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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
이민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8월
평점 :
품절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저자 이민경이 탈코르셋에 관한 책을 썼다. 이 책에는 탈코르셋을 한 수많은 페미니스트 인터뷰이들이 살아숨쉬고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들이지만,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교집합 덕분인지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가 굉장히 가깝게 느껴지더라. 탈코르셋은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가장 뜨거운 난제로 손꼽히는 사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역시 완벽하진 않지만 탈코르셋(이하 탈코)을 진행 중에 있다. 지난해, 텀블벅 <탈코일기> 시리즈 펀딩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탈코라는 것이 쉽지만은 않더라. 자기검열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누군가 명쾌하게 대답해 주지 않아 방황하는 날도 많았다. 넘치는 정보와 이야기들은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지기 마련이었다. 주관을 찾는 것은 중요하며 배우는 것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변명하고, 합리화 중인 '나'를 발견했다. 그런 방황기의 나에게 찾아온 이 책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탈코를 해온 내게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지표이자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탈코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면, 탈코는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계속 인지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겐 항상 연대 중인 그들이 있으며, 어딘가에서 서로를 묵묵히 응원하고 있는 자매들이 있다.
나는 교재나 개념서, 문제풀이가 아닌 이상 일반 책에 밑줄 긋거나 접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편인데 이 책을 읽을 때만큼은 달랐다. 펜을 들고 접어가며 읽었다. 공부를 한다는 마음으로 읽었다. 내가 경험하고 공감되는 부분은 물론이고 내가 애써 외면해왔던 현실을 인터뷰이나 저자가 대신 말하는 부분에서도 과감히 펜을 들어 밑줄을 그었다. 이게 현실이었다.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이미 겪었고 앞으로도 겪을 이야기였다. 나도 겪고, 엄마도 겪고, 친언니도 겪었으며 직장 동료는 물론이거니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 겪은 일들이다. 탈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만 둘 생각은 없었다. 나는 페미니즘과 탈코르셋은 늘 따라붙을 수 밖에 없는 수식어라고 생각했기에 '탈코'에 대한 현타가 여러 번 왔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에서 넘치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거르는 일은 온전히 내몫이었다. 어느날엔 '좋은 날엔 좋은 거지!'라는 생각으로 도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 결심했다. 앞으로 날 합리화하지 않을 것이다. 탈코르셋에 맞선 나의 편협한 생각들에 지지 않을 것이다.
p.121
"…벗어야 할 코르셋이 무엇부터 무엇까지를 의미하는지는 그것을 입은 상태에서는 알 수 없다. 알기 때문에 벗는 것이 아니라 벗어야 알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여성의 몸이 고통에 둔감해졌다는 것이 탈코르셋 운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p. 146
"탈코르셋을 한 여성은 여성으로 식별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갑자기 감시망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규범을 벗어났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응시당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p. 147
"…그러니까 제가 문제인지도 몰랐던 문제들을 알게 되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벗어나는 것. 그게 탈코르셋인 것 같아요. 세계를 완전히 3D로 보다가 4D가 된 거죠."
나는 학창시절만해도 치마는 교복치마 밖에 몰랐다. 남성교복에 비해 유난히 짧고 라인이 들어간 상의와 치마. 하복상의는 더 심했다. 그런 내가 스무살에 접어들자 치마에 눈을 떴고,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와 원피스를 즐겨입었다. 바지 입는 날의 빈도가 줄어드니 그당시바지 입는 나를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하체에 자신이 없었던 내가 치마를 선호하는 건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멍청한 소비로 그때를 보냈구나, 싶어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진다. 본문 169쪽에는 "규범적 여성성 수행에 동반되는 다른 꾸밈 행위가 그러하듯이 패션은 의도적으로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고 구속하는 장치로 쓰인 것이다"라고 쓰여있다. 오프숄더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었던 건 스물네살의 여름이었다. 더 정확히는 하늘색의 식탁보 패턴의 체크무늬 오프숄더 원피스였다. 치마도 치마지만, 어깨에 자꾸만 신경이 갔다. 결국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그 옷을 입은 적이 없다. '사탕껍질'이라는 건 이런 걸 일컫는 게 아닐까. 탈코르셋은 멀리있지 않다. 산소처럼 늘 우리 곁에 맴돌고 있다. 언제든지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본문에 나온 말처럼, 우리는 항상 학습은 쉬우나 탈학습은 어려웠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잃어버려선 안 된다. 포기는 더더욱 안 된다. 지치고 힘든 시기가 오더라도 우리는 나자신과 더불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지를 표하는 수많은 여성들을 떠올려야만 한다.
p. 205
"여성은 자신이 선망하는 바가 어디를 향하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외모의 영역에서만 유일하게 인정 욕구를 채울 수 있음을 일찍부터 깨달았기 때문에 모든 자원을 이 영역에 쏟아버린다."
p. 250
"'탈코르셋은 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탈코르셋을 했다고 해서 여성이 곧장 편해질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애초에 이 운동은 여성의 영역 내에 존재하는 불편함을 제거하기를 넘어 규범을 위반할 때 생겨나는 불편함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음을 주지하기도 한다."
p. 256
"내가 살았던 경험들을 페미니즘적으로 다시 재구성해봐야 한다고 말씀하셨었는데, 제가 그걸 제 문제로 체화한 것 같아요."
이 책은 나처럼 스스로에 대한 지독한 검열과 그 간극에 대해 혼란을 느끼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권한다. 그리고 나와 같이 결심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행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더이상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본문 290쪽의 글을 인용하며 부족한 리뷰를 마친다.
"…가부장제를 철폐해 여성을 억압으로부터 해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탈코르셋 운동은 한 개인의 삶이 변화하려면 사회적 차원의 움직임이 반드시 필요하기에 일어난 운동의 원본인 동시에, 애초부터 한 세대의 힘으로 달성되지 않을 단 하나의 과업을 지금 등장한 개인의 몸으로 우연하게 통과하며 써 내려가는 또 하나의 각색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