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2016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박상영 작가의 신작 <대도시의 사랑법>. 감사하게도 정식 출간 이전, 창비에게 수록된 작품 중 하나인 <재희> 가제본을 받아 읽게 되었다. <재희>의 첫인상은 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의문이었다. 사람 이름이라는 건 짐작이 되지만 그 이름을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 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나는 소설을 접하기 전, 제목과 표지만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하며 혼자 추측하는 습관이 있다.) 그렇게 나는 재희와 '나', 그러니까 영이를 만나게 되었다. 서로가 지극히 n극과 s극이지만, 악어와 악어새처럼 서로 공생해야 하는 존재인 둘. 물론, 이 한 줄로 그 둘의 관계를 다 표현할 수는 없다. 서로가 남자와 섹스에 미쳐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말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그렇게만 흘러가는 건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말고, 경멸하지 말 것. 단순하게 말하자면 <재희>는 헤테로 여성과 게이 남성의 우정이라면 우정이고, 사랑이라면 사랑, 가족이라면 가족인 어쩌면 이 모든 관계를 가뿐히 뛰어넘는 서로의 이야기니까. 이 단편을 읽은 후 우리는 핑클의 <영원한 사랑>을 반복재생하게 될 테고 저절로 재희와 '나'의 노래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재희의 결혼식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결국 영원할 줄 알았던 재희와 '나'의 시절이 영영 끝나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영이로 마무리된다. 재희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며 차라리 자신이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는 게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고 한다. 정착과 안정과는 거리가 먼 재희가 결혼이라니. 이젠 독자인 나마저도 배신감(?)이 들기도 하고. 나는 재희의 성격이 드러나는 표현들이 너무 너무 좋았다. 예를 들면,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을 아무렇게나 넘겨버리는 데에는 재희만한 고수가 없었다' 같은 것. 또는 계속 연애나 하지, 굳이 결혼을 왜 하냐는 '나'의 질문에 하자고 하니까 그냥 한 번 해보는 거라며, 살다가 아님 말고라고 말하는 재희의 답 같은 것. 


  재희와 '나'의 깊은 관계를 잘 보여주는 대목은 재희의 임신 중절 수술을 위해 병원을 함께 방문하여 주는 '나'와 그날, 형편없는 실력으로 미역국을 끓이는 '나'가 아닐까. 아니 어쩌면 남자와 진한 키스를 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뭐하고 있냐며 묻는 재희의 스무살, 그때부터. 그들의 관계는 사랑과 우정이라는 단편적인 단어에 그칠 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 이 이야기에 대해 실컷 떠들고 싶다. 누군가와 <재희>로 하루 종일 떠들고 싶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또 새로운 아침이 찾아와 <재희> 이야기로 꽃을 피워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대도시의 사랑법>에 수록된 다른 소설들은 어떤 분위기일까. 어떤 인물들이 또 나를 맞아줄까. 재희가 금방이라도 '나'에게 달려와 늦은 우기의 바캉스에서 돌아오자마자 대도시의 사랑법은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이었다고 재잘재잘 떠들 것 같다. 함께 마스크팩을 하며 누워있던 스무살 그때처럼.


  그 시절 우리는 서로를 통해 삶의 여러 이면들을 배웠다. 이를테면 재희는 나를 통해서 게이로 사는 건 때론 참으로 좆같다는 것을 배웠고, 나는 재희를 통해 여자로 사는 것도 만만찮게 거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대화는 언제나 하나의 철학적 질문으로 끝났다. 

  - 우리 왜 이렇게 태어났냐.

  - 모르지 나도.

  / 43p.


  <대도시의 사랑법>에 수록된 <재희>는 현대문학 교수 350명이 뽑은 2019 올해의 문제 소설에 선정되었다고. 방이동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을 재희가, 냉동실을 열어 블루베리 한 봉지를 꺼내먹을 '나'가 서로의 부재에도 굴하지 않고 그리고 잊지 않으며 담담하게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도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정체성이, 그들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게, 오래오래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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