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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ㅣ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평점 :
2008년 7월 14일. 제야에겐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고 영영 도망치고 싶은 날이었다. 하지만 제야는 살고 싶었고 더이상 숨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그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며 애쓰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결국 이제야는 달리기로 했다. 스스로를 깊은 나락으로 빠트린 날도 있었지만, 제야는 잠기지 않았다. 다시금 위로 올라왔다. 제야는 동생 제니에게 쓰는 편지에 "나는 아무도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 틈에서 나를 기만하면서 살기도 싫어. 내게 일어났던 일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아. 그러면 그의 죄도 지워질 테고 지금의 나도 뒤엉켜버리니까."(p.227)라고 썼다.
일기 형식을 빌린 이 책은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제야가 겪은 고통을, 그의 심정을 전부 헤아린다고 말하기엔 스스로도 겁이 난다. 나의 공감과 이해가, 이제야에겐 다른 의미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감히 내가 제야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네가 달리기로 한 것을, 살 수 있는 날까지 살기로 결심한 것을, 애쓰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나는 응원한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에는 여러 '어른'이 나오지만 우리가 바라는 어른상과는 거리가 있다. 오로지 강릉이모만이 제야에게 안정감을 준다. 대학을 다니게 된 제야가 흔들리는 생활을 이어갈 때 이모는 제니의 연락을 받고 서울에 올라왔지만 제야는 이모를 볼 수 없었다.
2008년 7월 14일의 제야는, 제야만의 몫이 아니다. 제야만이 짊어지고 갈 문제가 아니다. 제야만이 달려야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래 멈춰 있었고, 스스로를 질타했다. 이제는 함께 달려야 할 때다. 제야가 나를 성가셔 하지 않을 때. 나는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주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 잠깐의 일에 너무 오래 얽매여 있다고, 내가 내 인생을 유기한다고 생각하겠지. 마음만 먹으면 털어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겠지. 나를 나약하다고 생각하겠지. 여자애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 이게 과연 타인의 생각일까? 내 생각 아닌가? 내가 나를 멸시하는 거 아닌가? 멍청한 자기혐오 따위 그만두고 싶다. 계속 떨어질 수는 없다. 나는 달리고 싶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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