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여자 -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을 위하여
줄리엔 반 룬 지음, 박종주 옮김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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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에서 출간한 줄리엔 반 룬의 <생각하는 여자>를 읽었다. 비문학보단 문학을 좀더 선호하는 독서편식의 대가인 내가, 사전 서평단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읽게 된 책이다. 만일 사전 서평단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 책을 읽긴 했을지 고민했는데 답은 왠지 아닐 것 같았다. 이 사실을 떠올리니 사전 서평단의 소식을 접하고 신청을 누른 과거의 나를 더더욱 칭찬해 주고 싶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사고의 확장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 이 책에는 생각하는 여자들이 나오고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들의 생각을 접할 수 있다. 사랑, 놀이, 일, 두려움, 경이, 우정 이 여섯 개의 주제가 기저에 깔려 있고, 저자 줄리엔 반 룬과 더불어 각 주제에 맞게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여덟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하게 된 최초의 계기는 12쪽에 기재되어 있다. "육년 전 나는 지금 살아 있는 여성 철학자들을 조망하는 책을 구상했다. 주요 여성 철학자 몇명의 작업을 살펴봄으로써 그 의의를 밝히고 지금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말을 건네는, 그럼으로써 철학적 사유와 일상생활을 연결해주는 책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구체적인 주제들도 생각해두었다." 저자는 철학은 폐쇄되고 격리된 회랑이어야 할 이유가 없으며 Y염색체와 엘리트만을 위한 공간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며 이 책의 서문을 연다.

첫 번째 챕터 <사랑>에서는 문화이론가이자 비평가인 로라 키프니스와 함께한다. 저자의 진실된 과거와 개인사도 일부 서술되어 있다(전 학장에게 느끼는 감정, 파트너와의 헤어짐 등). 이 장에서는 로라 키프니스의 저서 『사랑과 맞붙기』가 바탕이 되어 있다. 51쪽에서 "사랑은 근본적으로 일종의 착각이다."라고 쓰여져 있는데 나는 이 문장을 읽자 마자 최유수 작가의 '사랑의 몽타주'에 수록된 사랑의 시작은 대체로 착각이다라라는 한 문장을 떠올렸다. 내가 이 장에서 가장 공감이 된 구절은 35쪽의 "사랑은 우리에게 힘을 행사하죠"라고 말한 부분이었다. 여기서 사랑이 행사하는 '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거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갖는 의미에 대해 고찰하는 저자와 로라 키프니스를 보며 나도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사실 그들과 같은 농도로 고민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두 번째 챕터 <놀이>에서는 인문학자이자 미술비평가, 그리고 소설가인 시리 허스트베트와 함께한다. 이 장은 '놀이'를 단순히 'play'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나는 '노는 일'이라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그 범위를 확장하여 사고하는 것에 약간의 충격을 받기도 했다. 역시 여자들은 다르다니까! (^^) 94쪽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라 우울'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의 신경과학자 스튜어트 브라운의 작업은 과학과 놀이 연구 사이의 연결부에 위치한다." 이 구절에서 인용된 스튜어트 브라운의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라 우울"이라는 구절은 어쩌면 현세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새겨야 할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세 번째 챕터 <일>에서는 철학과 교수로 자신의 경력을 쌓은 낸시 홈스트롬과 함께한다. 이 장의 커다란 주제가 '일'이기 때문에 이 장에서는 자본주의와 직결된 부분이 많다. '자본주의는 여성에게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에 낸시 홈스트롬은 '자본주의는 대체로 여성에게 좋지 않다'고 답한다. 노동, 노동력, 노동자 등 일과 자본주의와 여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심어준 이번 장은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장이기도 하다.

네 번째 챕터 <두려움>에서는 줄리아 크리스떼바, 로지 배티, 헬렌 캘디콧이 함께한다. '두려움은 여자의 장소다'라는 도입부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이 두려움 챕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본문에 정확히 쓰여져 있다. "우리에게는 통제를 포기하고 자신을 더 잘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와 이 세 철학자는 어떻게 두려움의 오랜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다방면으로 접근한다. 경험, 책, 대화 등을 통하여. 이 장을 읽은 뒤 나는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을 보지 못한 채 살아왔는지도 함께. 우리가 일부러 안 보려고 한 건 아닐 거다. 어딘가 또는 누군가가 여성들의 역사를 지우고 싶었나보지. 여성들의 힘이 커지는 게 싫은 족속들.

다섯 번째 챕터 <경이>에서는 소설가이자 역사가, 신화학자인 마리나 워너와 함께한다. 이 챕터는 내게 진정한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경이라는 감정을 페미니즘과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다는 자체가 내겐 낯설었다. 역시 여자들은 사고의 깊이가 남다르다. (^^) 앞선 <두려움> 챕터도 페미니즘의 색을 짙게 띠고 있지만 이 <경이> 챕터가 좀더 확실한 색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231쪽의 문장을 첨부한다. "제가 보기엔 모든 미덕과 악덕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분명한 젠더적 함의가 있어요. 무엇이든지간에 양쪽으로 줄을 세울 수 있을 거예요. 페미니즘적 성과와 활동 덕분에 조금 바뀌긴 했지만 아시다시피 여전히 남자에게서는 단정적이고 자신감에 찬 발화가 여자에게서는 거슬리고 앙칼지고 과하게 화를 내는 게 되죠. 여자들이 하면 잡담이나 수다라고 해요. 남자에게는 달변이고, 뛰어나고, 자신감 있는 게 되고요." 우리가 <경이>라는 챕터만큼은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읽어야 할 필요가 이 구절에 담겨 있다. 물론 다른 챕터를 가볍게 휘익 넘기라는 뜻은 절대 아님. 저자는 이 장을 "경이에 대한 우리의 능력이 실제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바꿀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어떠한 감정 또는 행위를 젠더의 문제로 연결시키고 그 의미를 넓혀가는 과정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되니 나역시 생각하는 여자가 되는 것 같다.

여섯 번째 챕터이자 마지막 챕터인 <우정>에서는 여성학자이자 철학자인 로지 브라이도티와 함께한다. 우정이라는 건 이미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거나 다름없는데, 이러한 우정을철학으로 귀결시킨다는 것이 내겐 새로웠다. 우리는 익숙한 것들이 때론 생소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장을 통해 알게 되고, 또다른 사고의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앞선 모든 챕터의 공통점이자 이 책의 주요 특징은 다양한 저서와 인물들의 경험을 참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의 문제에 도전하는 당신을 위한 여섯 번의 지적 대화라는 이 책의 설명만으로도 읽어야 할 가치가 충분한 <생각하는 여자>. 우리는 저자와 이 여덟 명의 철학자를 포함한 모든 여성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걸 알고 있다. 생각은 멀리 있지 않고, 생각하는 여성들은 더더욱 가까이 있다. 우리는 모두 생각하는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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