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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집 ㅣ 아티스트 백희성의 환상적 생각 2
백희성 지음 / 레드우드 / 2015년 1월
평점 :
이 책은 목소리가 없는 집에 이야기를 만들어준 한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파리에 집을 구하고 싶었던 주인공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집을 얻은 대가로 전 집주인의 뜬금없는 부탁을 받게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수수께끼들 때문에 주인공은 몇 번이나 부탁을 거절하리라 마음 먹지만
공간에 대한 감탄과 이런 공간을 자아낸 인물이 가진 이야기에 대한 인간적인 호기심 때문에
포기는 맘처러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았던 주인공은 다소 불편해보이고 일반적이지 않아보이던 공간의 모든 요소들이 사랑하는 이를 위한 건축가의 배려였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집은 단순히 인간이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그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을 새기고 추억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기능적인 측면으로만 공간을 바라보는 시대의 시선을 잠깐 거두고 난간과 계단, 문처럼 사소하게 여겨지는 것들에게 숨어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의 시선은 반사적으로 불편한 것들과 느린 것들을 기피하는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불편해 보이고 부족한 것들은 어찌 보면 깊은 사연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책 마지막 저자소개 부분 인용)는 메세지를 전달해준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쉐이프 오브 워터"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이지만 영화에선 '사랑'이란 단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남자주인공은 괴생명체이고 여자주인공은 농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며 사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처럼 사랑은 어떤 모양으로도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니까.
이 책 역시 건축이란 큰 주제안에서 원망과 호기심, 사랑같은 감정들을 다루지만 감정을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는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프랑스와는 그 모든 감정들을 공간의 가면속에 숨겨놓았고 숨겨진 이야기들이 드러날 때 자아내는 감동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를 위한 큰 선물이 된다.
책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집의 이름을 지어주려 한 적이 있었는지, 늘 건물과 함께하는 하루 속에서 건물속 사람들의 이야기와 건축을 따로 생각하려 하진 않았는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녹인 건물을 만드는 것은 건축가의 일이고 그런 건축가의 배려를 알고 건물을 살아있는 무언가로 느끼고 아끼는 것은 우리들의 일이겠지. 내일부터는 그런 배려들을 헤아리기 위해 눈과 머리가 좀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다. 그전에 내가 몸을 뉘고 있는 이 집의 이름을 뭐라고 지어줄지에 대해서 먼저 고민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