15일 오후,

마산 시민·학생들이 평화적으로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는 이를 강제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을 동원하여 무차별 발포 및 체포하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를 냈다.

1960년 4월 11일,

지난 대통령 선거 당일인 3월 15일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한 뒤 행방불명된 전북 남원의 금지중학교를 졸업하고 마산 상고에 합격한 김주열군의 시체가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마산 신포동 중앙부두 바다 위로 떠오른 것이다. 김주열의 시신이 시청 쓰레기청소차에 실려 도립마산병원으로 옮겨지자 수많은 시민들이 주검을 목격하고 분노는 들끓었다. 책임자 처벌과 부정 선거 무효 등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였다.

 

 

 

1960년 4월 19일,

전국의 대학생과 중·고등학생들이 일제히 거리로 나섰다. 서울에서는 학생들이 이른 아침부터 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시민들도 학생들의 시위 대열에 합류하였고, 국회 의사당에서 경무대로 시위대가 향하자 경찰은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를 하였고,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승만 정부는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여 사태를 수습하려고 하였으나 시민들은 보다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였다

1960년 4월 25일,

전국 27개 대학교수들이 ‘학생 들의 피에 보답하자.’ 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국회까지 행진 시위를 벌이며 이승만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였다.

 

 

 

 

 

1960년 4월 26일,

국민들의 계속되는 퇴진 요구에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 하겠다.’면서 하야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길에 올랐다.

 

해방되니 이제 끝났다, 좋은 세상 되었다 싶었지.

육이오 터지고 휴전되니까 이제 숨 좀 돌려도 되겠지...

아니야. 한시도 편한 날이 없었어.

해방 이후로 하루도 마음 편해 본 적이 없었어.

누가 이리 만드는가 싶다가도

나야 상관없으니,

저놈들 다 해먹다 배 터져 죽어도 상관없으니

잠시라도 아무 일 없이 있었으면 싶구나.

나는.. 정의로운 그들이 원망스러웠고,

마침내 정의마저 싫어졌다..

 

『사일구』 중에서

 

 

 

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사일구』

가슴 먹먹해 지는 장면들에 가만히 생각에 잠기게 되는 『사일구』

수많은 사람들이 섰을 거리에 우리도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되어준 『사일구』

2020년 4월 19일에 읽는 1960년 4월 19일 『사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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