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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랑법
남영은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20년 8월
평점 :
남영은 수필집 <우리의 사랑법> - 자서전을 쓰고자 하는 보통 사람들의 길잡이가 될만한 책
책의 표면적 구성
이 책은 그냥 수필집이라기 보다는 자전적 수필집에 더 가깝다. 수필이라면 개인적 삶 속에서 평소에는 자신과 관계없다고 생각했던 생소한 사건을 겪으면서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획득하는 순간을 묘사하는 경우를 말한다면, 남영은의 수필집 <우리의 사랑법>은 그런 특별했던 사건에 대한 감상을 서술한 에피소드들과 함께, 보통 사람이 살면서 겪는 만남과 헤어짐, 슬프고 기쁘고, 어떨 때는 암담했던 이야기들을 대체로 생애주기를 따라 서술했다는 점에서 ‘자전적’ 수필집이다. 그런가 하면 주제별로 챕터를 구성했기에 필요하다면 시간적 서술을 무시하는 파격도 보인다. 생애주기를 따를 때 생기는 예측가능한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한 좋은 방식이라 생각한다.
저자의 생애
작가는 앞선 베이비부머 세대에 속한다. (1967년에 초등학교 4년생이었음을 밝히는 장면이 나온다.) 부친이 경찰에 복무했기 때문에 지은이는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전학을 거듭했고 그래서 초중등 시절은 전학에 따른 적응 스트레스를 딛고 선생의 신임을 얻고 학우들과 화합을 이뤄낸다. (그 과정을 특별한 사건으로 기록하기보다는 담담하게 진술한다. ‘담담함’은 이 책의 전반적인 기조를 이룬다.)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유학을 하면서 저자는 제법 고초를 치른다. 서울에 왔으면 서울의 법도를 따라 방학이 되면 학원을 전전하면서 입시 서적을 떼어야 할 때에 고향에 내려가서 실컷 빈둥거리며 유학생의 여독(旅毒), 아니 유학독(留學毒)을 푼다. 방학이 끝나고 그이는 (아마도 처음으로) 학업에 뒤처진 학생이 되었고, 문학동아리 활동까지 하면서 결국 재수를 했고, 풍족하지 않은 공무원 집안의 장녀로서 값싼 학비까지 고려해 지방의 사범대 국어교육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서도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고, 다른 대학의 문학상에 수필부문에 응모하여 입선하기도 했다. (이런 이력이 <우리의 사랑법>을 쓰게 한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졸업하여 교육자가 되었고 결혼을 했고 자녀를 두었으며 까치울중학교에서 은퇴를 맞았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에 대한 열정은 은퇴가 없었다. M센터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예배 공동체에서 한국어 수업을 담당했고, 그런 교육 활동은 캄보디아의 ‘좋은나무국제학교’에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수필 ‘아, 앙코르와트여’로 책은 끝을 맺는다.
책의 내용을 되짚어 보다
21세기에 20세기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20세기에 베이비부머로 태어나 하고많은 직업 중에 근엄함을 떠올리게 하는 교육자로 평생을 지낸 저자가 자신의 진지하고 성실한 삶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이 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렸을 때 경기를 일으켜 내내 아팠고, 그래서 주사를 달고 살았는데 주사를 맞으면서 한 번도 울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아픈 자신을 내내 업고 다녔던 어머니에게 차라리 ‘저 바다에 빠져 죽을까’라는 말을 건넸던 인내심 있고 조숙했던 어린아이의 삶이 어땠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전체적인 글의 기조가 담담하다고 해서 심심하거나 싱겁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담담함 속에 건빵 속 별사탕같은 이야기들이 군데군데 반짝거린다. 버려진 유기견의 생애 마지막 이주일을 온 가족이 힘을 다해 보살핀 이야기, 학생들의 온갖 실수를 적발하고는 손쉬운 처벌이 아니라 그 원인를 찾아서 당사자인 학생의 주변 사람들까지 납득이 가는 해결책을 찾아낸 이야기 등이 곳곳에 자리 잡아 읽는 재미를 더한다.
특별히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사람들
은퇴를 맞은 베이비 부머들이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는 글을 써보고 싶어서 온갖 글쓰기 강좌를 신청한다고 한다.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책을 쓰기 위해서는 글쓰기 능력도 필요하겠지만 그건 필요조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글재주가 있는데도 책은 고사하고 변변한 글 한 편 못 쓰는 사람이 적지 않다. 각자의 삶에는 자신만의 이야기 거리가 없지 않은데도 막상 써보려 하면, 어떤 식으로 끄집어낼지 막막해서 쓰다말다를 반복하다 포기하는 사람도 숱할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남영은의 <우리의 사랑법>을 특별히 권하고 싶다. 그런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각 에피소드를 읽을 때마다 그것과 유사한 자신만의 경험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나도 작가의 삶을 읽으면서 드문드문 내 삶을 떠올렸다. 잊어버리고 있던 기억을 되살린 것도 있다.) 그런 기억을 원료로 삼아 더 많은 자신의 이야기를 길어 올린다면 그것이 책이 될 수 있다고 <우리의 사랑법>은 말해준다. 담담히.
34쪽, ‘크라운산도‘나 ‘십리사탕‘은 이 길에서 친구들과 나눠먹던 최고의 간식이었다. 흰색의 십리사탕은 십리 길을 갈 때까지도 녹지 않아 붙여진 이름이다. 어찌나 단단한지 깨물어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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